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소리꾼, 팔순에 꿈을 이루다

433
등록 : 2002-11-06 00:00 수정 :

크게 작게

전남 보성에 사는 이동래(80)씨는 최근 평생 소원을 이뤘다. 지난달 26일 열린 ‘제5회 보성소리축제 전국판소리경연대회’에서 소리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날 그는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불러 ‘손주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신인상 대상을 차지했다.

“그저 소리가 좋아서 흉내만 냈제.”

이씨는 열서너살 적 보성 조성에 온 당대 명창 임방울의 쑥대머리를 처음 접했다. 그 뒤 틈만 나면 축음기를 틀어놓고 아리랑과 육자배기를 흥얼거렸다. 주변에선 그를 ‘이방울’이라고 치켜세웠지만, 가난 때문에 소리 배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일제시대 징용으로 끌려간 뒤 귀국해 농사를 짓다가, 평생을 주조장 기술자로 일했다. 7남매를 가르치기에도 버거운 시절이라 소리를 잊고 살았다. 소리에 대한 열정이 살아난 것은 칠순에 가까워서다. 1992년 이씨는 보성군 국악협회 회원들과 정식 입문했다. 이 모임에는 “소리 오바탕을 욀 정도로 보성에서 한 가락 한다”는 아마추어 소리꾼 30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장흥 장평에 사는 ‘초야의 명창’ 김영자(63)씨를 스승으로 모시고 박자와 음정부터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취미로 하던 것과 달리 소리 공부는 힘이 들었다. 하나둘 포기했지만, 그는 3년 동안 혼자 버텼다. 목청을 뚫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 악을 썼고, 목이 잠겨 혼자 울기도 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가락을 타 동네에선 ‘소리꾼 할아버지’로 불렸다.

“수년이 지나 선생이 ‘쑥대머리는 이만하면 됐다’고 하더라고.” 이씨는 스승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지난해 보성소리축제 일반부에 나섰지만, 고배를 마셨다. 올해 신설된 신인부문에 재도전하려고 하자 부인(73)이 “제발 그만하라”며 말렸다. 5년 전 중풍을 맞아 건강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이씨는 “기어이 무대에 올라 ‘한’을 풀었다”고 웃었다.

정대하 기자/ 한겨레 민권사회2부 daeha@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