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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달려라 달려 반미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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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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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에 못이겨 전향했다는 이유로 북송에서 제외된 장기수 정순택씨, 반미 열차시위 3만km

사진/ (박승화 기자)
비운의 비전향 장기수 정순택(81)씨의 ‘반미 열차시위’가 3만km를 돌파했다. 그가 “미군 가라, 반미는 민족의 양심”이라는 구호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자택 근처 충북선을 처음 탄 것은 지난해 11월1일. 퇴행성 관절염과 난청·당뇨 등으로 망가진 몸을 이끌고 1년1개월여 만에 우리나라의 모든 철도노선을 여덟 바퀴째 돈 것이다. 서울·부산·대구·인천 지하철은 각각 2차례를 돌았다.

“기차에 타면 첫 칸에서 마지막 칸까지 한 바퀴 돌며 그냥 구호만 보여줍니다. 내릴 때는 모든 사람이 내릴 때까지 출구 앞에 서 있어요. 반미구호를 많은 사람이 보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여중생 사망 뒤 격려 쏟아져


올해 초까지만 해도 반미구호를 보고 일부러 노려보거나, “지금 미군이 나가면 어떡합니까 6·25 경험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따지고 드는 사람이 꽤 있었다. 하지만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건이 일어난 뒤 시작한 3차 열차시위 때는 오히려 “장하십니다!”라는 격려를 많이 받았다.

“식당에 데리고 가서 음식대접을 하는 사람, 택시비를 안 받겠다는 택시운전사, 여비에 보태 쓰라고 돈을 쥐어주는 젊은이도 있었어요.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반미감정이 반미구호를 메고 다니는 나에 대한 호감으로 나타난 거죠. 민족의 긍지와 양심이 살아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는 이번 사건을 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멸시감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단정지었다. 미국에 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형편없는 정부, 친미·굴종적 정부”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북한 상업성 재정경리부 재정부장이던 정씨는 1958년 남파됐다가 바로 체포된 뒤, 이른바 ‘전향공작반’의 고문을 견디다 못해 70년대 초 전향했으나, <보안관찰자의 꿈>이라는 책을 내면서 전향의사를 취소했다. 하지만 전향했다는 이유로 지난 2000년 비전향 장기수 북송 때 북에 가지 못했다. 그는 자신처럼 전향서를 썼다가 전향 취소를 한 유연철(90)씨가 북송 대열에 포함됐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의 큰아들이 김책공업종합대학 선박공업부 부학부장이며, 나머지 세 아들도 건재하다는 사실과 함께.

새 정부는 그를 북으로 보내줄까

기자는 2000년 당시 그의 북송 꿈이 좌절됐을 때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친지와 친구들이 이별자금이라고 모아준 200여만원을 북한의 농촌복구를 위해 써달라며 <한겨레> 편집국을 찾았었다. 그의 목소리는 그때보다 더욱 우렁찼다. 목소리가 우렁찬 것은 그의 귀가 거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31년5개월 동안의 수감생활 끝에 환청과 환시 증상을 보이던 그는 결국 청력을 잃어버렸는데, 2년 전보다 상태가 더욱 나빠진 것 같았다.

“압박에 의한 전향이었다는 사실은 대통령 직속 의문사위 활동을 통해서도 유추해볼 수 있지 않아요 전향하고도 북으로 간 사람이 있었는데 왜 이런 차별대우를 하는 겁니까”

그는 내년에 들어설 새 정부가 그를 북으로 보내주리라 굳게 믿고 있다.

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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