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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누가 뭐래도 의문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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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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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법무관 출신 법조인이 밝히는 사망사건 처리… 부대관리 차원서 진실 규명 철저히 막아

“결국 국방부 사전에는 의문사나 타살은 있을 수 없군요.”

군법무관으로 근무하다 전역한 한 법조인은 ‘허원근 일병이 자살했다’는 11월28일 국방부의 최종 조사결과 발표를 보고 씁쓸하게 말했다. 실제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의문사’란 말 대신 ‘민원제기 사망사고’란 용어를 쓴다. 국방부가 군 의문사를 조사하기 위해 꾸린 조직이 ‘민원제기 사망사고 특별조사단’이었다.

“일반 사회에서 검찰 같은 수사기관이 열심히 수사해 실적을 올리면 표창을 받고 승진도 하지만 군대 안에서는 정반대라고 보면 됩니다. 군에서는 헌병대 등 수사기관 구성원들도 소속 부대 지휘관의 부하들입니다. 부대 안에서 벌어진 비리나 각종 사고를 들춰내면 결국 지휘관에게 불똥이 떨어지게 마련이죠. 특히 문제가 크게 불거지면 지휘관은 부대관리를 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보직해임되는데 수사기관이 어떻게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수사할 당신, 군대를 떠나라”


사진/ 허원근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씨는 "내 새끼는 죽었지만 다른 새끼가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이 법조인은 “특히 군 안에서 일어난 사망사고가 타살이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사단장까지 지휘계통을 따라 줄줄이 구속되거나 중징계를 받기 때문에 군수사기관이 초동수사 단계에서 적극적인 진상규명 노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허원근 일병이 타살됐다는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결과에 대해 국방부는 지난 8월28일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고 역사에 진실을 남긴다는 비장한 각오’로 전문 수사관 24명 등으로 구성된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 진상규명 특별조사단’을 꾸려 3개월 동안 조사를 벌였다.

국방부 최종 결론은 조사 착수 2달 만인 10월29일 이례적으로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 이미 예견됐다. 국방부는 조사가 끝나지 않았고 새로운 사실이 발견된 것도 아니지만 ‘살인집단’, ‘은폐집단’으로 몰려 군의 명예가 먹칠됐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로 중간발표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 일병 사건이 18년 전에 일어났고 참고인들의 기억도 흐릿하고 진술 번복이 잦은 점을 감안하면 국방부와 의문사진상규명위가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11월28일 국방부가 발표한 최종 조사결과 발표 보도자료를 보면 의문사진상규명위에 대한 적대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사진/ 11월28일 정수성 국방부 특별조사단장이 '허 일병은 자살했다'는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국방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조사결과 첫째, 허원근 일병은 자살했다. 둘째, 의문사위원회에서 허 일병 사건을 타살로 발표한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의문사진상규명위는 현장 검증을 조작했다”, “의문사위원회 조사관이 참고인 진술조서를 허위로 작성한 근거는…” 등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결과에 대한 전면 부인으로 일관했다.

의문사위 조사 모두 무시하고 월권까지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라는 국가기관의 조사결과에 대해 최소한의 배려나 존중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국방부가 의문사진상규명위에 대해 ‘판단이 다르다’는 식의 문제 제기가 아니라 ‘조작’, ‘허위’ 등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규정했다.

나아가 국방부는 “의문사 진상규명위에서 주요 참고인에게 지급할 예정인 보상금도 (진술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지급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등 자기 권한을 뛰어넘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30여개 인권단체들은 11월29일 낸 성명에서 군이 살인자 집단으로 몰리는 억울함에 대해 “일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군의 이어지는 무책임한 자세와 겸허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군의 행태를 보노라면 누구를 위한 군대인가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63)씨는 ‘국방부 최종 조사결과’에 대한 소감을 묻자 “내 새끼는 죽었다. 하지만 다른 새끼는 안 죽어야 하는 것 아니냐. 또 죽더라도 왜 죽었는지는 속시원히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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