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정치의 꿈

431
등록 : 2002-10-23 00:00 수정 :

크게 작게

정당이 특정인을 중심으로 결성되면 정치의 꿈은 퇴색하게 마련이다. 정치가 인기 중심으로 흘러갈 때 정강과 정책은 뒷전으로 밀리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실질적 개혁과 변화는 불가능하다.

사진/ 김대영ㅣ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위원(박승화 기자)

정치에도 꿈은 있다. 꿈은 월드컵에만 있지 않고 정치에도 있다. 정치의 꿈이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무슨 꿈 용꿈 개꿈”이라고 반문한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이전투구의 권력다툼에 식상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 국민의 희망을 모으는 꿈의 정치는 존재하고, 현대 정치에서 그 꿈은 정당의 정강·정책으로 드러난다. 정당은 모름지기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결성하는 정치적 결사체다. 다만 우리 정치에서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따름이다.

공당의 파괴자들


개인에게도 이기심과 더불어 호연지기가 있듯 정당에도 권력의지와 더불어 공적 목표가 있다. 이기심을 절제하지 못하는 개인이 파렴치한으로 전락하듯, 공공성을 잃어버린 정당은 모리배로 전락한다. 모리배 정당이 난무하는 속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난주 두개의 신당이 창당되었다.

정몽준 의원을 중심으로 ‘국민통합21’이라는 신당이, 젊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개혁국민정당’이 창당되었다. 아직 완벽한 정당의 골격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정당법에 따라 이들 창당준비위원회는 공식적 정당으로 인정받는다.

재미있게도 이들 두 정당은 모두 정치개혁을 내세운다. 그렇다고 해서 “뜻이 같으니 함께 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행여 그런 주장을 하면 순진한 사람이라고 핀잔받기 쉽다. 두 정당은 주인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통합21의 창당준비위원장은 유창순씨지만 실질적 소유주가 정몽준 의원임을 세상이 다 안다. 그 정당이 어떤 주장을 하고 어떤 당명을 내걸더라도 그 당은 분명 정몽준 개인의 사당(私黨)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개혁국민정당 또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으로만 구성되었다.

정당이 특정인을 중심으로 결성되면 정치의 꿈은 퇴색하게 마련이다. 정치가 인기 중심으로 흘러갈 때 정강과 정책은 뒷전으로 밀리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실질적 개혁과 변화는 불가능하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일단 권력을 잡은 뒤 개인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당의 정강과 정책이 지도자를 묶어둘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정당을 공당(公黨)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 정치사는 공당을 파괴하는 사건들로 점철되어 왔다. 정치로부터 꿈을 박탈한 공당의 파괴자들은 정치 지도자라기보다는 모리배의 보스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근대화의 꿈을 억누르고 3선 대통령, 종신 대통령을 추구한 박정희. 민주화의 꿈을 퇴색시키고 분당과 야합으로 권력을 추구한 김대중과 김영삼. 전·현직 대통령들의 위업을 폄하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들로 말미암아 수많은 정치인들이 모리배로 전락했음이 가슴 아파서다.

모리배 정당 속에서 대부분 정치인들은 꿈을 잃어버린 채 보스의 졸개로 전락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보스에게 충성하고, 떡고물을 챙기는 일뿐이다. 그런 비참한 결과를 예견해서 김종필이 박정희에게 저항했고, 김상현·김원기·노무현·이부영·제정구·이철·박석무·홍기훈·원혜영·김원웅 등이 김대중과 김영삼의 정당 사유화에 저항했다.

또다시 사당을 찾는 졸개들이…

안타까운 일은 박정희·김영삼·김대중 모두 권력 획득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정당정치의 경험이 일천한 우리에게 정치인의 위업만이 눈에 크게 보였고, 민주적 정치를 가능케 하는 정당의 역할은 하찮게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제왕적 대통령’이요 자식들까지 설치는 부정부패였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97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사당의 성격을 벗어났고, 새로운 사당을 추구한 이인제의 국민신당이 패배했다. 그리고 민주당이 사당의 구조를 깨기 위한 처절한 진통을 겪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출발부터 대중정당·정책정당의 원칙을 견지하며 점차 국민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정당이 꿈을 잃어버렸을 때 남는 것은 적나라한 권력의지뿐이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 , “하늘이 두쪽 나도 이겨야 한다”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이번 대통령 선거의 저속한 풍경은 사당의 폐해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최근 사당에 길들여져 또다시 사당을 찾아 졸개가 되기를 자청하는 정치인들이 눈에 띈다. 고귀한 꿈을 접고 오직 권력만을 추구하는 모리배의 길을 향해 발을 내디디며 그들은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국민’을 들먹인다.

국민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모습부터 되돌아보라. 그리고 정치의 푸른 꿈을 간직한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