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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군대와 여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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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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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선희ㅣ소설가. (한겨레)
우리 사회의 일상에서 잠복해 있는 폭력적 구조는 군대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공고해진다. 징병제의 1차 피해자는 젊은 남자들이다. 하지만 일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피해를 안고 가는 쪽은 여자들이다.

1인당 GDP: 1만7380달러- 173개국 가운데 28위(2000년 기준).

교육지수: 0.95- 173개국 가운데 18위.

여성권력지수: 0.378- 조사가능 66개국 가운데 61위.

국회에서 여성의석 비율: 5.9%- 161개국 가운데 131위.

입법, 고위 행정직, 기업인의 여성비율: 5%- 조사가능 68개국 가운데 67위.


(유엔개발기구(UNDP)의 ‘2002년도 인간개발보고서’ 중에서)

마치 학과 과목에 대한 편식이 아주 심한 아이의 성적표 같다. 예컨대 영어·수학은 95점인데 도덕과 미술은 10점이라는 식이다. 이 들쭉날쭉한 성적표의 주인은 물론 한국이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의 그 대한민국이다.

여성인권 후진국, 원인은 징병제

한국이 이렇게 지독한 여성인권 후진국으로 남아 있는 까닭은 뭘까. 유교 전통 하지만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서조차 단연 한국이 튀는 것에 대해서는 근대화 과정의 차이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공산혁명으로 문화를 물갈이한 중국과 일찌감치 근대화 과정을 밟은 일본보다 한국은 봉건왕조시대가 끝나고 나서도 식민시대와 전쟁과 군사정권을 통과하느라 시민사회가 제대로 성숙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충분한 설명은 못 된다. 실제로 치명적 이유는 따로 있는데 나는 그것이 징병제라고 생각한다. ‘군대’라는 주제를 피해가서는 궁극적으로 한국 여성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화여대에 갔다가 양심적 병역거부 지지서명운동 팀을 만나 운수 사나운 토론에 걸려든 정몽준 의원의 입장은 이런 식이었다. 여자는 군대 안 가잖아. 그런데 뭐가 문제란 말이야. 여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군대가 있어 전쟁이 생기고 전장에서 광범하게 성폭력이 벌어진다.

이 여학생의 대답은 약간의 보완이 필요하다. 전쟁만큼이나 심각한 건 우리 사회의 일상에서 잠복해 있는 폭력적 구조다. 그리고 그것은 군대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공고해진다. 징병제의 1차 피해자는 젊은 남자들이다. 하지만 일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피해를 안고 가는 쪽은 여자들이다.

여자들이 징병제의 피해자라는 것을 납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사회가 남성 호르몬 과다분비 사회라는 사실부터 자각할 필요가 있다. 직장 다니는 남자들의 ‘밤’문화가 유흥산업의 몇개 장르를 먹여 살린다는 것도 그 증거다. 역대 최고의 흥행작이 <친구>였다는 사실 역시, 우리 사회 대중의 무의식이 어떤 성분들로 구성되는지 단적으로 말해준다.

가령 파푸아뉴기니 같은 데서 사내아이들이 성기 끄트머리를 자르는 할례를 치른다면, 한국 남자들의 성년식은 군입대다. 2001년에 선포된 남녀평등헌장은 ‘양성 평등한 교육’을 외치지만, 나름대로 양성 평등한 방향으로 개선을 거듭해왔다는 교육내용도 이 대목에서 무력해진다. 군대는 한국 남자들의 교육과정에서 클라이맥스 지점에 있다. 사회에 나가기 직전, 무려 2년이 넘는 집체교육에서 남자는 여자들과 다른 인종으로 훈련된다.

여자는 영원한 2등시민의 지위로

그래서 멀쩡히 대학 나오고 지식노동을 한다는 사람들의 직장에서 “우리 회사는 군기가 세”라는 대사가 유행하고, 상사나 선배가 “까라면 까는” 분위기에서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굴러가기도 하는 것이다. 현역으로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은 물론 방위로 마친 사람조차 일평생 두고두고 군대얘기를 즐기는 것은 한국 남자들이 군대생활에 대해 갖고 있는 애증을 반영한다. 지긋지긋해하면서도 단순무도한 명령-복종 시스템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실컷 패고 실컷 맞는 관계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행복한 결합과도 닮았는데, 군대는 그런 원초적 본능을 병적인 수준으로 강화시킨다.

그래서 ‘진짜 사나이’들과 ‘영원한 해병’들 사이에서 살아가기란, 한국의 여자들에게도 고달픈 노릇이다. 내 직장생활 경험에 비춰 여자들이 사회에 진출해 제자리를 찾는 데도 그것이 바리케이드로 작용하더라는 이야기는 다음 회에 하겠지만 여하튼, 군대에서 죽도록 고생해본 남자들 사이의 연대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매우 강고하다.

대한의 남아로서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생활 3년을 했다면, 보상받고 싶은 심리는 당연하다. 그래서 국가가 젊은 남자들을 동원하면 사회는 평생에 걸쳐 보상한다.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들에 대한 보상에 동원된다. 군대에 가보고 싶거나 말거나 간에 원천적으로 군대란 여자들의 선택을 넘어서는 문제다. 그들에게 주어진 건, 영원한 2등 시민의 지위를 수락하는 의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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