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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죽음을 연구하는 납골당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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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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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노인복지과 박태호(48·6급) 주임은 성균관대 인문·사회 계열 야간학부 ‘빵빵학번’이다. 남들보다 한 시간 더 앞당겨 일한 뒤 부지런히 학교로 달려간다. 고졸 출신의 한을 풀겠다는 이유 때문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장묘 문화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이 그를 부추겼다.

박 주임은 서울시에서 8년 넘게 화장장과 납골당을 관리하는 장묘 업무를 맡아왔다. 그는 이제 장묘전문가일뿐 아니라 열렬한 ‘화장주의자’다. 자신을 비롯해 온 가족이 나중에 화장하기로 약속했다.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1.2배가 넘는 면적이 묘지로 둔갑하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화장을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초기만 해도 화장장이나 납골당 시설은 너무 열악했다. 납골당은 낡고 비좁았으며, 대부분 사람들에겐 ‘화장=악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는 눈길을 외국으로 돌렸다. 자비를 들여 유럽과 일본의 화장장, 납골당, 묘지도 여러 차례 둘러봤다. 좁은 땅을 넓게 쓰는 그들의 지혜가 부러웠다. 장묘와 관련된 자료, 문헌은 눈에 보이는 대로 긁어모았다.

그동안 서서히 우리 장묘시설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93년 우리나라 최초로 경기도 고양시 용미리 벽제시립화장장에 현대적인 납골당이 건립됐다. 지역발전을 해친다며 반대하는 고양시를 1년 동안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였다. 94년엔 ‘왕릉식 납골당’ 같은 새로운 개념의 가족 납골묘도 선보였다. 올해 문을 연 사이버 추모의 집(www.memorial-zone.or.kr)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관심 분야를 꾸준히 지켜오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장묘 업무는 대체로 꺼리는 분야지요. 쉽게 빛나지도 않는 자리고요. 게다가 우리나라엔 전문지식을 지닌 공무원을 키워주는 분위기가 부족합니다. 오히려 한 업무를 오래 맡는 이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습니다. 업계의 비리와 결탁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지요. 그러나 전문지식을 지닌 공무원이 있어야 발전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번 학기엔 장학생이 됐다”며 수줍게 웃는 그는 “앞으로 역사학을 전공해 죽음에 대한 세계 각국의 문화를 깊이있게 살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한겨레 민권사회2부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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