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청송의 아우성을 들어라

434
등록 : 2002-11-14 00:00 수정 :

크게 작게

곱징역이 재사회화 교육이라니… 세번째 단식하는 청송 제2보호감호소 피감호자들의 절규

사진/ 청송 제2보호감호소 전경(위)과 독방이 있는 사동(오른쪽)의 모습. 피감호자들의 호소는 세 번째 단식에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가는 길에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지난 11월8일 오전, 경북 청송 제2보호감호소 접견실에서 열흘째 단식을 하고 있는 피감호자 ㅇ씨를 만났다. 입술이 다 타들어간 ㅇ씨는 오랜 단식으로 인해 많이 고통스러운 듯 대화 도중 몇 차례 말을 끊고 배를 움켜쥐곤 했다. 그는 피감호자들이 올 들어 벌써 세 번째 집단 단식을 하는 이유를 또박또박 설명한 뒤 “아무리 죄 지은 놈들이지만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열흘씩 밥을 굶으면서 밖에다 전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제발 귀기울여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이번에도 사회보호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하면 범죄자라는 이유만으로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악법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인권 무시하는 사회보호법

청송 제2보호감호소 피감호자들은 지난 5월과 지난달에 이어 올 들어 세 번째 집단 단식을 벌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단식은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하면서 이들의 주장은 감호소 담장 안에서만 맴돌았다.


이번 단식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최근 감호소에서 가출한 이들과 피감호자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단식 상황을 알리면서부터다. 이들은 안에 있는 작업장에서 일하고 받는 근로보상금(현재 급수에 따라 하루 1100~4500원) 인상과 가출소 기준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단식은 근본적으로 ‘사회보호법’이라는 잊힌 ‘악법’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같은 범죄를 여러 번 저지른 사람은 재범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죗값을 치른 뒤 ‘사회보호법’에 따라 7년의 보호감호 처분을 받는다. 형기는 마쳤지만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에 7년 동안 사회에 적응하는 훈련을 받아 재범 우려가 없다고 판단될 때 사회로 내보내겠다는 것이 보호감호 처분의 목적이다. 즉, 교소도가 죗값을 치르는 곳이라면, 감호소는 사회 적응을 위한 공간일 때 보호감호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청송 제1·2보호감호소(1감호소에서 감호 성적이 좋아 급수가 올라가면 2감호소로 옮겨가는데 현재 1감호소 800여명, 2감호소에 70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는 교도소에서 간판만 바꿔 달았지 똑같은 ‘감옥’이다.

3년형을 살고 감호처분 7년 가운데 6년을 채우고 지난 8월 가출소한 장은석(41)씨는 “감호소로 옮겨가면서 교도소에서 입던 푸른 옷에서 누런 옷으로 갈아입었을 뿐 처우나 교정 프로그램에서 다른 게 하나도 없었다”고 말한다.

“밖에 나오자마자 배관기술 2급 자격증을 들고 보일러 설비센터를 찾아갔지요. 배관 관련부품들을 꺼내놓고 조립해보라고 하더군요. 나름대로 안에서는 열심히 했는데 생전 처음 보는 부품인데다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쩔쩔매는 모습을 보더니 안 되겠다고 하기에 처음부터 다시 배워 열심히 하겠다고 매달렸지요. 그랬더니 젊은 공고 졸업생들도 많은데 뭐하러 당신처럼 나이든 사람 어렵게 기술 가르쳐서 쓰겠느냐고 하더군요.”

먼저 가출소한 후배 ㅇ씨가 “나와 보니 막노동을 해도 이력서가 필요한 세상이라 청송 출신이라는 게 금방 알려지고, 그 뒤에는 막노동판에서도 왕따당해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는 편지를 보내왔을 때도 장씨는 자격증이 있으니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단다. 그러나 막상 밖에 나오니 자격증은 새로운 기술에 밀려 아무 소용 없는 종잇조각이 돼버리고 손이 쥔 돈은 6년 동안 감호소 안 핀공장 등에서 일해 번 돈 80여만원이 전부였다.

재사회화 교육은 흉내에 지나지 않아

고아인 ㅇ씨는 일자리도 없이 PC방과 찜질방 등을 전전하다 ‘강도예비’로 다시 구속돼 또 한번 보호감호 7년 처분을 받아 복역 중이다. 지난 2000년부터는 60%가 넘는 가출소자들이 ㅇ씨처럼 가출소 뒤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를 거쳐 감호소로 돌아온다.

“범죄자들에게 감호소는 악보에서 ‘도돌이표’ 같은 거죠. 나가도 어차피 살길이 없으니 다시 죄짓고 들어오라는….”

가족도 없어 친구집에서 신세를 지는 장씨는 재범 우려만으로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법인 사회보호법 폐지운동을 벌이겠다며 인권단체와 함께 제2감호소 출소자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꾸릴 준비를 하고 있다.

“막연한 재범 우려만으로 무조건 7년을 더 가두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다시 죄를 지을지는 신만이 판단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지난달 25일 가출소한 ㅈ(38)씨의 항변이다. 지난 2000년까지 매달 70~80명씩 가출소를 했는데 점점 줄어들어 지난해부터는 한달에 20여명 남짓 가출소를 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감호소 출신 서너명이 유명인사 집을 터는 등 재범이 줄어들지 않아 기준을 강화했기 때문에 가출소 인원이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ㅈ씨 등 가출소자들은 “재범을 막기 위해 감호기간을 몇 개월씩 더 늘린다는 얘긴데, 특별한 재사회화 프로그램도 없이 무조건 더 가둬둔다고 사회 적응력이 길러져 재범이 줄어드느냐”고 반문한다.

감호소에서도 교도소와 마찬가지로 검정고시를 비롯해 양복기술, 배관, 자동차 정비, 공인중개사 등 각종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여러 가지 직업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장씨처럼 자격증을 들고 사회에 나와도 이미 몇해 전에 딴 자격증은 ‘무늬만 자격증’이지 실제로 사회에서 관련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동차 정비기술은 자동차 회사에서 기증받은 신형차들은 ‘전시’만 하고, 실제로 훈련장에서는 이미 단종된 지 오래된 차를 갖다놓고 기술을 가르치는 흉내만 낸다. 결국 현재의 보호감호는 직업훈련 등 특별한 재사회화 프로그램 없이 7년이란 시간을 교도소와 똑같이 가둬두면서 ‘사회적응을 위한 재사회화 교육’을 한다고 ‘우기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지금 청송에 갇혀 있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단식을 하면서 외치는 것은 청진기 한번 대지 않고 진료하는 열악한 의료문제나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처분을 해야 하는 생선을 준다거나 겨울에는 방안 온도가 평균 영하 10℃를 넘나든다는 등 ‘한가한’ 처우문제가 아니다. ‘5년이나 6년의 세월 동안 곱징역을 살리면서 재사회화를 위해 국가는 뭘 하고 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단식이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국가인권위원회가 감호소 직접 조사에 나섰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천주교인권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 등 인권단체들이 잇달아 감호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감호제도를 개선·폐지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국가인권위원회 직접 조사 나서

“모든 사람은 교도소 담벼락 위에 서 있다 자칫 잘못하면 안으로 떨어지고 운이 좋으면 바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청송보호감호소에서 출소했다는 사람이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법정 스님의 말을 인용해 올린 글이다. 이제는 운좋게 담장 밖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갇힌 자들의 외침에 메아리를 보낼 차례가 아닐까.

박주희 기자/ 한겨레 민권사회2부 hope@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