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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조계완] 동해야, 열받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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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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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생태계 관측하는 해양탐사선에 몸을 싣고… 파도와 싸우다 독도에서 일몰을 보다

그 이름만큼이나 밋밋하고 외로운 섬. 지난 11월28일 아침, 희붐하니 먼동이 터오는 선실에서 나는 움찔 놀랐다. 작은 창 가득히 두개의 돌섬이 눈앞에 와 있는 게 아닌가. 파도에 지쳐 흔들리는 배 안에서 밤새 뒤친 탓인지 독도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동해와 망망대해 한가운데 홀연히 솟은 독도는 긴 밤을 지나 다소 뜻하지 않게 다가왔다.

명태는 가고 오징어가 오는 바다

독도 주변 해역은 생태계 변화가 아주 빠르게 일어난다. 잠수부들이 보트로 독도에 다가가고 있다.
전날 낮, 한국해양연구원의 해양탐사선 온누리호에 몸을 싣고 경남 거제의 장목항을 떠날 때만 해도 독도까지 머나먼 항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도가 심상찮아 독도까지 직항로로 가긴 어려울 것 같고, 연안을 타고 동해까지 올라간 뒤 뒷바람을 받고 독도로 가면 됩니다.” 김석기(59) 선장은 “그러면 내일 낮에나 독도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항해 도중 직항로를 택한 모양이었다. 도착한 해역은 여러 관측지점 중 하나인 ‘ET지점’(경도 131도 43분, 위도 37도 17분)으로 수심 2000m. 1년 만에 다시 마주한 검푸른 겨울바다는 날이 밝으면서 잔잔해지고 있었다.


한국해양연구원에서 동해 해양탐사 동행을 제의해왔을 때, 나는 지난해 10월에 뛰어든 동해 오징어잡이배 체험을 퍼뜩 떠올렸다. ‘아, 다시 동해구나. 이번에도 체험은커녕 파도, 멀미와 싸우다 끝나고 마는 게 아닐까.’ 해양연구원의 이번 동해탐사 과제는 ‘동해기후변동에 따른 해양생태계반응 연구’. 조사팀은 해양연구원 장경일(44) 박사를 비롯한 17명으로, 9일간 동해에 머물며 수온과 해수면, 해류의 변화 등 동해 생태계를 관측하는 프로젝트다. 관측지점은 독도에서 울릉도 사이 8군데 등 동해전역.

동해는 수온 상승으로 인한 생태계 변화가 가장 빠른 곳으로, 이른바 ‘열받는 동해’는 해양연구자들의 최대 관심사다.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해 동해의 수온은 지난 100여년간 2℃ 안팎 올랐다. 이에 따라 명태·대구 등 냉수성 어류가 줄어들고 오징어·꽁치 등 더운 물에 사는 어족이 늘어나는 등 이상징후들이 감지되고 있다. 제주도 해역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홍치·도화돔 등 아열대성 물고기가 동해에서 잡힐 정도다. 특히 해저 심층수 수온이 증가하고 용존산소량이 감소하면서 깊은 바닷속이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탐사는 시티디(CTD)라는 무인 관측장비를 바닷속에 넣어 수온·염분 등을 측정하는 작업과 심해저에 해류측정기를 설치하는 무어링(mooring) 작업으로 나뉜다.

밤새도록 측정기를 내려보내며

위∼잉 소리를 내며, 갑판 한쪽에 있던 CTD가 로프에 매달린 채 2000m 심해로 내려갔다. 순간 선상에 설치된 컴퓨터 모니터에 그래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CTD가 내려가면서 수심별 수온·염분·용존산소량을 자동 측정해 보내는데, 이것이 실시간으로 그래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보세요, 수심 200m까지 수온 그래프가 왼쪽으로 급격히 하락하고 있죠. 표층은 15∼16℃인데, 200m 이하부터는 1℃ 이하로 뚝 떨어집니다. 1℃ 미만의 물이 동해물의 80∼90%에 이른다고 할 수 있죠.” 장 박사의 말처럼 수온 그래프는 200m 이하에서 1℃ 미만으로 딱 고정되고 있었다.

이처럼 바다 깊은 곳에 1℃ 미만의 냉수가 나타나는 곳은 동해뿐이다. 이 두꺼운 냉수층은 ‘동해고유수’로 불린다. 이 찬물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게 아니라 동해에서 만들어진 물인데, 겨울철 냉각으로 무거워진 표층수가 자꾸만 내려앉으면서 형성된다. 이 냉수의 순환을 파악하는 것이 동해의 해수순환을 규명하는 열쇠다. 도대체 동해의 물을 어떻게 가릴 수 있느냐고 의아해하겠지만, 북쪽에서 내려온 물과 남쪽에서 올라온 물은 뚜렷이 구분된다. 예컨대 태평양에서 발원한 나이든 물은 용존산소량이 적고 짠물인 반면 동해 북부에서 기원한 물은 차고 싱겁다. 이처럼 온도·염분·용존산소량 등 일정한 특성이 있는 해수 덩어리들이 어떤 속도로 어디로 이동하고 어느 지점에서 섞이는지를 연구하는 게 해양탐사다.

동해는 세계 해양학자들의 연구 경쟁 무대가 된 지 오래다. 대륙과 일본 열도로 거의 닫혀 있는, 호수 같은 해역이란 독특한 조건을 갖춘데다 대양의 순환 특성까지 있는 ‘미니 대양’으로서 독보적 존재기 때문이다. 조사팀의 김윤배(32)씨는 “동해는 태평양과 대서양의 축소판 해양이자 거대한 실험실”이라고 했다. 동해 연구를 통해 대양의 순환은 물론 지구 온난화 문제도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잠시 뒤, 갑판으로 끌어올려진 CTD는 해저 2000m까지 내려갔다온 탓인지 작은 파이프를 통해 짠물을 연신 토해내고 있었다. 해양탐사는 배 위에서 먹고 자야 하는데, 단 한시도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기 때문에 뱃사람이 아니고는 여간 배겨내기 어렵다. 게다가 사나운 파도라도 치면 일정이 늦어지기 때문에 날씨가 험악해질 경우를 감안해서라도 쉴 틈 없이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조사팀은 관측지점을 밤새 옮겨다니며 CTD를 해저로 내려보내고 다시 끌어올리는 강행군을 펼쳤다.

CTD 측정이 끝난 뒤 무어링 작업을 앞두고 갑판은 더욱 바빠지고 있었다. 무어링은 날이 어두워지거나 파도가 거칠어지면 중단할 수밖에 없다. 무어링은 긴 로프에 수심별로 몇개의 해류관측기를 매달아 바닷속에 고정시키는 작업인데, 로프 중간중간마다 부표처럼 둥둥 뜨게 하는 부이(bouy)를 달고 맨 끝에는 육중한 기차바퀴 2∼3개씩을 다시 매단다. 기차바퀴는 해저 바닥에서 로프를 끌어내리고, 부이는 반대로 물 위에 뜨려는 힘으로 작용하면서 2000m 로프가 바닷속에서 팽팽한 상태로 똑바로 서게 되는 원리다.

“이까짓 파도는 별거 아니야”

무어링 작업이 시작되자 갑판장 박순휘(43)씨가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는 갑판 끝부분에 위태롭게 섰다. 나를 비롯한 조사팀원들이 긴 로프에 부이와 해류계를 매달아주면 그가 대형 크레인을 이용해 바다에 띄워보냈다. 파도가 제법 치고 있었다. 바다에 띄운 관측장비가 파도에 휩쓸리는 날에는 자칫 로프를 잡은 박씨까지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까짓 파도는 별것 아니라고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태평양에 나가면 보통 파도가 5∼6m야. 멀미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선실에서 잠도 못 자는 친구도 있지. 갑판이 침실이지 뭐. 온누리호를 타고 태평양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일본해협에서 11m짜리 파도를 만났는데, 어디 피할 데도 없고 그냥 달렸지. 뒤에 태풍이 쫓아오잖아. 태풍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파도를 넘더라도 목숨 걸고 빨리 도망쳐야지.” 멀리 바다 위로 로프에 매달린 노란색·주황색 부이들이 군데군데 둥둥 떴다. 마지막으로 기차바퀴 2개를 매단 로프 끝부분을 바닷속에 집어넣은 순간, 바다 위에 떠 있던 부이들이 눈 깜짝할 새 물 속으로 사라졌다. 한순간에 2000m짜리 로프가 바닷속에 일직선으로 선 것이다. “떨어졌어요. 지금 위치, 마크!” 무어링 작업을 지휘하던 황상철(53)씨가 무전기로 선장실에 다급하게 알렸다. 이 지점을 체크해놓아야 1년 뒤에 돌아와서 해류계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다.

해류계 설치는 이번 탐사의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해양연구원은 지난 99년부터 해마다 울릉도-독도 중간 지점 한곳에 해류계를 설치해왔는데, 이번 탐사에서는 5군데에 동시 설치한다. 울릉도-독도 간 여러 곳에서 해류를 관측하는 건 이번이 최초다. 해류계는 물 속에서 1년간 해류의 흐름과 수온·염분을 데이터로 자동 저장한다. 그런데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심해에서 해류계는 어떻게 회수할까. “기차바퀴 바로 윗부분에 음파식 자동분리기를 달아놓았는데, 1년 뒤 이 지점에 돌아와 자동분리기 고유코드를 입력하면 기차바퀴와 연결된 끈이 자동으로 끊어지면서 바닷속에 고정돼 있던 해류계들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되죠.” 황씨의 설명이다. 로프가 끊어지는 바람에 가끔씩 해류관측기가 정처 없이 동해를 떠도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일까. 갑판에 놓인 관측장비마다 ‘습득시 연락주시면 후사함’이라는 문구와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 눈길을 끌었다.

동해에 한 점처럼 떠 있는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는 사실 작은 돌섬이 아니다. 애국가의 가사대로 동해물이 다 마른다면 2000m 이상의 송곳 모양의 해산(seamount)이 드러날 것이다. 독도는 이 산의 꼭대기다. 이날 오후 잠수부들이 보트를 타고 독도로 접근했다. 몇해 전 해양연구원이 독도 주변 수심 23m 바닷속에 설치한 해수면 관측장비를 교체하기 위해서다. 나를 비롯한 조사팀 일부도 온누리호에서 내려 보트를 타고 독도에 상륙했다. 그러나 곧 바다에 어둑살이 찾아들었다. 해가 제일 먼저 뜨는 동쪽 땅끝 독도에서 일몰을 보게 될 줄이야. 온누리호 너머 해무(海霧) 사이로 불그스름한 기운이 퍼지며 수평선에 노을이 걸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해가 풍덩 가라앉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는 서둘러 독도를 나왔다. 잠수부들도 관측장비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독도 연구성과물이 영유권에도 영향

밤새 해수면 관측장비를 점검하는 해양조사팀(왼쪽). 관측 장비인 CTD를 바닷속에 내려보내고 있다.
2038m 지점, 수온 0.195℃, 염분 34.07, 산소 3.59㎖/ℓ. “이 관측치를 보면 동해 깊은 곳은 오히려 용존산소량이 증가하는 현상이 보입니다. 작년 겨울에 동해북부 표층수가 저온화되면서 이 물이 동해 깊이 가라앉은 겁니다.” 이날 밤 자정께, EC1지점(경도 131도 25분, 위도 37도 19분)에서 CTD 측정을 하던 장 박사는 새로 나타난 현상이라며 다소 흥분하고 있었다. 그동안 알려진 ‘열받는 동해’와 달리 난류수의 세력이 조금 약화됐다는 것이다.

온누리호의 엔진소리가 낮게 규칙적으로 밤바다에 퍼져나갔다. 저 멀리 오징어잡이 배들이 내뿜는 환한 불빛들이 배가 움직일 때마다 밤하늘에 이리저리 따라 흔들렸다. 갑판 한구석에서는 누군가 놓아둔, 오징어 채낚기용 낚싯줄에 매달린 작은 등이 밤새 혼자 깜박거리고 있었다. 새벽녘, 선실에 앉아 CTD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김윤배씨가 흥미로운 말을 꺼냈다. “우리의 독도 주변 동해 연구논문을 보면 ‘독도는 자국의 영토이며…’로 시작해요. 이런 연구물이 국제 저널에 자주 발표될수록 독도가 한국 땅이란 사실이 자연스럽게 공표되는 겁니다. 사실 동해의 지형을 나타내는 용어만 봐도 일본분지, 야마토분지, 대화퇴 등 일본쪽 명칭이 대부분인 게 현실이죠.” 동해에 대한 연구성과물이 독도의 영유권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1932년에 무려 50척의 조사선을 동원해 독도 주변 해역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이때의 성과물이 지금까지도 국제 해양논문에 줄곧 인용된다. 한국 연구자들은 동해를 ‘East Sea’라고 표기하는 반면 일본 연구자들은 ‘Japan Sea’라고 쓰는데, 일본쪽의 동해 연구자료가 많다 보니 국제적으로 ‘일본해’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갑판장, 들고 있는 줄 꼭 붙잡아!” “엔진, 잠깐 정지, 스톱!” 다음날 오후, EC1지점의 무어링 작업은 다소 긴장감이 흘렀다. 바다 날씨가 거칠어지면서 파도가 이따금 갑판까지 치고 들어왔다. 잠수부들도 거친 파도 때문에 해수면 관측장비 수색을 포기한 참이었다. 이미 띄워놓은 관측장비들이 집채만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큰 고래와 힘겨루기하듯 나를 비롯한 조사팀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로프를 꽉 붙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거친 파도와 싸운 뒤 우리는 2300m 바닷속에 가까스로 해류관측기를 고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이날 밤, 울릉도 포구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육지의 그리운 불빛이었다.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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