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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숨은 이기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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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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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세화ㅣ한겨레 기획위원(한겨레 강창광 기자)
개인을 집단에 종속시키는 집단주의 윤리가 합리적 토론과정을 가로막고 있다.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는 반면 집단 윤리를 강조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다.

사회화 과정을 통하여 개인주의자들이 길러지는 프랑스 사회에서 65%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소득의 일부로 가난한 이웃의 의료비·교육비·주택비 등을 부담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다. 개인주의자를 이기주의자의 사촌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선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경쟁의식보다 연대의식을 우위에 두는 교육과정이 큰 몫을 차지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라는 점 자체가 더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 집단에 숨어 있지 않은 개인주의자들이 합리적 토론을 거쳐 사회 변화와 진보를 도모하는 과정이 이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볼 때 의약분업 파동 등 한국에서 보이는 사회현상은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과정 못지않게 개인주의를 멀리하는 한국 사회의 습속이 집단에 숨어 있는 이기주의자들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한다.

집단 안에 익명으로 숨어서…

흔히 공동체주의 전통의 영향 때문이라고 좋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는 개인주의자를 이기주의자의 동의어쯤으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의식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부지불식간에 개인주의자를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 또는 ‘자기중심주의자’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령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선언한 고종석은 이 사회에서 아웃사이더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항상 집단의 힘이 개인의 힘보다 더 센 법이다. 그 위에 개인주의자는 헤게모니에 관심이 없다.


문제는 이렇게 개인을 집단에 종속시키는 집단주의 윤리가 구조적으로 합리적 토론과정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우선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는 반면 집단 윤리를 강조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 의해 방증된다.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남의 개인’도 ‘나의 개인’만큼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알지만, 개인을 사회집단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의식이나 관념, 또는 일상에 젖어 있는 집단 구성원들은 집단의 헤게모니에 기대거나 숨은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율적인 개인을 포기하고 패거리에 몸을 담는 것이다.

나는 지금 집단이기주의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개인주의를 배제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기주의자들을 양산하고 수구성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한겨레> ‘왜냐면’의 토론 제기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교육부 관료들이 보여주듯이, 숨어 있는 이기주의자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사회에서 공익을 위한 합리적 토론과정은 배제되고 수구성이 굳어진다. 관련자들은 집단 안에 익명으로 숨어 있을 수 있는 점을 활용한다. 이 익명의 편의성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평가할 뿐 참여하지 않는다. 술집에서나 강의실에서는 한국의 ‘개판 정치’를 열심히 떠들면서 비판하지만 정작 정당에 참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심지어는 투표조차 하지 않기도 한다. 또 익명의 편의성은 구성원들의 창조성은 계발시키지 않고 무능과 불성실을 드러나지 않게 함으로써 구성원들에게 긴장감을 늦추게 하고 일상적 타성에 머물게 한다. 고인 물이 썩듯이 사회는 정체되는 한편으로 규율의 칼날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개인들에 의한 사회 변화 요구와 주장을 집단의 규율로 심판하는 것이다. 사회는 더욱 경직된다.

수구세력은 규율을 떠받든다

한국 사회의 수구 기득권 세력이 국가보안법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듯 어떤 집단에서나 헤게모니 세력은 기존 규율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든다. 사회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규율이 사회를 위하는 게 아니라 헤게모니 세력을 위해서라는 점을 국가보안법은 확인해준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인 것과 같다. 진정 사회의 진보와 변화를 바란다면 오늘의 현실과 미래의 전망 사이에서 끝없는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한 단계 올라설 때마다 미래의 전망은 달라진다. 따라서 사회 진보를 위하여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규율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주의다. 구성원들의 요구나 주장, 또는 표현에 대한 평가 잣대는 기존 규율이 아니라 공익에 이로운가 아닌가에 있어야 한다는 데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래야만 집단에 숨은 자들의 이기성과 수구성이 합리적 토론과정을 배제하는 데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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