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치질로 인고의 세월을 보내던 권혁철 기자, 수술대에 오르다
“내 참,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보네.”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11월12일 밤 아내에게 “<한겨레21>에서 항문질환 관련 기사를 준비하는데, 내가 내일 오후 직접 치질수술을 받은 뒤 기사를 쓰기로 했다”고 설명했더니 돌아온 반응이었다.
앓아본 사람은 이해할 것이라
나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다”고 눙치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머릿속에 든 것이 바닥나니까 이제 몸으로 때우는 것 아니냐”는 아내의 눈길이 뒤통수를 때렸다. 자리에 누우니 내일 받을 수술에 대한 걱정 때문에 가슴 한켠이 무지근했다. 마치 12년 전 입대 영장을 받고 논산훈련소로 떠나기 전날 밤처럼 초초하고 불안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없던 일로 되돌리고 싶었다. 10년 가까이 치질로 고생하면서도 병원을 찾지 않은 것은 바쁘기도 했지만, 수술하면 굉장히 아플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전, 병원에서 이미 수술 전 각종 검사를 마쳤고 수술·입원 날짜까지 잡았다. 무엇보다 수술 체험기를 써야 했고, 해당 병원에 취재협조 요청까지 해둔 상황이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 가운데는 ‘대단한 수술도 아니고 고작 치질수술 하나 받는데 웬 엄살이냐’고 빈정거릴 수도 있겠다. 치질과 무관한 사람의 처지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치질을 앓거나 앓아본 사람은 그 고통과 수술을 앞둔 나의 두려움을 이해할 것이다. 애초 ‘기자의 치질 수술 체험기’ 발상은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됐다. <한겨레21> 사회팀 기획회의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항문·대장 환자가 크게 늘었다. 하지만 다른 신문이나 잡지에서 하는 것처럼 예방법·치료법 같은 정보를 밋밋하게 나열하는 것은 피하자. 예컨대 치질을 앓고 있는 기자가 직접 수술을 한번 받아보고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으면 신선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이 이야기가 기사계획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치질환자인 내가 12일 오전, 서울 방배동 대항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다음날 오후에 수술을 받기로 했다. 병원에 가니 웬 치질 환자가 그렇게 많은지 깜짝 놀랐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검사하고 수술을 받고 있었다. 남성 환자들은 나이든 분과 젊은이가 골고루 있었다. 여성 환자들은 대부분 중년이나 할머니들이었다.
병원 관계자는 “20~30대 여성 가운데도 항문 질환자가 꽤 있지만 미혼 여성들은 수치심 때문에 병원에 잘 오지 않고 생활에 바쁜 30대 주부들은 그냥 참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항문질환의 특성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 겪는 심리적 아픔이 꽤 커 병원을 찾는 젊은 여성들 가운데는 얼굴을 숨기려고 마스크나 모자를 쓰고 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 병원에는 여성 환자를 진료하는 여의사를 따로 뒀다고 한다.
기구가 항문 속으로… 으악!
수술 전에 혈액검사, 가슴 방사선검사, 항문 초음파검사, 항문 기능검사 등을 했다. 항문초음파검사와 항문 기능검사는 항문에 기구를 밀어넣어 검사한다. 낯선 이에게 항문을 내보이고 ‘개방’해야 하는 환자들의 수치심을 감안한 듯 검사자들은 무척 친절하고 정중했다. 검사할 때 아프지는 않았지만 의료기구가 항문 속으로 들어오는 이물감은 그야말로 ‘으악,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였다. 수술하는 날 아내가 하루 휴가를 내 함께 병원에 갔다. 처음에는 황당해하던 아내는 “그렇게 병원 가라고 해도 안 가고 버티더니 이렇게라도 수술받으니 다행”이라고 좋아했다. 병원에 도착해 오후에 입원실을 배정받은 뒤 환자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4명이 함께 쓰는 병실에는 이미 수술을 받은 30~40대 3명이 누워 있었다.
오후 3시20분 드디어 수술이 시작됐다. 먼저 허리에 마취를 하고 30분가량 기다렸다. 마취가 됐는지 다른 쪽은 누르면 감각이 있는데 엉덩이쪽은 날카로운 걸로 눌러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 조금 뒤 수술실로 옮겼다. 수술에 앞서 항문 근처에 난 털을 깍았다.
“수술하기 전에 미리 털을 깎습니다. 수술 뒤 내 털이 어디 갔느냐고 찾지 마세요.” 수술을 앞둔 불안한 환자의 마음을 풀어주는 의료진의 위트가 고마웠다.
평소 나는 다른 사람도 나처럼 항문에 털이 났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당신 똥꼬에 털났어요”라고 물어볼 수가 없었는데 오랜 궁금증을 풀 기회가 왔다.
“저말고도 다른 사람도 털난 사람이 있나요.” “남자들 가운데는 좀 있어요. 여자들 가운데도…. 결혼하셨으니 아실 텐데요.”
수술은 엎드린 채 했다. 엉덩이쪽을 빼면 나머지는 신체의 감각과 의식은 말짱했다. 수술 장면을 앞쪽 텔레비전 화면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보았다. 내 항문의 모습을. 10년 동안 치질로 시달린 항문의 상태는 실로 처참했다. 응가를 한 아들·딸의 뒤를 닦아줄 때 본 애들의 항문은 마치 국화꽃처럼 싱그러웠다. 그에 비해 내 항문은 병들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불거져나온 치핵 덩어리를 잘라내는 등 수술은 40분 가량 걸렸다.
수술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많은 환자들은 치질수술이 너무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지레 짐작해 아예 병원에 가기를 꺼린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한 환자는 20년 전에 다른 병원에서 치질수술을 받은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정말 아팠어요. 지금처럼 내시경 같은 기계가 없었으니 손으로 항문을 벌려 의사가 육안으로 상태를 확인했으니 정말 똥구멍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어요. 수술한 뒤에도 얼마나 아팠는지 좀 과장하면 어기적어기적 기어다녀야 했어요.”
남몰래 밀어넣던 항문이여…
하지만 실제 요즘 수술은 기술이 발달해 생각보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수술을 마치고 입원실로 돌아왔다. 동병상련의 30~40대 남자 4명과 함께 치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같은 경험을 했다.
8년 동안 치질을 앓은 이아무개씨는 자신을 ‘생리하는 남자’라고 소개했다. 술 많이 먹거나 피곤한 날은 화장실 가기가 겁난다고 했다. 변기에 흥건하게 고인 피를 확인할 때의 공포감과 낭패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김아무개씨는 집 밖에서 화장실 가기가 겁난다고 했다. 볼일을 보고 난뒤 항문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물로 씻고 손으로 항문을 밀어넣을 수 있지만 밖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참 곤란하다. 항문이 밖으로 나와 있으니 자리에 바로 앉지 못하고 엉덩이를 쭉 빼거나 비스듬히 앉아 있어야 했다. 그는 집 밖에서 볼일을 보고 난 뒤 한적한 공원 의자나 회사 건물 옥상에 누워 남 몰래 항문을 밀어넣곤 했다고 한다.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출장갈 때마다 고역이었다. 지난 7월, 중국 옌볜 지역에 1주일 출장을 가서 볼일을 보다 피가 나서 그만 흰색 면바지를 흥건하게 적시고 말았다. 남방셔츠를 옷 밖으로 끄집어내 피 묻은 엉덩이를 가리고 취재를 다녔지만 참 곤혹스러웠다.
2박3일 입원기간 동안 마치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처럼 병실 침대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봤다.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어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1월15일 오전, 진통제 등이 든 약 봉지를 들고 드디어 퇴원을 했다. 3일 만에 집에 돌아오니 6살 아들 녀석이 반갑게 맞이한다.
“아빠, 보고싶었어. 똥꼬 이제 안 아파” “이젠 괜찮아.” “그럼 아빠 똥꼬에 똥침놔도 돼” “…그건 안 돼.”
회복 과정에서 크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17일께 진통제가 떨어진 뒤 수술한 곳이 쓰리곤 했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려면 약 1달은 걸린다고 한다. 19일 오후부터 회사로 나갔다. 일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으나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다. 가끔 스페인 화가 고야의 그림 ‘나체의 마야’처럼 요염하게 앉거나 일어서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다.
요즘 볼일 볼 때 ‘또 찢어지면 어쩌나’싶어 엉덩이쪽에 힘을 주기가 겁난다. 아직 엉덩이쪽이 묵직했지만, 다시 ‘국화꽃 같은 항문’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산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수술 장면을 앞쪽 텔레비젼 화면으로 지켜보며 우는 듯, 웃는 듯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수술 모습. 수술은 40분 가량 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