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국인의 펜이 되리라!
등록 : 2000-10-03 00:00 수정 :
“일본사회에 재일동포들이 많은데도 정작 일본사람들은 자기들 가까이에 재일동포 한국인들이 있다는 걸 잘 몰라요. 재일동포가 우리 재일동포 한국인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되면 재일동포들의 존재를 알릴 수 있을 겁니다.”
국제전화로 연결된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 박태수(29·연세대 근처 하숙집 아주머니와 함께)씨는 아직 서툰 한국말로 어렵사리 말했다. 전화선을 타고오는 그의 말에는 <아사히신문> 기자가 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는 듯 인터뷰를 부끄러워하는 투가 역력했다. 그는 재일동포 3세다.
아직은 <아사히신문>에서 그의 기사를 볼 수는 없다. 지난 5월 아사히신문사 기자직 입사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정식 입사는 10월부터다. 일할 곳은 그가 살고 있는 일본 가가와겐 다카마쓰시 아사히신문 지사다.
박씨는 일본 국립 도쿄외국어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다. “대학입학 전에는 한국말을 배운 적이 없어요. 한국인에 대한 일본사회의 차별이 아직 심하잖아요. 그런 분위기도 있고 해서 부모님들도 한국말을 잘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한국어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우리말을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워낙 강해서였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기리야마 야스히데로 살았다. 일본사회에서 박태수라는 한국 이름으로 살겠다는 결단은 순전히 그의 생각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을 박태수로 바꿨습니다. 부모님은 ‘왜 일부러 어려운 길을 선택하느냐’며 쉽사리 동의하지 않았죠.” 일본 이름을 버린 뒤, 부모가 걱정한 ‘어려운 길’은 금방 현실로 나타났다. 그전까지는 그가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했는데 하숙집을 구할 때도 한국 이름 때문에 쉽게 방을 내주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에 합격한 뒤 그는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서울에 와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우리말을 다시 공부했다. 신문사에 정식 입사하기 전에 자비를 들여 공부하러 온 것이다. “대학 졸업 직후 4년 정도 미쓰이물산에서 일했는데 중국과의 수출업무를 맡다보니 한국말을 쓸 기회가 없었습니다. 자연히 배웠던 한국말을 많이 잊어버렸죠.” 물론 대학 시절부터 꿈꿔왔던 신문기자가 되기 위해 그는 지난해 미쓰이물산을 그만두고 시험을 준비해왔다.
“<쉬리> 같은 한국영화 비디오도 일본에 많이 있습니다. 이런 비디오도 보고 이곳 방송의 한국어 강좌도 들으면서 우리말을 계속 공부할 생각입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