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예비역 육군병장 이순혁의 ‘졸려서 혼난’ 예비군 훈련 이야기
“요즘 예비군 훈련을 아무것도 아닌 걸로 취급하는 풍조가 있는데, 잘못하다간 큰코 다칩니다. 전과자 되는 수가 있어요.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당하면 곧바로 빨간 줄이에요, 빨간 줄. 빨간 줄 생기면 사회생활 제대로 할 줄 압니까 뭣이냐, 그 만화가, 그 만화가, 누구더라… 그래 박광수. 그 사람은 예비군 안 나오다가 방송도 잘렸잖아.”
‘예비군 정규복장’을 아십니까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병장’ 이순혁. 나는 지금 예비군 훈련을 열심히 받는 중이다. 오전 내내 졸다 지쳐서 교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려는데 교관이 너무나도 진지하게 박광수 얘기를 꺼냈다. 몇몇 예비군이 “푸우∼” 하고 웃는다. 눈물이 맺히도록 크게 하품을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절반 정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졸고 있다. 계속해서 콧구멍만 후벼대는 사람도 두어명. 휴대폰 액정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버튼을 계속 눌러대는 이들이 7∼8명은 족히 돼보인다. 교관이 계속 말을 이어간다.
“요즈음 남북화해다 뭐다 해서 안보정신이 해이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누가 뭐래도 우리의 주적은 북괴입니다. 얼마 전에 서해교전 있었잖아요. 그거 보세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겁니다. 우리 민족이 역사상 얼마나 많은 외침을 받았습니까….” 10월9일 한글날. 옷장을 뒤져 1년 만에 군복을 꺼내 입었다. 몸이 많이 불어나 허벅지와 허리 부분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내년에는 남대문 시장에 사제군복 사러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을 뒤로 한 채 집을 나섰다. 향방작계훈련 집합지는 8차선 대로변에서 100여m 안쪽에 위치한 채석장 터였다. 오후 1시 조금 안 돼 도착한 ‘집결지’ 한쪽엔 예비군들이 몰고 온 차량 50∼60대가 주차돼 있었다. 예비군들은 차 안에 누워 있거나 여기저기 흩어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양지 바른 곳에 쭈그리고 앉아 30∼40분을 하릴없이 보냈다. 동대장이 예비군들을 집합시켰다. 담배를 손에 들고, 전투화는 땅바닥에 질질 끌며, 전투모는 삐딱하게 쓴 ‘정규복장’ 차림의 예비군들이 어슬렁어슬렁 모여들었다. 예비군 1년차 시절 ‘현역’ 같은 모범생 복장을 하고 소집점검 훈련에 나갔다 망신당한 기억이 떠올랐다. 같이 소집에 응한 학교 친구들이 ‘1년차는 어쩔 수 없어’라고 놀려댔다. 그 뒤로는 나도 ‘예비군 정규복장’을 준수하게 됐다. 이젠 그런 옷차림이 나에게 더 자연스럽다. 출석을 확인하고 M16 소총을 한 자루씩 지급받은 뒤 기간병 두어명을 앞세워 동네 안쪽으로 나 있는 골목길을 줄지어 걸었다. 10여분쯤 뒤 참호 몇개가 패어 있는 야트막한 야산에 도착했다. 모두들 적당히 산개해서 앉거나 누웠다. 인솔한 기간병이 “중대장님이 곧 올라오십니다. 눕지는 말아주십시오”라고 소리치고 다녔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나 또한 나무 그늘 밑으로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깐 눈을 붙였다. “오늘 좀 일찍 보내드리긴 하겠는데…”
기간병들의 “그만들 일어나십시오. 복귀하겠습니다”라는 외침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4시25분. 거짓말처럼 두 시간을 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니 다들 부스스한 것이 사정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왠지 기분이 고소했다. 기간병들을 앞세우고 다시 원래의 집결지로 돌아왔다.
동대장이 당부의 말을 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좀 일찍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불미스러운 일이 가끔 있다고 합니다. 예비군 훈련받고 집에 가는 길에 누구와 다퉈 경찰서에 가거나 교통사고가 나면 ‘왜 예비군 훈련을 일찍 끝내줬느냐, 훈련시간 다 채웠으면 이런 일 아예 없었을 것 아니냐’며 엉뚱하게 항의하는 경우가 있답니다.” 느슨하고 거슴츠레한 표정을 하고 있던 예비군들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소리쳤다. “어유, 걱정 말아요. 그럴 일 없습니다.”
채석장 터에서 대로변까지의 1차선 시멘트 길이 예비군들과 예비군들이 몰고 온 승용차로 가득 찼다. 잠에서 덜 깬데다 좁은 길에 먼지가 자욱해지자 버스 정류장까지 걷기가 싫어졌다. “혹시 ○○마을 20단지쪽으로 가십니까” 지나가는 차들을 세워 행선지를 물었다. 2인용 흰색 코란도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으며 뒷좌석쪽 짐칸을 바라보니 벽에서 떼어낸 듯한 선풍기들과 공구상자가 눈에 띄었다. “이쪽 일 하시나 보죠” “예, 그런데 오늘은 훈련 때문에 오전 밖에 못했어요. 그냥 집으로 들어가려고요. 내일 마저 해야죠.” 자영업자나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예비군 훈련은 고스란히 하루치 벌이와 일당을 날리는 일이다. 맘 편하게 회사에 ‘공무휴가’를 적어낸 나는 순간 머쓱했다.
10월14일 새벽. “그만 일어나, 오늘 훈련 아니야”라고 옆구리를 사정없이 찌르는 손길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40분. 벌떡 일어났다. 대체 왜 지난밤 술자리의 끝을 내가 지켰던고.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얼굴에 물만 찍어바르고 후닥닥 선배집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바람이 찼다. 신촌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도착해 군복 갈아입고 또다시 헐레벌떡 부대로 향하니…. 기상 2시간 뒤 나는 훈련장 앞에 서 있었다.
오전 내내 자다가 총 한방 쏘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봄에 동원훈련 통지서 나왔을 때 그냥 가는 건데….’ 사나흘 사이에 ‘후반기 향방작계훈련’(10월9일 6시간), ‘동미병주특기훈련’(10월14∼18일 38시간) 통지서를 연달아 받아들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5월에 동원훈련을 받았으면 우리 어머니 말처럼 ‘차라리 신간 편하게’ 부대 안에서 3박4일 보냈을 것을. 괜히 연기해서 번거롭게 출퇴근하고 기간까지 이틀씩이나 늘었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야전상의(군인들이 입는 반코트 모양의 겨울옷)를 안 입고 왔더니 꽤 추웠다. 발을 동동 구르며 20∼30분쯤 대기하다 집합해서 출석 확인을 하고 M16을 한 자루씩 지급받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같이 모두 찌푸린 얼굴이다. 전투모를 안 쓰거나 전투화 끈을 안 묶은 ‘정규복장’ 차림은 물론이고, 아예 운동화나 캐주얼화를 신은 사람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강당에서 입소식에 이어 안보교육(비디오 시청)을 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마자 절반 넘는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나도 앞사람 의자 뒷부분에 얼굴을 엎드린 채 한숨 잤다. “선배님들 그만 일어나십시오, 사격하러 가야 됩니다”라는 조교들의 외침에 잠이 깼다. 구부정한 자세로 자서 그런지 몸이 뻑적지근했다. 천근만근 같은 몸을 어찌 못하고 계속 엎드려 있었다. 한 조교가 오더니 내 몸을 흔들었다.
사격시간. 300∼400여명 정도의 예비군들이 사격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 대기했다. 12명씩 조를 이뤄 교대로 총을 쏘고 나온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린 끝에 실탄 여섯발을 쐈다. 사격용지에 그려진 목표물은 고사하고 종이(A4지) 전체에 한발도 맞추지 못했다. 현역 시절에도 사격에는 젬병이었지만, 이건 좀 심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들 조느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5분 사격을 위한 두 시간 대기라는 ‘고난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점심시간. ‘예비군은 절대 뛰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무시하고 수백명의 인원이 “우∼” 하는 소리를 내며 급식업체 트럭 앞으로 뛰어갔다. 돈가스 반 조각, 김치, 짠지, 오이장아찌 등을 반찬으로 한 3천원짜리 도시락. 독점공급인 탓에 내용물이 부실한 걸까 맛있는 도시락도 부대 안에서 먹으면 ‘짬밥’이 되는 걸까 하지만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전 내내 한 것이라곤 자다가 일어나 5분 사격하고 다시 꾸벅꾸벅 존 것이 전부였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배가 고팠다. 후닥닥 도시락을 비운 뒤 강당 긴 의자에 누워 잠을 청했다.
1시10분께 오후 훈련을 위해 다시 연병장으로 집합했다. 중위 계급장을 단 현역 군인이 연단으로 올라왔다. “예비군 여러분 훈련받느라 수고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점심 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외부에 나가 점심 먹고 오지 마세요. 한번만 더 적발될 경우에는 퇴소 조치하겠습니다.” 앗! 도시락말고 ‘선택의 여지’가 또 있었다니. 대체 ‘발상의 전환’을 몸소 실천한 예비군들이 누구인지. 존경의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1만원을 꺼내게 한 측은지심
오후엔 서너팀으로 나뉘어 크레모아·지뢰·무전기 등 전쟁 장비를 주제로 네 시간 교육을 받았다. 교관들은 대개 쉰살 전후였고(같은 예비군으로서), 우리들의 무료함과 지루함을 잘 이해하는 듯했다. 실제 교육은 조교들이 나와 ‘훈련된 목소리’로 3∼4분 정도 장비에 대한 기본 소개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런 뒤엔 졸거나 웅성웅성 떠드는 ‘휴식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졌다.
오후 4시. 연병장으로 다시 집합했다. 아침처럼 길게 줄을 지어 총기를 반납하고 출석 사인을 하는 예비군들의 손에 1천원짜리 두장이 쥐어졌다. ‘돈도 주네’라는 놀람도 잠시, 갑자기 짜증이 일었다. 점심값도 3천원이고 집에서 훈련장까지의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인 좌석버스값도 2400원인데 치사하게 2천원이라니…. 나도 모르게 “이게 뭐냐, 차라지 주지를 말던지”라는 투덜거림이 튀어나왔다. 웬걸, 옆에 있는 중대장이 한마디 거든다. “그나마 작년보다 500원 오른 겁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갔다. 하루는 오전 비디오 시청 시간에 한숨 잔 뒤 교장을 돌아다니며 화생방, 분대전투, 수색, 철조망 설치, 수류탄 등의 교육을 받았다. 실습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훈련용 수류탄 한번씩 던지기, 무릎 높이만한 철조망 넘어가기, (포복 흉내낸다며) 풀밭에 엎드려 있기, (약진 흉내낸다며) 꾸부정한 자세로 걸어가기, (참호 판다며) 10분 동안 맨땅에 삽질하다가 3분간 다시 덮기 등을 했다.
날이 갈수록 우리들은 더욱 느슨해지고 풀어져만 갔다. 몇몇 예비군들은 교관이 안 보이는 곳에 아예 누워 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조교들이 찾아와 “선배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앉아는 계셔야 됩니다”라며 억지로 일으키곤 했다.
이런 승강이를 보고 있자니 불현듯 5년여 전 현역 시절이 생각났다. 수방사 예하 동원사단에 근무한 나는 일년에 한번씩 동원예비군 훈련 조교로 차출됐다. 동원사단이라는 부대 성격상 모든 예하부대들이 일년에 한번은 완편훈련(전시를 대비해 동원예비군을 받아 부대규모를 키우는 훈련)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툭하면 ‘너, 언제 제대하느냐, 나 같으면 자살하겠다’라며 속을 긁고, 담 넘어 나가 동네 슈퍼에서 소주를 사오던 ‘골칫덩어리’들…. 그런데, 이젠 내가 그 골칫덩어리가 돼 개기고 있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 정말 수고했니
점심 먹고 연병장 한구석에 앉아 햇볕을 쬐다가 지나가는 이등병을 보니 측은지심이 발동됐다. 1만원짜리 한장을 꺼내줬다. 늘 허기지고 늘 돈이 없을 때 아닌가. 이등병 조교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선배님 정말로 주는 겁니까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대체, 너 언제 제대하느냐, 너무 불쌍하다’는 말이 입안에 맴돌았다.
훈련 마지막날. 금요일은 전반기 향방작계훈련 불참 보충훈련이어서 시간도 8시간에서 6시간으로, 참석인원도 3분의 1 수준으로 확 줄었다. 아침에 연병장에 모여 출석확인·총기지급의 똑같은 과정을 마치고 첫 교육인 장애물 설치(철조망) 교장으로 향했다. 이 교육은 이미 수요일에 진행한 것이지만 지난 4일 동안 모든 교육과정을 다 마친 관계로 어쩔 수없이 중복 편성된 과목이었다.
점심 먹고 한 시간 동안 역시 며칠 전에 이수한 사격과 기동훈련을 얼렁뚱땅 받았다. 현역 시절엔 말년 병장 시간이 가장 늦게 간다더니, 예비군에겐 훈련 마지막날 ‘마지막 한 시간’이 몹시 길었다. 그래도 예비군 시계는 멈추지 않는 법. 2시가 돼 총기를 반납하고 마지막으로 출석 확인란에 힘차게 서명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제까지 주던 2천원을 주지 않는 것이다. 치사해보일까봐 잠시 주저하다가 옆에 있는 현역 중위에게 이유를 물었다. “향방작계훈련 때는 차비를 지급하지 않습니다. 좀 불합리한 것 같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습니다.” 똑같은 훈련장에서 똑같은 훈련을 받았는데, 두 시간 먼저 나간다고 밥을 안 먹는 것도 아니고 차비가 안 드는 것도 아닌데….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이없기도 하고, 어찌됐든 끝났다는 해방감이 들었다.
보무도 당당하게 훈련장을 나왔다. 출구에는 “선배님들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쓴 팻말이 붙어 있었으나, 훈련장 밖으로 나오니 예비군 복장의 나를 “수고했다”고 보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닷새 훈련에 8천원 받은 대신, 점심값 1만5천원 쓰고, 1만원 조교에게 주고, 차비 1만2천원 들여 올 한해도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무사히 마쳤다.
이순혁 기자/ 한겨레 편집2부 hyuk@hani.co.kr

"처음엔 나도 이러지 않았다." 동원 3년차 예비군 이순혁 기자의 '예비군 정규복장'. (류우종 기자)
“요즈음 남북화해다 뭐다 해서 안보정신이 해이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누가 뭐래도 우리의 주적은 북괴입니다. 얼마 전에 서해교전 있었잖아요. 그거 보세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겁니다. 우리 민족이 역사상 얼마나 많은 외침을 받았습니까….” 10월9일 한글날. 옷장을 뒤져 1년 만에 군복을 꺼내 입었다. 몸이 많이 불어나 허벅지와 허리 부분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내년에는 남대문 시장에 사제군복 사러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을 뒤로 한 채 집을 나섰다. 향방작계훈련 집합지는 8차선 대로변에서 100여m 안쪽에 위치한 채석장 터였다. 오후 1시 조금 안 돼 도착한 ‘집결지’ 한쪽엔 예비군들이 몰고 온 차량 50∼60대가 주차돼 있었다. 예비군들은 차 안에 누워 있거나 여기저기 흩어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양지 바른 곳에 쭈그리고 앉아 30∼40분을 하릴없이 보냈다. 동대장이 예비군들을 집합시켰다. 담배를 손에 들고, 전투화는 땅바닥에 질질 끌며, 전투모는 삐딱하게 쓴 ‘정규복장’ 차림의 예비군들이 어슬렁어슬렁 모여들었다. 예비군 1년차 시절 ‘현역’ 같은 모범생 복장을 하고 소집점검 훈련에 나갔다 망신당한 기억이 떠올랐다. 같이 소집에 응한 학교 친구들이 ‘1년차는 어쩔 수 없어’라고 놀려댔다. 그 뒤로는 나도 ‘예비군 정규복장’을 준수하게 됐다. 이젠 그런 옷차림이 나에게 더 자연스럽다. 출석을 확인하고 M16 소총을 한 자루씩 지급받은 뒤 기간병 두어명을 앞세워 동네 안쪽으로 나 있는 골목길을 줄지어 걸었다. 10여분쯤 뒤 참호 몇개가 패어 있는 야트막한 야산에 도착했다. 모두들 적당히 산개해서 앉거나 누웠다. 인솔한 기간병이 “중대장님이 곧 올라오십니다. 눕지는 말아주십시오”라고 소리치고 다녔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나 또한 나무 그늘 밑으로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깐 눈을 붙였다. “오늘 좀 일찍 보내드리긴 하겠는데…”

동원예비군 입소 첫날, 훈련장에 옹기종기 모인 예비군들. 날이 갈수록 느슨해지고 풀어져만 갔다.

터질 것만 같은 군복. 이러다간 내년에 사제군복을 사야 할지도 모른다.

단 한 시간이라도 빨리 퇴근시켜준다면 예비군들에겐 커다란 행복이다. (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