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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죄수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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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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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승화 기자)
게임이론에 빗대어 후보단일화를 풀이한 글을 어느 신문 과학란에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가는 듯하다가 멈칫하고 멈칫했다가 한 발짝 내딛는 단일화 논의를 어깨너머로 살피는 데 조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죄수의 딜레마’입니다.

공범 둘이 붙잡혀 따로 조사를 받는다. 만약 두 범인이 범죄를 부인하면 둘 다 무죄지만 둘 중 하나라도 자백하면 입을 다문 범인은 징역 20년, 자백한 범인은 징역 8년형을 받을 상황이다. 범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두 죄수는 함께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면 둘 다 부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범인들은 상대방이 자백해 자신만 징역 20년을 살 것을 우려해 결국 모두 자백하게 됩니다. 곧 둘 다 무죄라는 최선의 선택을 포기하고 차선책(둘 다 징역 8년형)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인 존 내시의, ‘내시의 균형’입니다.

물론 대통령 선거를 자기 살 궁리에 급급한 죄수들의 생존게임에 단순 비유할 수는 없겠지요. 민주당 노무현, 국민통합21 정몽준 두 후보는 운명의 끈에 매인 공범의 처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지더라도 끝까지 레이스를 벌이는 게 최선일 수 있고, 서로 뿌리와 노선이 달라 공통점이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지층이 적지 않게 겹치고 단일화의 압력이 상존하는데다 선거 결과가 예견되는 점을 감안하면, 게임이론의 틀에서 본질적으로 벗어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마키아벨리적 현실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두 후보에게 최적의 선택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타협을 하는 것입니다. 두 범인의 마음이 통해 무죄가 되듯이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의 손을 들어주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윈윈 상황은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상대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대선은 반복게임이라기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들 여기기 때문에 후일을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후보는 기본적으로 윈윈 타협보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 상실을 걱정합니다. 사퇴로 정치적 입지를 잃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누구도 양보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제3후보의 당선이 최악이라고 판단한다면 단일화는 성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선은 아니지만 죄수의 딜레마에서 차선을 택하는 경우입니다. 단일화를 회피하거나 결렬 책임을 덮어쓸 경우 20년이란 최악의 상황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후보는 최근 이런 쪽으로 상황인식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후보단일화 논의는 춤을 추면서 나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산너머 산이지만, 둘 다 ‘단일화의 자백’을 피해가기는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대선정국에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는 듯합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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