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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선천성 기형 ‘국보법 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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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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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장례식준비위가 마련한 행복한 상가… 인의협이 사망진단서 발급해 장례 절차 밟아

무릇 죽음은 슬픔과 애도 속에 맞는 게 도리다. 그런데 한 죽음을 앞에 두고 감격과 흥분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축제분위기 속에 장례식 준비위원회를 띄웠다. 이들은 의사로부터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아 의학적 사망절차를 완결지었고, 매장신청이 나오면 땅에 묻어 법적·제도적 사망절차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그런데 남의 죽음에 춤추며 장례위원회에 참석한 ‘패륜’ 인사들의 면모가 뜻밖이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문규현 신부, 성유보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김세균 서울대 교수, 김형태 변호사 등 A4지 석장 분량의 장례위원회 명단에는 평소 민주화운동에 몸 바쳐온 인사들의 이름이 빼곡이 들어가 있다.


민주화운동 인사들 대거 참여한 장례위

이들이 11월29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망을 선포한 대상은 국가보안법이다. 1948년 11월1일 제정된 국가보안법 제정 54주년을 맞아 국가보안법 장례식준비위를 만들어 12월1일 오후 2시 서울 종묘공원에서 국가보안법 장례식을 치렀다. 12월6일 오전 10시, 양심수 석방과 사면복권 및 명예회복 촉구 기자회견, 14일에는 양심수 후원의 밤을 개최한다.

국가보안법 장례위원회는 대통령 후보들에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대선공약에 넣도록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는 11월29일 국가보안법에 대한 사망진단서를 발급했다. 정식 사망진단서 양식에 근거해 인의협이 발행한 사망진단서 13개 항목에는 국가보안법의 ‘생애’가 농축돼 있다.

국가보안법의 주민등록번호는 481201-113113이다.

1948년 12월1일 제헌국회 법률 제10호로 제정 공포된 국가보안법은 이듬해 한해 동안에만 11만8621명을 입건 또는 체포했다. 김영삼 정권 때도 국가보안법으로 1974명이 구속됐고, 김대중 정권 때는 1036명이 이 법에 의해 구속됐다. 주민등록번호 뒤 113113은 간첩신고 전화에서 따왔다. 본적은 일본국 미군정시 분단구 독재동 1번지다.

1948년 12월에 만든 국가보안법은 당시 여수주둔 국군 14연대 반란사건 뒤 일제시대 만든 치안유지법을 기초로 만들었다. 일제치하에서 치안유지법이 독립운동을 억압하고 조선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었다면,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보안법은 미군정을 거쳐 분단국가의 독재정권에게 정권안보와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주소는 대한민국 수구시 분단구 독재동 1번지였다.

국가보안법은 대부분 우익인사로 이뤄진 제헌국회의원 47명이 ‘일제하 치안유지법의 답습, 사상과 인권탄압 가능성, 정치적 악용 우려’ 등의 이유를 들어 국가보압법 폐기동의안을 낼 정도였다. 이 우려처럼 역대 독재정권에서 국가보안법은 국가보안 대신 정권의 방패막이 구실을 했다.

사망진단서에 국보법의 53년 생애 담아

사망장소는 대한민국 자주시 통일구 민주동 탑골공원이다.

탑골공원은 민주화운동을 하다 구속된 인사들의 가족들의 모임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회원들이 매주 목요일 오후, 고난을 상징하는 보랏빛 스카프를 매고 시위를 하는 곳이다.

사인은 직접사인이 6·15 공동선언 채택과 민족의 통일 열망에 의한 심장마비, 간접사인은 민중의 민주주의, 인권 열망에 의한 호흡곤란이었다. 선행사인은 다발성 선천성 기형으로 진단됐다.

발병부터 사망까지의 기간은 53년 11개월이었다.

발병일시가 1948년 12월1일이었고, 사망일시가 2002년 11월29일이었다.

인의협은 사망진단서 해부의 주요 소견으로 ‘선천성 기형이 너무 심해 53년 이상 생존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경우로 학회에 증례 보고할 예정임’이라고 밝혔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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