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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자존의 메아리를 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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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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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범대위 방미투쟁단 10박11일의 기록… 동포들 참여 속에 미국의 야만성 만방에 알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에서 일하는 핵심간부 등을 포함한 ‘2002년 방미투쟁단’은 약 10여일간의 일정으로 12월2일 방미길에 올랐다. 나는 고문으로 참가했다. 전국 각지에서 촛불시위가 연일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내를 떠나는 것은 나름대로 결단이 필요했다.

도덕적 양심에 호소하기 위한 여정

사진/ "미군의 만행을 고발한다." 방미투쟁단이 위싱턴DC 백악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김상준)
먼저 미군의 심장부인 수도 워싱턴DC에서 우리의 문제를 직접 호소하는 게 절실했다. 방미에 앞서 우리는 130여만명이 참여한 서명지를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려고 했다. 우리의 서한에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전면적 개정 △부시 대통령의 공개적인 직접 사과 △미필적 고의 살인행위자에 대한 무죄판결의 부당성 △한국법정에서 재판 성사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떻게든 미국인의 도덕적 양심에 호소하고 도전해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다.


단지 미국 정부에 항의하는 것만이 대표단 파견 목적은 아니었다. 미국에는 뉴욕·워싱턴DC·로스앤젤레스 등지에 동포 100여만명이 살고 있다. 동포들이 국제적 문제가 된 미군의 만행을 제대로 알고 동참하도록 촉구하려는 것이었다. 지금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진정한 변화는 안팎에서 모두 일어나야 한다. 밖에서의 변화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이 앞장서 이뤄낼 수 있다.

미국 방문단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소굴로 들어가는 심정으로 뉴욕을 향했다.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고,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다. 미국 동포들과 미국민은 물론 전 세계 시민들에게 지구의 한 귀퉁이인 남한에서 미군의 야만적인 불법행위로 일어난 두 여중생의 비극을 알리는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방문단의 1차적 목적인 집회, 기자회견, 미 상·하원 국회의원 면담 등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유엔본부 앞에서나 미국 백악관 앞 시위집회는 우리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에게 우리의 요구사항과 편지를 전하려 했지만 입구에서 가로막히고 말았다. 유엔본부 건물 맞은편에서 시위하려던 계획 역시 실현되지 않았다. 유엔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관료주의가 제도화된 흔적이 역력했다.

미국 현지의 어려움은 무엇보다 준비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역사는 창조적 소수자에 의해 이룩되고 변화되는 법이려니 생각하고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유엔본부 건물 맞은편의 인터처치 건물에서 연 기자회견도 다수의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크고 작은 성공사례도 적지 않았다.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 이른 아침에 정의와 평화를 위한 방송인 < WBAI > 라디오 방송사에 출연해 40여분 동안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과 불평등한 SOFA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보람된 일로 기억된다.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세계선교회를 찾아가 그곳의 모든 직원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국제행동센터에서 국제포럼을 성황리에 마친 일도 떠오른다. 국제포럼은 100여명의 참석자들이 보통 교실 크기의 방을 가득 메운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참석자들은 우리의 발표에 대하여 깊은 공감을 보였다.

방미투쟁단은 백악관 앞에서 사진 전시회와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우리는 130만명이 서명한 것을 백악관에 전달하려 했으나 거부당하자 방미투쟁단장인 한상렬 목사가 혈서로 부채에 ‘민족자주’라고 쓰고 그것을 들고 시위했다. 이는 아마 이준 열사가 칼로 배를 가른 것에 비할 수 있을지….

그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우리 대표단은 뉴욕과 워싱턴DC, 로스앤젤레스 등 아니 전 미주,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의 동포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큰 효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방미투쟁단은 비록 계획한 것을 많이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미 국방장관 회담 때를 맞추어 회담장소인 미국 펜타곤을 찾아간 것이나, 백악관 앞에서의 시위와 혈서 등을 앞세우며 시위를 벌인 것 등 미국 정책 입안자들에게 큰 ‘감동’ 아니면 적어도 그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전의 대한국인 인식과 정책에 대하여 많은 반성을 하고 새로운 한국인 인식, 새로운 한반도 정책 문제를 가지고 고민할 것이다.

홍근수/ 여중생 범대위 상임공동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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