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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굳센 의지로 절망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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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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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안에 갇혀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누워서 살았다. 아랫목에서 윗목조차도 수년 동안 가보지 못한 채 나무처럼 한자리에 뿌리박혀서 살았다. 그 세월은 너무나 처절했고 두려운 세월이었다.” 8년여의 세월을 아랫목에서 윗목으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사지가 꼬부라지고 굳은 채 좁은 방안에 갇혀 살아온 사람이 있다. 바로 고단했던 자신의 삶을 단아한 한편의 실화소설 <그때 너를 보았노라>(국민일보 펴냄)로 엮어 최근 펴낸 정인숙(45)씨가 그 주인공. 그의 책은 비록 개인적 신앙고백기 성격도 없잖지만 자신에게 드리워진 가혹했던 시련을 불굴의 의지로 딛고 일어선 한 여인의 치열한 투병기이기도 하다.

충남 홍성 출생의 정씨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첫딸을 낳은 뒤 2개월께인 1981년 어느 날. 출산 얼마 뒤라 아직은 푹 쉬어야 할 때지만 행복한 마음에 정씨는 하루종일 뜨개질을 한 게 큰 실수였다. 다음날 갑자기 통증이 온몸에 밀려오더니 이내 통증은 그의 온몸을 결박했다. “왜 이불 속에서만 꾸물거리고 있어? 아침은 굶을 거야?” 남편의 호통에도 그는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병명은 급성 류머티즘 관절염. 핏속의 독소가 온몸에 흐르면서 곳곳에 통증을 일으키며 전신을 꼬부라지고 굳게 만드는 병이었다. 단순히 해산요독인 줄 알았던 병은 현대 의학도 손을 뗐고, 갖가지 민간 치료도 소용없었다.

1982년, 그는 결국 가정을 떠나 친정으로 혼자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혹독한 절망 속에서 결국 남편은 떠났고 어린 딸도 만날 수 없게 됐다. 오직 친정어머니만이 그의 곁에서 대소변과 뒷수발을 받아냈다. “그때부터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지가 꼬부라진 채로 친정어머니의 도움만으로 살아야 하는 삶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극단의 절망과 고통 속의 나날에서 그를 일깨운 것은 바로 삶을 존중케 한 한 목사의 기도였다. 그의 기도는 정씨에게 벼락치는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했고, 그 의지로 그는 좁은 방안에서 비록 미세한 움직임이건만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1985년의 일이었다. “수년 만에 움직여보는 꼬부라진 관절들은 녹슬어 부식된 기계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지만 이를 악물고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관절들은 통증으로 발악했습니다. 운동은 치열한 싸움판이었습니다.” 그러기를 4년여. 1989년 기적같이 정씨는 꼬부라진 다리를 폈고 마침내 일어섰다. 이제 작가가 되고픈 꿈에 늦깎이 대학생(방송대 국어국문학과)이 돼 홍성에서 서울로 자동차까지 몰고다니는 정씨는 책을 내게 된 동기에 대해 “내 얘기가 바로 당신의 얘기이며 당신의 처절한 고통이 바로 이 땅을 살아가는 인생들 모두의 몫이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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