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후지모리 “독재는 외로워”
등록 : 2000-07-25 00:00 수정 :
다음주부터 임기 5년의 3번째 대통령직을 시작하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의 취임식장이 썰렁할 것 같다. 중남미국가들 가운데 취임식에 국가원수가 참석하는 나라는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뿐이고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부통령이나 외무장관, 현지 대사 등을 대리참석시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가원수가 취임식에 불참하는 나라는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우루과이, 코스타리카, 파나마,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쿠바, 콜롬비아 등 12개국으로 중남미의 주요 국가들이 거의 다 망라돼 있다. 후지모리가 이웃나라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95년 재선에 성공한 후지모리의 취임 당시에는 9개국 국가원수가 직접 참석했으며 90년 첫 번째 취임식 때에도 5개국 국가원수가 참석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족이다.
중남미 국가원수들은 이미 예정된 일정조정이 어려워 참석하지 못한다고 설명하지만 변명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선거부정 의혹으로 페루 야당과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후지모리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미주기구(OAS)가 페루 대선의 재실시 여부를 논의할 당시엔 내정 불간섭 차원에서 후지모리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의 석연치 않은 3선 연임은 중남미 민주주의의 퇴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이들 이웃나라 수반들의 취임식 불참은 후지모리에 대한 ‘무언의 경고’라고 볼 수 있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이런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 페루 민주주의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알레한드로 톨레도 등 야당 지도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협의하겠다고 밝혔으나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태경 기자/ 한겨레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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