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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래도 말뚝은 부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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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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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로 향하다 경찰차에 상반신 꺾인 노동운동의 말뚝 박순희씨와 원풍모방 투쟁의 기억

사진/ (하종강)
노동자들이 명동성당에 천막을 짊어지고 들어가 농성을 벌이기 시작하면 누구보다 먼저 와서 챙겨주는 사람이 박순희(55)씨다. 지금 노동부 장관인 방용석씨가 원풍모방에서 노동조합 지부장을 할 때 박순희씨는 부지부장을 지냈다. <민주노조 10년-원풍모방노동조합 활동과 투쟁>에 남아 있는 원풍모방노동조합 마지막 날인 1982년 10월1일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수녀원 문 앞에서 끝내 돌아서다

“아아, 닷새를 굶은 여성노동자들에게 그 이상 어떤 힘이 남았겠는가! 그들은 이미 탈진할 대로 탈진한 상태였다. 조합원들은 마지막 힘을 모아 저들의 폭력에 맞섰다. 머리를 얻어맞아 피가 흘러도 한번 잡은 폭력배의 바짓가랑이를 놓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실신하여 쓰러진 조합원들이 타작을 끝낸 볏단처럼 질질 끌려갔다. 작전이 끝남과 동시에 농성도 끝났다. 그리고 그것은 10년간 버텨온 원풍모방노동조합의 끝이기도 했다.”


67년 대한모방에서 노동자의 삶을 시작한 박순희씨는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활동 등을 통해 노동의 참뜻을 깨닫고 노동조합 설립, 노동상담, 노동교육 활동을 하다가 1980년에는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1년간 수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또 82년에는 해고된 직장의 노조활동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제3자 개입 금지’ 위반으로 1년간 옥살이를 했다. 수감생활을 마친 뒤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료들과 함께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를 조직했고, 전북 전주와 대전 지역 등에서 노동사목 활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지도위원, 민주노총 지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찍이 수녀가 되기로 결심해 일가친척·동료들과 이별잔치까지 마치고 짐을 싼 박순희씨가 수녀원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린 것은 그 무렵 막 분신한 전태일 열사 사건 때문이었다.

“집안이고 본당이고 나는 수녀원 가는 것으로 다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짐을 싸놓고 신부님께 인사를 하러 갔지. 신부님이 성서를 읽고 묵상을 하자고 하더라고. 한 30분쯤 묵상을 하는데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이 떠오르면서 ‘내가 도망가기 위해 수녀원을 택했다’는 자책감이 들기 시작하는 거야. 하느님께서 나를 수도자보다 노동자로 부르신다는 깨달음이 오더라고. 어느 선택이 옳은 것인지는 너무나 분명했지.”

박순희씨는 그렇게 자기 스스로 표현대로 “노동자의 삶과 노동운동에 말뚝을 박았다.” 말뚝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태풍과 홍수에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지난 4월19일 오전, 정부의 차세대 전투기 F-15K 내정 때문에 문규현 신부, 홍근수 목사, 서경원씨 등과 함께 ‘F-X 공동행동’ 대표단 자격으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가는 도중 박순희씨는 청와대 입구에서 경찰차에 들이받혀 상반신이 뒤로 꺾이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고 가슴의 통증으로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돼 119 구조대가 병원으로 후송했다.

감옥에서 이룬 일가구 일주택의 꿈?

사진/ 박순희씨는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안돼 후배이자 동지인 신순애(왼쪽·415호 휴먼 포엠 참조)씨 집에 기거하고 있다. (하종강)
며칠 전 만났을 때도 박순희씨는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안 돼 후배이자 동지인 신순애씨 집에 기거했는데 찜질기를 계속 가슴에 대고 있어야만 했다. 박순희씨가 신세를 지는 신순애씨는 우리가 몇달 전에 ‘휴먼 포엠’(<한겨레21> 415호)에서 만난 그 사람이다. 혈육이라 해도 군식구를 집에 데리고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두분이 각별한 사이냐”는 물음에 신순애씨는 이렇게 답했다.

“74년 무렵 처음 만났으니까 꽤 오래되기는 했죠. 그런데 언니랑은 사실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어요.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러네. 우리는 싸움할 때만 만났어요. 악쓸 때, 얻어터질 때말고는 만난 적이 없었어요. ‘저 사람이 원풍의 박순희다. 정말 잘 싸우는 사람이다’ 그렇게 싸울 때말고는 만난 적이 없었어요.”

박순희씨는 지금까지 방 한칸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를 포함해서 알량한 자기 집 한칸이라도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박순희씨 앞에서 최소한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한다. “평생 내 방 한칸이라도 갖지 않겠다”는 결심이 어디 쉬운가.

“피신해 다닐 때는 조합원들 집을 전전했고, 아니면 공동생활을 했지. 감옥에서 독방생활할 때 ‘이게 일인주택이구나’ 그랬어. 70년대 한창 산업화될 때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거든. ‘80년대에는 일가구 일주택에 마이카 시대를 열어준다’고…. 감옥에서 독방에 갇혀 살려니까 그 생각이 나더라고. 마이카는 몰라도 ‘일가구 일주택’을 이렇게 살아보는구나….”

보통사람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그 삶을 박순희씨는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다 사람이 사는 길인데, 힘들고 쉽고가 어디 있나. 그저 내가 즐겁고 좋은 일을 해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다. 자신을 가리켜 “자랑스럽고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그냥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아무 특별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

83년 3월26일 재판을 받으며 박순희씨가 법정에서 한 최후진술의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노동자들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이 땅에 노동운동은 계속될 것이며, 오늘 우리가 당하는 이 억울한 아픔은 밑거름이 되리라 믿습니다. 노동부는 권력의 꼭두각시가 될 수 있을는지 몰라도 우리는 그 누구의 꼭두각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이렇게 바보, 등신, 천치만 모여 있는 것으로 몰아붙인단 말입니까 원풍의 원한 맺힌 바람은 분명히 노동계의 부활의 바람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구치소에서 유독 우리에게만 적용하는 차별적 대우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 관에서 지급되는 모든 것들을 거부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어떤 이들은 원풍모방 지부장 출신인 방용석씨가 노동부 장관이 된 것을 그 ‘부활’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70년대 민주노조의 상징인 원풍모방의 전통은 우리 역사에 ‘87년 노동자대투쟁’과 ‘민주노총’의 설립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둘 가운데 어느 전통이 과연 원풍모방노조의 진정한 부활일까 지난 10월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동법 공방을 벌이던 방용석 노동부 장관이 “2년간 합의된 내용을 쓰레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쓰레기다”라고 말해 물의를 빚자, 치료를 받느라고 잠시 꺼둔 박순희씨 휴대폰에는 방용석 장관의 발언을 개탄하는 노동자들의 메시지가 17통이나 녹음됐다. 방 장관의 최근 언행에 대한 박순희씨 해석은 간단하다.

“그 사람이 국회의원이 됐을 때는 노동자 출신이었는지 모르지만, 노동부 장관이 될 때는 가스안전공사 사장이었잖아. 그러니까 노동자 출신이 장관이 된 것이 아니라, 사장 출신이 장관이 된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돼.”

‘상처받은’ 신부님들께…

최근 성모병원 노동자들의 장기파업과 가톨릭계의 ‘전혀 무반응 대응’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종교가 사회복지 차원에서 병원을 운영하려면 자선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이 시대에 마땅한 거야. 전쟁 직후 폐허에서는 교회가 학교나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시대에 부응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돈 벌려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학교나 병원 사업이야. 더 이상 종교주식회사가 되어서는 안되지. 보건의료산업노조 차수련 위원장이 성모병원 노조의 교섭에 참여하는 것을 ‘배후조종’이라고 하는 것이 그 사람들의 이해 수준이라니까. 이 사람들이 ‘산별노조’가 무엇인지조차 전혀 몰라요. 노동자들이 큰 소리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다고 신부님들이 “우리도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노동의 가치’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야. 성직자들조차 노동자들은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 천시 풍조에 물들어 있는 거지.”

박순희씨는 감옥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법정에서 낭랑하게 울려퍼진 최후진술에 그려진 우리 노동자 삶의 모습이 바뀌지 않는 한, 박순희씨는 영원히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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