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에 인정받은 “나 아냐!”
등록 : 2002-11-20 00:00 수정 :
‘사법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자는 누구인가’
1977년 10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19살 앳된 청년이 법정에 섰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의
로버트 브라운. 그는 맨체스터 찰스베리 지역에 사는 50대 독신녀를 폭행해 숨지게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평결에 앞서 재판장은 배심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찰의 말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살인 혐의자의 말을 믿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배심원들은 경찰의 말을 믿었고, 청년은 유죄평결을 받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그로부터 25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11월14일. 이제는 불혹의 나이를 넘어 중년이 된 브라운이 마침내 자유로운 몸으로 감옥 문을 나섰다.
경찰은 사건 발생 당시 4달 만에 브라운을 붙잡아 36시간 만에 자백을 받아냈다. 증거물이라며 그에게 들이댄 피묻은 청바지는 유산한 임산부의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의 코트에서 발견된 섬유조각은 브라운 힐이라는 다른 혐의자의 옷과 같은 것이었지만, 경찰은 이런 사실을 감췄다. 최근 항소심 과정에서 브라운이 작성했다는 자백서를 검토한 언어학자들은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부패한 경찰이 사건을 맡았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실제로 브라운 사건을 맡았던 잭 버틀러 경위는 이미 지난 1983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돼 4년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장 로드 경은 “당시 배심원들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을 알고 있었다면 전혀 다른 평결을 내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운은 10년 전부터 가석방 대상에 포함돼 죄를 인정하면 석방될 수도 있었지만, 이를 끝까지 거부한 채 법정싸움을 벌여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