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팻말만 놓인 집터… 컨테이너에서 올 겨울을 나야 하는 강릉 수해지역을 가다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 설악산의 단풍은 추위가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가녀린 가지가 부러질 만큼 감나무에는 주렁주렁 주황색 열매가 매달렸지만, 나무 밑을 서성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삶이 불안한 어른들이 모닥불 주위에 모여 있을 뿐이었다.
논 3천평에서 벼 3가마 수확
지난 여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루사가 남긴 피해는 얼마나 복구됐을까 아침 저녁으로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지기 시작한 10월22일. 최대 피해지역이었던 강릉시 내곡동·노암동·포남동 등 남대천변은 겉으로는 정상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마을 공터를 차지하고 있던 거대한 쓰레기 더미는 자취를 감췄고, 어느 틈에 심어놨는지 푸릇푸릇 배추가 자라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수해복구 지원 감사세일”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그러나 도심을 벗어나자 수마가 남기고 간 상흔은 도처에서 쉽게 목격됐다. 특히 저수지 둑이 터지면서 집 20여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장현동은 더딘 복구작업으로 지난 여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바삐 일손을 놀리는 인부들 뒤편으로 허리가 잘려나간 채 방치돼 있는 둑의 흉물스런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을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잿빛 컨네이너 무리에는 장현동 주민 18가구와 노암동 주민 8가구 등 모두 26가구가 불안하게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삼교(65)씨는 함께 살던 아들 부부와 당분간 떨어져 지내고 있다고 했다. 5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2대가 함께 기거하기는 어려운 탓이다. 무너진 집터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생활하고 있는 정씨의 아들은 이날에서야 집 짓기 공사를 시작했다. “그때 그냥 나도 떠내려갔으면 좀 좋았겠어. 그랬으면 집 지을 걱정도 안 하고….” 새로 사온 항아리 가득 소금을 들이붓고 있던 권오자(75·여)씨는 “집이 형체도 없이 사라져 측량까지 하고 나서야 내 집터가 어딘가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근 모산초등학교에서 지내다 한달 전 컨테이너로 이주한 권씨는 아직 새집 짓기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건축업자는 선금을 달라고 하고, 줄 돈은 없고… 날씨는 추워지는데 아무래도 이번 겨울은 여기서 나야 되지 싶다”고 말했다. 집 짓기를 시작하지 못한 것은 최성만(62)씨도 마찬가지지만, 그는 농사일이 더 걱정이다. 한해 40여 가마가 나던 3천평 논에서 올해 수확한 벼는 불과 3가마. 그나마 알곡이 제대로 패었을지도 의문이다. “논밭이 모두 자갈과 모래로 범벅이 됐으니 어쩌겠어요. 그거 다 퍼내고 땅 갈아엎어서 좋은 황토 가져다 섞어줘야 내년 농사 지을 텐테….” 최씨는 5대째 살아오던 옛 집터에는 다시 집을 짓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물가에서는 더 이상 불안해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재건축 비용이 지급 안 되는 이유
10월18일부터 사흘 동안 삼척과 동해지역에는 최고 300mm가 넘는 비가 내렸다. 삼척시 미로면 하거노리 38번 국도가 지나는 하거노교와 하정1교, 하정2교 등 태풍 루사 피해 이후 응급 복구됐던 교량 3곳이 불어난 물로 침수됐다. 10월23일 오전 미로면으로 들어서는 곳곳에는 반쯤 드러누운 전신주가 불안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 사이로 끊긴 도로 대신 임시로 마련된 비포장 길을 공사용 차량이 힘겹게 지나고 있었다.
미로면 내미로리를 지나는데 어울리지 않게 문패가 붙어 있는 컨테이너가 눈에 들어왔다.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나 집이 흙더미에 깔려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는 허덕규(75)·권옥순(69)씨 부부의 임시거처였다. 큰물이 진 뒤 술로 마음을 달래던 허씨는 술병이 나 사흘째 미음으로 버티고 있었다.
21년간 살아온 보금자리가 흙더미에 파묻힌 뒤 허씨는 복구 지원을 나온 군인들 손을 빌려 이틀 동안 삽으로 흙을 퍼냈다. 차마 중장비를 동원하지 못한 것은 정든 살림 가운데 일부라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복구작업 사흘째 되는 날 결국 포클레인을 동원해 잔해를 드러내면서 허씨가 가진 모든 것은 허망하게 쓰레기가 돼 실려나갔다. 문패는 그가 건진 유일한 지난 삶의 편린인 셈이다.
“돈 주면 집 안 짓는다고 돈 미리 안 내준단다. 내참 기가 막혀서.” 허씨는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주택 재건축 비용이 제때 지원되지 않는 데 대한 분노였다. “이 추운데 어느 미친 놈이 집 지을 돈을 딴 데 쓰겠어. 집도 없이 그 돈 가지고 어디 가서 뭐하고 살겠다고.”
정부는 수해로 집이 완전 파괴된 경우, 재건축 비용으로 1가구당 3240만원을 책정했다. 건평 18평을 기준으로 전체 금액의 40%(국고 25%, 지방비 15%)는 무상 지원해주고, 나머지 60%는 연리 3%로 5년 거치 15년 상환조건으로 융자를 해주기로 했다. 주택이 완성돼야 지원금이 나오지만, 영세 건축업자들은 재료비를 미리 받아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며 선금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수재민이 재건축을 서두르지 못하고 있었다.
폐교가 된 두타분교 담 곁에 세워진 허씨의 컨테이너 앞으로 공사차량이 지나가는지, 방 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사람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돈 줬으면 벌써 집 짓고 있을 것 아니야. 그럼 겨울에 덜 떨고 얼른 들어갈 수도 있을 테고.” 속이 타는지 허씨가 남나마 태우다 꺼둔 담배꽁초에 다시 불을 댕겼다.
팍팍한 살림, 전기요금 걱정
봄철이면 강물을 거슬러오르는 연어떼가 장관을 연출한다는 오십천을 따라 지난 수해 때 장기간 고립돼 복구가 늦어졌던 미로면 하정리에 도착했다. 마을은 주말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10월19일부터 수돗물이 끊겼고, 전화도 불통상태였다.
“잠이나 들면 잊어버릴까, 그날 일을 어떻게 잊겠어.” 구호품으로 나온 오리털 파카까지 껴입고 나와 빨래를 하던 김금자(64·여)씨는 오십천이 범람하면서 7살난 손자와 함께 언덕으로 몸을 피했던 새벽을 얘기하며 몸서리를 쳤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서러워. 집도 없지, 춥지. 너무 잃어버린 게 많아서 말을 할 수가 없어…. 안 운다면 거짓말이지. 하루에도 몇번씩 눈물이 나오는데.”
김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자의 시험성적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했다. “1학기 때는 100점만 받아오더니, 요즘에는 80점도 받아오고, 60점도 받아오고 그래. 어린 것이 얼마나 놀랐으면 그러는지.” 목수일을 하는 김씨의 맏아들과 전기일을 하는 둘째아들은 수해가 난 뒤 거처를 삼척 시내로 옮겼다. 전학 문제로 부모와 떨어진 채 고향마을에 남은 손자를 돌보는 일은 홀로 남은 김씨의 몫이다.
방추월(41·여)씨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기계량기 눈금을 확인한다. “난방을 모두 켜면 한달에 30만~40만원 정도 전기요금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모두들 전기요금 아끼려고, 이불을 세겹 네겹씩 덮고 지내고 있어요.” 한국전력과 삼척시는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수재민에게 9~11월까지는 8만1천원, 12월~2월까지는 13만8천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삼척시 관계자는 “컨테이너 생활자에게는 임시 요금체계를 적용하기 때문에, 일반 가정용보다 3분의 1정도 저렴하다. 전기난방을 모두 가동해도 10만원 안팎의 요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팍팍한 살림에 그나마 가진 것까지 모두 잃은 수재민들은 대부분 전기요금 걱정으로 난방을 극도로 줄이고 있었다.
무너진 담벼락 밑의 휴대폰 번호
추위가 찾아오면서 수재민들은 너나 없이 새집 지을 계획으로 분주했다. 주민들은 짧은 기간에 지을 수 있는 조립식 주택을 선호하지만, 융자를 받기 위해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벽돌집을 지어야 한다. 조립식 주택은 융자 담보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건축업자에게 줄 선금을 마련하지 못했는지 하정리 주민 가운데 공사를 시작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한동안 텐트에서 지내다 컨테이너로 이사오니 꼭 호텔 같더라고. 내 집이라고 생각하니 그래도 마음이 편해지고.” 김연자(60·여)씨는 “춥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 눈이 내리기 전에 어서 빨리 집 짓기 공사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번 겨울을 컨테이너에서 보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 오십천 바로 곁에 집을 짓고 살던 마을 주민들은 삼척시가 새로 제방 높이를 정하기 전까지는 집터조차 닦지 못하는 형편이다. 기존의 평균강우량에 맞춘 제방 높이를 어느 정도나 높여야 할지를 결정한 뒤 그에 맞게 집터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교량 공사를 나온 ㅇ건설 김아무개(51)씨는 “하천 유역면적과 최대 강우량을 계산해 최대 홍수위를 잡고, 그에 따라 하천 폭과 제방 높이 등을 설계해야 한다. 설계를 마쳐도 조달청 심의 거치고 예산 승인받고 하려면 내년 봄에나 공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가워지는 날씨가 두려운 수재민들이 하나둘씩 모닥불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제방 다 쌓고 나서 집 짓게 해준다니, 그때까지 기다려보는 수밖에….” 말을 잊은 채 무심한 표정으로 모닥불 곁에 앉아 있던 심귀자(67·여)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남의 땅을 빌려 집을 짓고 살던 심씨는 새로 집을 지을 터조차 없는 형편이다. 한참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선 그가 땔 나무를 줍기 위해 오십천변으로 느릿하게 걸음을 옮긴다. ‘김OO 집 자리. 01X-XXX-XXX.’ 무너져내린 담벼락 위에 누군가 자신의 집터를 표시해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강릉·삼척=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사진/ 다가오는 겨울은 어디서 보내야 하나. 한 수재민이 모닥불 앞에서 시름에 잠겨 있다.
그러나 도심을 벗어나자 수마가 남기고 간 상흔은 도처에서 쉽게 목격됐다. 특히 저수지 둑이 터지면서 집 20여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장현동은 더딘 복구작업으로 지난 여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바삐 일손을 놀리는 인부들 뒤편으로 허리가 잘려나간 채 방치돼 있는 둑의 흉물스런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을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잿빛 컨네이너 무리에는 장현동 주민 18가구와 노암동 주민 8가구 등 모두 26가구가 불안하게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삼교(65)씨는 함께 살던 아들 부부와 당분간 떨어져 지내고 있다고 했다. 5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2대가 함께 기거하기는 어려운 탓이다. 무너진 집터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생활하고 있는 정씨의 아들은 이날에서야 집 짓기 공사를 시작했다. “그때 그냥 나도 떠내려갔으면 좀 좋았겠어. 그랬으면 집 지을 걱정도 안 하고….” 새로 사온 항아리 가득 소금을 들이붓고 있던 권오자(75·여)씨는 “집이 형체도 없이 사라져 측량까지 하고 나서야 내 집터가 어딘가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근 모산초등학교에서 지내다 한달 전 컨테이너로 이주한 권씨는 아직 새집 짓기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건축업자는 선금을 달라고 하고, 줄 돈은 없고… 날씨는 추워지는데 아무래도 이번 겨울은 여기서 나야 되지 싶다”고 말했다. 집 짓기를 시작하지 못한 것은 최성만(62)씨도 마찬가지지만, 그는 농사일이 더 걱정이다. 한해 40여 가마가 나던 3천평 논에서 올해 수확한 벼는 불과 3가마. 그나마 알곡이 제대로 패었을지도 의문이다. “논밭이 모두 자갈과 모래로 범벅이 됐으니 어쩌겠어요. 그거 다 퍼내고 땅 갈아엎어서 좋은 황토 가져다 섞어줘야 내년 농사 지을 텐테….” 최씨는 5대째 살아오던 옛 집터에는 다시 집을 짓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물가에서는 더 이상 불안해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재건축 비용이 지급 안 되는 이유

사진/ 삼척시 미로면 하거노리에서 수재민들이 아침 일찍부터 새집 짓기에 분주하다.

사진/ 5평 남짓한 컨테이너는 네 사람이 앉기에도 좁아 보였다. 그러나 전에 지내던 텐트에 비하면 '호텔'이라고 한다.

사진/ 황금 들녘이어야 할 논은 모래와 자갈밭으로 변해 있었다. 수확을 포기한 벼이삭이 애처롭게 논을 지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