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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도굴과 '토지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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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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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과 초가을에 우리나라에는 프라피룬과 사오마이 등 태풍이 연거푸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이 태풍으로 곳곳에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예기치 않은 소득도 있었습니다. 경기도 용인에서는 태풍 피해를 막기 위해 저수지 물을 빼던 중 승용차와 함께 수장된 주검이 발견되면서 완전범죄를 꿈꾸던 범인이 3년5개월 만에 잡혔습니다. 경남 밀양에서는 태풍으로 내려앉은 봉분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무덤 석실 내부에서 고려후기의 벽화가 발견됐다는 문화재청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자칫 영원히 암장돼 있을 뻔한 ‘범인과 문화유산’이 태풍 덕분에 지상으로 나온 것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진실이 발표된 것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 법입니다. 살인범은 몰라도 문제의 고려 고분벽화는 아니었습니다. 이 고분에 이미 10년 전에 도굴꾼들이 먼저 다녀가면서 벽화의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3년 전에는 문중에서 문화재 신청을 했으나 그냥 넘어갔고, 고분은 계속 도굴꾼들의 손에 내맡겨졌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문화재 보호·관리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표지이야기 16쪽).

에두아르트 푹스는 <풍속의 역사>에서 역사서술 참고자료로서 회화가 가지는 의의는 문헌자료에 필적하거나 오히려 훨씬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사실 각 시대의 모든 회화는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무수한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킵니다. 선 하나, 색채 하나하나에 조상의 삶과 예지, 숨결이 녹아 있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벽화도 고려후기 풍속사와 복식사 연구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고 학계에서는 기대감을 표시합니다. 하지만 이미 도굴로 벽화는 적지 않게 훼손됐고 부장품도 이미 대부분 증발된 상태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사실 도굴은 우리나라만의 고질병은 아닙니다. 중국에는 ‘낙양(洛陽)삽’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낙양 일대의 도굴꾼들이 사용하던 삽인데, 노련한 도굴꾼들은 묘를 파헤칠 필요도 없이 이 삽을 꽂기만 하면 전해져 오는 소리나 손의 감각만으로 지하의 모든 비밀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에서는 고고학 붐이 일어나면서 1920년대 후반부터 낙양삽이 기술적인 발전을 거듭해 고고학 발굴의 전용도구가 됐다는 점입니다. 중국에 낙양삽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꼬질대’가 있습니다. 일종의 탐침봉입니다. 우리나라의 도굴꾼들 역시 이 꼬질대 하나만 있으면 만사형통입니다. 다만 중국과 달리 도굴기술과 고고학 발굴 기법이 결합했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습니다.

따지고보면 문화재 보호에서 도굴만이 문제이겠습니까. 세월의 봉인을 뜯고 햇빛 속으로 걸어나온 유물들이 땅 속에서보다 더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1960년대 초 중국의 주은래 총리는 섬서성을 시찰하러 갔다가 섬서성 정부로부터 당대(唐代) 건릉 등을 발굴하겠다는 계획을 보고받고 이렇게 거절했다고 합니다. “현재 중국은 출토된 유물을 훼손하지 않고 과학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지 못했다. 그러니 조상이 물려주신 유산은 몇년 동안 더 토지의 신께 보호를 부탁드리자.”

우리도 아직은 땅 속의 유물 보존을 ‘토지의 신’께 부탁드려야 할 형편 아닐까요? 하기야 토지의 신에게 부탁하자니 도굴꾼들이 무섭고, 밖으로 내오면 허술한 관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정말 진퇴양난입니다.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일대각성과 획기적인 정책전환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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