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나의 선택

438
등록 : 2002-12-11 00:00 수정 :

크게 작게

이번 대선에서도 지역주의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판세가 지역별로 뚜렷이 나뉘고, 텃밭이니 무주공산이니 하는 말들이 신문·방송에 여과 없이 오르내립니다. 지역과 관련된 발언 한마디에 인터넷 게시판이 폐쇄되고, 협박전화가 빗발치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지역주의 못지않게, 아니 지역보다 큰 변수로 떠오른 것이 세대입니다.

50~60대와 20~30대는 지지후보가 뚜렷이 엇갈립니다. 그래서 한솥밥을 먹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기호에 투표할 확률은 절반도 되지 않는답니다.

역대 선거에서도 세대 차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욱 뚜렷이, 지역구도보다 더한 선거의 최대 변수로 등장했습니다. 세대구도는 지역구도보다 훨씬 의미 있고 생산적인 변수입니다.

한 세대는 집단적 경험을 공유해 비슷한 의식과 행동유형을 갖습니다. 물론 한 세대 안에서도 다양한 분화와 차이가 있습니다. 또 나이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나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주변을 보면 50대 같은 30대가 있고, 20대 같은 60대도 있습니다.

세대 대결구도는 올해 치른 지방선거 때는 없었습니다. 젊은층이 정치에 등을 돌리고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세대구도가 본격화된 것은, 최근 들어 이들이 ‘정치적으로 출현’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에 철저히 무관심한 20~30대가 50~60대와는 다른 지향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함으로써 세대 대결을 하게 됐습니다.


앞선 세대의 젊은 시절처럼 지금의 20~30대도 폭발적 욕구와 에너지가 있습니다. 월드컵 때 붉은악마는 그 현신입니다. 집단적 에너지는 최근 반미시위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판으로 전이됐습니다.

지금의 20~30대는 물질적 풍요와 절차적 민주화 시대에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탈권위주의적이고 수평지향적이며 자발적이고 자기표현 욕구가 강합니다.

기성세대와 이들의 결정적 차이점은 결과중시와 과정중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과 가난을 겪은 기성세대에서는 ‘하면 된다’(go get it) 신화가 지배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내야 했으며, 패배는 없는 결과지상주의입니다.

이에 비해 새로운 세대는 절차·과정·내용을 중시합니다. ‘신나게, 바로 하자’(do it right)고 합니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패배가 있습니다. ‘신나게, 바로’는 이들이 왜 월드컵에 열광했고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에 적극적인지를 설명해줍니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전쟁과 가난이라는 어려운 사정 때문에 유보한 가치- 곧 상식- 의 복원을 지향합니다. 한 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낫다, 그렇지 않다고 단순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상식의 복원은 대단하고 소중한 힘이며, 이들의 이런 지향이 이 시대의 ‘합리적 메인스트림’입니다.

“젊은 세대의 이러한 에너지와 가치를 살릴 수 있다면 그 정치는 성공이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 이러한 에너지와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은 누구인가 그는 무엇보다 상상력과 진정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50~60대와 20~30대 사이에 낀 40대가 곰곰이 따져본 ‘나의 선택’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