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종교적 이유로 병역거부한 나동혁씨 실형선고… 법적용 형평성 논란 속에 대학가 핫이슈로
지난 12월10일 오후 서울지방법원 제522호 법정. 연갈색 수의를 입은 나동혁(26·서울대 수학과 4년 휴학)씨가 법정에 들어서자, 방청을 나온 동료학생들은 조용히 손뼉을 쳤다. ‘고난과 승리’를 상징하는 보랏빛 수건을 목에 두른 동료들에게 밝은 인사를 건넨 그가 재판장 앞에 섰다.
“우리 헌법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이는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을 자유를 말한다. 하지만 그 자유에는 내재적·제도적 한계가 있다.” 형사8단독 이민영 판사가 천천히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법정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도덕에 반하는 일을 금하는 자연법에 따르는 규범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처벌하기로 규정한 법 원칙도 존재한다. 대체복무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있고, 입법과정에서 심의도 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처벌 규범이 현존하고 있다.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면 그에 대한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병역을 이행한 사람에게는 또 어떤 혜택을 줄 것인가. 이에 대한 국민 모두의 합의가 필요하다.”
대체복무제 입법 논의 지리멸멸
재판장은 현역병으로 복무한 뒤 예비군까지 합하면 50~60개월 동안이나 자신의 시간을 국가를 위해 투자하는 젊은이들을 얘기했다. 그리고 “피고인이 자신의 생각에 투철하다는 점은 평가하지만, 현실적 법 집행 역시 피고인이 짊어져야 할 몫”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언제 내려질지 알 수 없다. 그동안 병역거부가 계속 이어질 경우 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피고인의 처지만 생각할 수는 없다.” 곧 이어 판결이 내려졌다. “피고 나동혁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한다.” 예상이라도 한 걸까 담담한 표정의 나씨는 천천히 몸을 돌려 엷은 미소를 방청석으로 보낸 뒤 ‘힘내라’는 동료들의 말을 뒤로 한 채 법정을 빠져나갔다. 비종교적 이유로 집총을 거부해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17일 평화주의자 오태양씨가 ‘불살생’이라는 신념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한 뒤 1년이 넘었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겠다는 젊은이들이 빠르게 늘어났지만,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입법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10월2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내놓은 발언은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우리는 불행히도 분단된 상황에서 군이 대치하고 있는 만큼, 전쟁이나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우는 것은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 병역의무 기피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처벌만으로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교육부 장관이 잘 설득해주기 바란다.” 병역거부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없다 보니 이에 대한 법적용 역시 천차만별이다. “판사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법적용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나씨에게 실형이 선고된 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법적용의 형평성에 대한 이의 제기가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엔인권협약 가입국임을 잊었는가
지난 1월29일 서울지법 남부지원 형사1단독 박시환 부장판사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예외 없는 처벌을 규정한 현행 병역법 제88조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이에 따라 이미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씨는 두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된 끝에 재판이 무기한 연기됐다. 오씨에 이어 병역거부를 선언했다가 구속영장이 발부된 임치윤·유호근씨 등도 1심 재판부의 보석과 재판연기 결정으로 풀려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유호근씨는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내린다면, 나씨를 포함한 병역거부자들에게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쓸데없는 구금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것이냐”고 되물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여부와 상관없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법무법인 해마루 임종인 변호사는 “유엔인권협약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과 차별대우를 금하고 있으며,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협약 가입국인 우리나라에서 이는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고 지적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지난 1998년과 2000년 두 차례 결의안을 통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권의 하나로 인정했으며, 그동안 인권협약 가입국에 대체복무입법을 촉구해왔다. 이에 따라 독일·이스라엘·대만 등 40여 나라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헌법과 하위법령에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다.
병역을 앞둔 대학생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병역거부를 둘러싼 논쟁은 지난 한해 동안 꾸준히 외연을 넓혀왔다. 종교와 정치·사상적 이유에 따른 ‘특별한 개인의 소신’에서 출발한 병역거부 선언이 집단적으로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9월에는 아직 입영영장이 나오지 않은 7개 대학 14명의 대학생들이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며 “앞으로 입영영장이 나오더라도 이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또, 지난 11월에는 전국 각 대학 2003학년도 총학생회·단과대 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후보 100여명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입법화 등을 뼈대로 하는 공동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국학생회협의회(http://jhh.to)가 추진하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서명운동에는 이미 5만여명의 젊은이가 참여했다.
사회적 공감대 확산… 거부자 잇따른다
평화인권연대 최정민 상임활동가는 “올해 병역거부 문제가 특히 징집 대상인 대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확산된 것은 큰 성과였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대체복무제 관련법안을 만들었고, 국회의원들과 입법을 위한 간담회도 하는 등 공감대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아쉬운 점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면서, 하반기 들어 모든 병역거부자가 구속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년여 동안 약 20만명의 젊은이가 입영영장을 받았지만, 비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것은 4명뿐이다. 그러나 나동혁씨 1심 재판부의 지적대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기 전까지 수많은 젊은이들이 잇달아 병역을 거부하고 나설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다시 묻게 된다. 그들 모두 감옥으로 보낼 것인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불살생'이라는 신념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한 오태양(사진 오른쪽)씨와 최근 비종교인으로는 처음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나동혁씨. (박승화 기자)
재판장은 현역병으로 복무한 뒤 예비군까지 합하면 50~60개월 동안이나 자신의 시간을 국가를 위해 투자하는 젊은이들을 얘기했다. 그리고 “피고인이 자신의 생각에 투철하다는 점은 평가하지만, 현실적 법 집행 역시 피고인이 짊어져야 할 몫”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언제 내려질지 알 수 없다. 그동안 병역거부가 계속 이어질 경우 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피고인의 처지만 생각할 수는 없다.” 곧 이어 판결이 내려졌다. “피고 나동혁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한다.” 예상이라도 한 걸까 담담한 표정의 나씨는 천천히 몸을 돌려 엷은 미소를 방청석으로 보낸 뒤 ‘힘내라’는 동료들의 말을 뒤로 한 채 법정을 빠져나갔다. 비종교적 이유로 집총을 거부해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17일 평화주의자 오태양씨가 ‘불살생’이라는 신념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한 뒤 1년이 넘었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겠다는 젊은이들이 빠르게 늘어났지만,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입법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10월2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내놓은 발언은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우리는 불행히도 분단된 상황에서 군이 대치하고 있는 만큼, 전쟁이나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우는 것은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 병역의무 기피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처벌만으로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교육부 장관이 잘 설득해주기 바란다.” 병역거부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없다 보니 이에 대한 법적용 역시 천차만별이다. “판사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법적용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나씨에게 실형이 선고된 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법적용의 형평성에 대한 이의 제기가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엔인권협약 가입국임을 잊었는가

사진/ 지난 11월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