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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점정화룡(點睛畵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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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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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그릴 때 몸통과 팔다리를 그리고 마지막에 눈을 그려넣습니다. 화폭의 용에 눈을 넣음으로써 미완의 작품을 완성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가 11월15일 후보단일화에 합의했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덥석 손을 맞잡은 것은 용의 눈을 그려넣은 일입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고, 결정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용은 없습니다. 두 후보와 후보단일화 세력들은 눈을, 그것도 용의 눈을 그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려진 것은 눈알뿐이고, 몸통·다리·입·코 등은 형체가 없습니다.

용의 형체는 앞으로 그려져야 합니다. 용을 그리려다 용을 그릴 수도 있고, 이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용을 그리는 순리적 순서는 화룡점정(畵龍點睛)입니다. 남조시대 양나라 화가 장승요는 난징의 안락사 벽에 두 마리 용을 그리고 일부러 눈은 넣지 않았습니다. 중국 화단의 사조(四祖)로 꼽히는 그가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붓에다 먹을 듬뿍 찍어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넣자, 그 용이 정말 승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후보단일화는 눈부터 찍고 용 그림을 그리는 점정화룡(點睛畵龍)의 화법입니다. 새로운 방법, 새로운 시도가 전례 없기 때문에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용 그림이 나오려면 넘어야 할 고비가 적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후보단일화를 놓고 아코디언처럼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원칙없는 야합이다’, ‘희망의 결단이다’, ‘이도저도 아닌 관심 밖의 일이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가에 따라 평가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 시민은 물론 지지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대척점에 있는 ‘야합’과 ‘결단’ 그 어느 쪽이라고 잘라 말하기 어렵고, 양쪽 다 일말의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보단일화는 이제 첫 단추가 꿰어졌을 뿐이며 앞으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번에 용의 눈을 그렸다고 평가하는 것은, 단일화가 풀죽은 선거판을 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권자들에게 정책적 차별성을 부여하고, 선택의 여지가 있는 선택의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점정화룡이 이무기가 되지 않으려면 세 가지 요건이 앞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 합의를 지켜 타협과 승복의 정치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 한나라당의 보수적·반동적 정책과 대비되는 진보적·자주적 정책이 제시돼야 합니다. 셋째 권력정치와 변절에 물든 인물을 털어내야 합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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