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의 소유·운영권 둘러싸고 노동계 내부 파문… “취지와 거리 먼 지역민 편익시설” 비난도
돈이 없으면 노동운동도 하기 힘든 시절이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말 국고보조금을 받느냐 마느냐를 놓고 벌인 격론은 노동조합의 재정적 취약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민주노총은 논란 끝에 “재정 형편을 감안해 원칙을 세운 뒤 받자”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했고, 올해 정부 지원금 9억7천만원을 무이자로 빌려 임대료를 내는 데 썼다.
노총의 행복한 셋방살이?
현재 셋방살이를 하기는 한국노총(이하 노총)도 마찬가지다. 노총은 최근 서울 여의도 노총회관에서 용산구 소재 스타크 빌딩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그러나 사정은 민주노총과 전혀 딴판이다. 노총의 셋방살이는 잠깐이면 끝난다. 지난 27년간 노총회관 주인으로 살아온 노총이 갑자기 셋방살이 처지에 놓인 건 노총회관이 헐리고 대신 이 자리에 중앙근로자복지센터(이하 복지센터)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노총은 3년 뒤, 새로 지은 복지센터에 다시 입주할 예정이다. 복지센터는 연건평 8400평에 지상 15층, 지하 6층 규모로, 2005년에 완공된다.
그런데 이 센터의 소유권과 운영권을 둘러싸고 노동계 내부에 파문이 일고 있다. 논란의 한복판에 놓인 의혹은 정부가 막대한 돈을 투입해 추진하는 복지센터 건립의 ‘사업주체’로 갑자기 노총이 등장한 과정이다. 논란은 다시 △특정 노동단체에 대한 정부의 우회적 특혜지원과 △이 과정에서 복지센터 사업의 취지가 훼손됐다는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둘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사태가 불거진 내막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지난 99년 김대중 대통령의 8·15 경축사 후속조처로 추진된 복지센터는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근로복지를 위한 노동부 사업이다. 그런데 복지센터는, 전체 노동자를 위한 사업임에도 사업 초기부터 노총이 주도했다. 다른 노동단체들과의 협의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복지센터 건립에 드는 총사업비 516억원 가운데 노총은 부지대금과 건축비 일부(17억원)를 합쳐 총 182억원(35%)을 부담하고, 나머지 334억원(65%)은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 보조금은 2000년에 설계비 10억원이 지원된 데 이어 올해 57억원이 더 투입됐고, 내년 예산으로 다시 60억원이 배정됐다.
그런데 복지센터에 들어설 시설내역을 보면, 복지센터가 과연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인지 금방 의문이 제기된다. 복지센터는 한눈에 봐도 노동자 복지시설이라기보다는 번듯한 쇼핑시설에 더 가깝다. 전용면적 가운데 예식장·복지매장·스포츠센터·목욕탕 등 생활편익시설이 절반 이상(52.7%)을 차지하고, 비수익 복지시설(노동상담시설 등)은 겨우 12%뿐이다. 나머지는 노총 사무실과 식당 등 임대시설로 쓰인다. 근로복지센터 건립 명분으로 정부 지원금을 받았지만 일반 상가건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노동계 일부에서 “노동상담시설 등은 모양 갖추기로 끼워넣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지역 특성상 여의도의 고소득 사무전문직 노동자 또는 여의도 지역주민들이 주로 이용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노총쪽은 “비싼 땅에 건물을 올려놓았으면 수익을 내야 할 것 아니냐. 다만 수익분을 목적에 따라 쓰면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물론 노총은 장사해서 이익을 챙기는 영리단체가 아니다. 취약한 재정에 시달리는 노동조합이 정부 지원금을 재정자립 기반으로 삼을 수도 있고, ‘더 나은 노동운동’을 위해 ‘더 많은 돈’을 확보하려는 노력 자체를 반노동자적이라고 몰아세울 필요도 없다. 하지만 복지센터의 본래 취지가 훼손됐다는 지적은 피할 길이 없다.
구조조정 항의단식과 청와대 면담 그 뒤…
이는 “노총이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를 위한 복지센터 건립을 구실 삼아 우회적으로 막대한 보조금을 받아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노동단체에 대한 공식 지원금은 ‘노사협력지원사업’ 항목(노총의 경우 올해 19억7800만원)에 짜여지는 반면, 복지센터사업은 ‘근로복지사업’ 예산으로 잡혀 있다. 복지센터와 노동단체에 대한 지원은 전혀 별개인 것이다. 이에 대해 권원표 노총 부위원장은 “정부가 해야 할 복지센터 건립을 노총이 땅을 대서 대신 해주는 것이다. 복지센터 건립과 노총 지원이라는 두 가지 성격이 뒤섞여 있지만 무슨 잣대를 들이대 구분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복지센터가 수익시설로 흐르고 있는 대목은 노총이 복지센터의 사업주체로 등장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사업주체가 노총이 되면서 복지센터 사업이 특정 노동단체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 양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노총과 복지센터의 관계는 2000년 초 박인상 전 노총위원장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박 위원장은, 노동부가 복지센터를 도심 한복판에 짓는 데 난감해하면서 사업추진을 유보하자, 국회 로비 등을 통해 설계비 10억원을 정부 예산에 반영시킨 것으로 알려진다. 노총회관 자리에 복지센터를 짓는 첫 단추를 끼운 셈이다. 설계비 10억원은 애초 노동부 예산안에 들어 있지 않았으나 국회에서 막판에 추가됐다. 국회의 새 예산 배정은 주로 사회적 여론을 배경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당시 노총 소유의 복지센터를 하루빨리 지어야 한다는 노동계의 광범위한 요구가 국회에 전달된 것도 아니었다. 특히 그때까지만 해도 복지센터의 사업주체가 노총이 된다는 사실은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그런데 2001년 말 정기국회에서 노동부는 갑자기 복지센터 사업주체를 노총으로 명시했다. 그리고 올해 예산으로 57억원이 배정된다. 어떻게 된 것일까 이 과정은 이남순 노총위원장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5월 공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항의 단식 때 가진 청와대 단독 면담에서 “근로자복지기본법도 통과됐고,이미 설계비도 들어갔는데 왜 본예산을 배정해주지 않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노·정 갈등이 노·정 합의로 풀리는 순간이었는데, 이때 복지센터 사업주체가 노총으로 확정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
노총이 복지센터 사업을 재정확충의 기회로 삼았다는 사실은 노동부조차 “복지센터 사업주체는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말한 데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치적 결정 탓일까. 노동부는 수백억원을 대주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노동부쪽은 “처음부터 노총에 지원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기획예산처의 예산심의 과정에서 삭감되기도 했는데, 그쪽에서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예산에 반영시킨 것으로 안다. 이미 사업이 진행중이라 집행했을 뿐 이면의 사정은 잘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기존 노총회관은 지난 75년 건축 당시 건축비는 노총이 대고 부지는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가 대준 땅이 이번 복지센터 사업에서 노총이 부담하는 재원으로 활용됐고, 이를 바탕으로 복지센터가 다시 노총 소유로 바뀐 셈이다.
노동운동조직이, 싸워서라도 노동자들이 낸 세금을 정부로부터 더 많이 확보해 노동자들의 권익 증진에 쓸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재정적 취약이 ‘현실’이라 하더라도, 중소영세 사업장의 수많은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센터가 현실을 타개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바로 이 점에서 복지센터를 둘러싼 논란은 노동단체의 국고보조금 수혜에서 비롯된, 기존의 노동운동의 자주성 논쟁과 성격을 달리한다. 이미 사업이 진행중인 점을 감안해, 운영의 묘를 살리는 방안을 찾아볼 수도 있다. 정부가 국고보조금에 해당하는 지분만큼을 복지센터 수익금에서 확보한 뒤 다른 노동단체나 노동자 복지사업에 쓰는 안이다. 그러나 노동부 신경우 근로복지과장은 “보조 사업자로서 참여한 노총이 소유권과 운영권을 갖게 되는데, 정부가 소유지분을 요구하거나 공동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노총은 복지센터 건립 명분으로 정부 지원금을 받았지만 일반 상가건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공사현장 부지.
그런데 이 센터의 소유권과 운영권을 둘러싸고 노동계 내부에 파문이 일고 있다. 논란의 한복판에 놓인 의혹은 정부가 막대한 돈을 투입해 추진하는 복지센터 건립의 ‘사업주체’로 갑자기 노총이 등장한 과정이다. 논란은 다시 △특정 노동단체에 대한 정부의 우회적 특혜지원과 △이 과정에서 복지센터 사업의 취지가 훼손됐다는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둘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사태가 불거진 내막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사진/ 노총의 복지센터 조감도.

사진/ 복지센터 사업주체가 노총으로 확정된 데는 '정치적 배경'이 적잖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김대중 대통령과 이남순(가운데) 노총위원장의 면담. (청와대 사진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