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과 직접 가톨릭계 병원 파업문제를 협상하기 위해 원정단에 참가한 보건노조 노동자들
“모두들 너무 많이 걸은 탓인지 피곤한 기색으로 잠을 청하고 있다. 투쟁이 아닌 여행이었다면 얼마나 즐거웠을까 새로운 문명, 나라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바티칸과 직접 가톨릭계 병원 파업문제를 협상하기 위해 원정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서울강남병원 한윤경 노조원의 일기 한 대목이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거운 부담감을 지닌 채 여정에 오른 보건노조의 파업노동자들.
“유럽에 이런 역사는 없었다”
지난 10월21일 밤 파리에 도착한 원정단은 다음날 파리의 보건의료노조와 프랑스노총의 지도자에게 한국에서 일어난 보건노조의 파업을 설명하고 프랑스노조의 연대와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 자리에 참석한 프랑스 노조지도자들은 이미 브리핑 자료를 넘겨받았지만 모든 설명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의 말로는 한번도 가톨릭교회와 노동자의 대결이 펼쳐진 역사가 없었다고 한다. 노조지도자들은 지난 9월11일에 있었던 가톨릭중앙의료원에 대한 경찰력 투입을 담은 비디오를 보자 거의 할말을 잃어버린 듯했다.
한국에서 일어난 보건노조 사태에 관심을 갖던 프랑스 보건노조의 사무총장 세바스찬 바쉬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는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국 가톨릭쪽의 일방적인 대화 거절과 성당 내 경찰투입”이라고 말하면서 “프랑스에서는 역사적으로 한번도 이런 사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날 그칠 줄 모르는 파리의 빗줄기는 원정대원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10월23일 오후에 원정대는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이탈리아노총(CGIL)과의 간담회를 시작했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이탈리아 노조지도자들의 반응도 프랑스에서와 같았다. 한국의 보건노조 사태를 이해하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그들도 이런 사례를 이탈리아에서는 한번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을 통해 노동문제를 해결한 예가 거의 없었기에 9월11일의 공권력 투입에 강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이탈리아 노조지도자들은 한국의 가톨릭교회가 노동자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동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10월24일 바티칸쪽과의 모임 약속은 원정대에 많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원정대와 바티칸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 실무자와의 모임은 그동안 한국가톨릭쪽의 대화 거부로 제대로 협상조차 해보지 못한 보건노동자들에게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날 바티칸 정평위는 한국 보건노조의 상황을 주의깊게 들었다. 그들이 앞으로 이어질 논의과정에서 어떤 조처를 취할지 주목된다.
보건의료노조는 5월23일부터 파업이 시작됐지만 그동안 단 한번도 교섭이 정상적으로 진행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가톨릭병원들의 실질적 책임자인 신부나 수녀들이 한번도 대화의지를 보인 적도 없었고 대화를 가져본 적 없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9월11일 일어난 경찰력 투입은 지금까지 7명의 구속자를 낳았고 그 뒤 2명이 더 구속되는 바람에 9명의 노조원들이 구속된 상태다. 그 뒤 28명의 조합원들이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했고, 차수련 보건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몇명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갔다. 600명의 노조원들은 명동성당에서 밤낮으로 가톨릭쪽에 해결을 촉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명동성당에 경찰력이 투입될 징조까지 보이는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목포가톨릭병원은 폐업 150일째를 넘기고 있고, 성가병원은 노사합의가 타결됐음에도 불구하고 노조간부 4명을 해고함으로써 분쟁이 재발됐다.
한국 가톨릭계여, 대화의 장으로!
로마원정단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절박함에서 꾸려졌다. 장기간의 단식투쟁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해볼 만한 것은 다해봤지만 가톨릭쪽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도리어 ‘직권중재’라는 악법을 이용하여 대화보다는 물리적으로 더욱 강하게 탄압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또한 노동계에서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더 연장된다 해서 한국 가톨릭계가 반응할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버린 상태다. 따라서 최후의 수단으로 노동자들이 직접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에 호소하여 한국의 가톨릭교계를 압박하면 이번 보건노조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한편, 원정대는 이번 투쟁이 ‘보건노동자들의 반가톨릭 투쟁’이라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현재 보건노동자들은 장기파업으로 인해 정신과 육체가 완전히 지친 상태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가톨릭계가 대화 테이블에 나타나는 것이다. 즉, 이것이 문제해결의 시작인 셈이다.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라는 한 간호사의 말에서 현재 진행되는 노사분쟁이 얼마나 잔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희망과는 달리 명동성당이 공권력 투입을 요청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원정대원들 모두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인권과 평화운동의 선봉에서 한국의 민주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가톨릭교회가 노동문제로 들어가기만 하면 중세봉건시대로 회귀한다”며 노동자들은 가톨릭의 제자리 찾기를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의 경우처럼 한국의 가톨릭 산하기업들도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다면 ‘교회와 노동자의 대립구도’나 ‘노동자를 탄압하는 신부들’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바티칸시티=글·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otenet.gr

사진/ "투쟁이 아닌 여행이렀더라면…." 로마원정단의 출발 기자회견 모습.

사진/ 10월24일 원정단이 바티칸 정평위 관계자들과 만났다. 바티칸이 앞으로 어떤 조처를 내릴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