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해고노동자 폭력진압 사건을 소재로 한 단편 <빗방울 전주곡> 만드는 최헌규 감독의 꿈
지난 초여름에 전자우편을 하나 받았다. ‘얼치기 사회물을 만드는 단편영화 연출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글로 시작된 편지는 “정리해고당한 대우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겪은 2001년 4월10일 폭력진압의 충격과 슬픔을 소재로 한 단편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현실과 대충 타협하든지, 시나리오를 축소해버리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지만, 그럴 바에야 차라리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고…. 고민이 많았습니다만, 지난 월요일에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갔다 와서 다시 꼭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동문제를 연구하는 단체에 계신 만큼 혹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나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정보망이 있을 것 같아 초면에 이렇게 어려운 얘기를 하게 됐는데요…. 가능하면 한번 만나뵙고 얘기를 나누고 싶으니 연락주시기 바랍니다”는 절실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씹어버린’ 메일의 인연
내가 며칠만 시간을 내면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일에 단 며칠을 투자하는 것도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그 무렵 엄청 바빴다. 이틀이 멀다하고 전국을 싸돌아다니며 “도와줄 수 없어 죄송하다”는 답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유야무야 잊고 말았다. 편지를 보낸 이는 상당히 고심했을 텐데…. 나는 그가 어렵게 보낸 편지를 요즘 유행하는 젊은 사람들 말로 ‘씹어버린’ 것이다.
웬만한 전문가라도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후배가 하나 있다. “최근에 볼 만한 공연은 뭐니”라거나 “서울 어느 구석쯤에 맛좋은 음식집이 있니”라는 물음에 그 후배보다 완벽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 후배가 며칠 전 “‘휴먼 포엠’에 소개할 만한 정말 좋은 사람을 하나 소개하겠다”고 전화를 했는데, 설명을 듣다 보니 ‘좋은 사람’이란 지난 초여름 내게 어렵사리 도움을 청하는 전자우편을 보낸 ‘얼치기 사회물을 만드는 단편영화 감독’이 아닌가. 후유, 이래서 사람이 죄 짓고는 못 사는 법이다. 비가 내리는 토요일 저녁, 최헌규(30) 감독을 흑석동 중앙대학교 교정에서 만났다. 나는 최 감독이 지난 여름 내게 보낸 전자우편을 ‘씹어버린’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첫인사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최 감독이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3학년 때였다. “처음에는 좀 오만하게 생각했어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등을 보며 ‘영화를 이렇게 쉽게 만들 수도 있구나’ 싶었지요. 취미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4학년 여름방학 때 뜻하지 않게 ‘목돈’이 생겼을 때 그 돈으로 덜컥 한겨레문화센터의 단편영화 제작과정에 등록을 했다. “망설임 없이 ‘한겨레문화센터’를 선택한 까닭은 그 이름이 주는 정직한 느낌 때문이었어요. ‘최소한 사기치지는 않겠다’는 기본적 신뢰가 있잖아요.”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어울린 사람들과 주고받은 정보에 힘입어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아카데미’ 연출과정에 입학했다. 최 감독은 그 목돈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신의 계시’였다”고 말했지만, 내가 보건대 최 감독에게는 또 다른 ‘신의 계시’가 닥쳤으니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이 그것이다.
“TV에 대우자동차 직원의 부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회에 나온 장면이 보이는 거예요. 그 아이들이 모두 미취학 연령인데, 무시무시한 폭력진압 장면을 다 봤어요.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무지막지한 폭력에 노출돼버린 거죠. 그 아이들이 폭력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다큐멘터리쪽에서는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는데 상업영화쪽에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좀 안타까웠어요. 누군가는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라도 다뤄야 하지 않겠는가…. 처음에는 혼자 ‘그런 일을 겪은 가족들이 일년쯤의 세월이 지난 뒤에는 어떻게 돼 있는지’에 대한 기획을 해보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마음이 따뜻한 배우들의 도움
가장 큰 문제는 제작비다. 30%가량은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게 됐지만, 나머지는 여러 사람들이 비용을 갹출했다. 어머님 신세도 조금 지고 친구들한테 빚도 내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고 있다. 나를 만난 날도 최 감독은 결혼식 ‘웨딩비디오’를 편집하는 아르바이트하는 중에 잠시 짬을 낸 것이었다. 제작비를 희사한 개인들 가운데 이른바 저명인사는 한 사람도 없다. 기업은 ‘돈벌이’나 ‘광고효과’가 ‘제로’인 단편영화에 돈을 댈 리 없고, 인권단체나 노동단체들은 모두 ‘제 코가 석자’여서 그런 일에까지 지원할 만한 예산이 아예 없다.
“단체에서는 지원을 못 받았어요. 그렇지만 제가 찾아가 만난 사람들,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푼돈을 내요.” 이 대목에서 최 감독은 잠시 목이 잠겨 말을 멈췄다. “모두 다 찾아가서 만나볼걸 그랬어요. ‘찾아와도 헛수고니까 굳이 올 필요 없다’고 하는 단체들이 많았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다 말씀이라도 고맙게 해줬어요. 찾아오지 말라고 해도 모두 가서 만나볼걸 그랬어요. 재정적으로 큰 성과는 없었지만 참 좋은 경험이었어요.”
사운드에 욕심을 내느라고 굳이 35mm 필름으로 촬영했다. 카메라를 빌리는 비용이 무척 비싸 촬영기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본인은 물론 스태프와 배우들의 노동강도를 최대한으로 쥐어짜는 수밖에 없다. 기존 영화 제작자들은 장비를 저렴하게 또는 무료로 빌려주는 것으로 도와주고 있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후반 작업은 인맥을 최대한 동원해 인건비 없이 해결하고 프린트 비용만 들이자는 야무진 꿈을 갖고 있다. 개런티를 받기로 한 배우는 한명도 없다. 취지를 설명하면 “시나리오 보내봐라.” “한번 만나보자.” “내가 하겠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개런티 없이 출연해주는 짱짱한 경력의 배우들이 아직도 ‘따뜻한 영화판’에는 많다. 그렇게 마음이 따뜻한 배우들의 이름은 밝히는 것이 좋다. 주인공-박원상, 부인-동효희, 딸-박소연이다. 영화 좀 보는 사람들은 모두 알 만한 중견 배우들이다.
촬영을 앞두고 대우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가정을 찾아갔다. “내가 픽션으로 꾸민 모델이 말이 되는 것인지 한번 확인받고 싶었어요. 다큐멘터리 화면에서 본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정문 옆에 텐트를 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이런 부분은 피해가면 안 되겠다. 솔직하게 보여줘야 하고 감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의 제목은 <빗방울 전주곡>이다. “노동자들은 해고당했고, 고통받았지만 지금 모두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까 이런 단순한 심상에 반대되는 것도 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같은 것이라는 거죠. 똑같은 비를 보고 사람들은 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같다는 거죠. 어릴 때부터 가져온 이미지예요. 쇼팽이 작곡한 같은 제목의 노래가 있다는 것은 최근에야 알았어요.” 나 같은 필부에게는 선문답처럼 느껴지는 그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꼭 봐야겠다.
“더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영화감독으로서 ‘미래의 꿈’을 물어보았다. “노동자의 삶과 관련한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어요. 직업이 바뀌고 설정이 바뀌어도 제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노동자일 겁니다. 판타지든, 리얼리즘이든, 코미디든 모두 노동자의 정서와 정치에 위배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요즘은 ‘압바스 키에로스타미’의 자연스러움보다 ‘켄 로치’의 명확한 눈길에 더 끌렸어요. ‘내공’과 ‘시각’은 분리될 수 없어요. 명백한 눈길이 완성도를 지향하는 거죠. 그것이 영화적 기술을 넘어서는 힘이니까요. 나의 미래가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꽤 도덕적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이마에 ‘나 착해!’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더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단다.
이렇게 열심히 만든 영화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볼까, 그것이 걱정되었다. “영화 <파업전야>처럼 각종 집회에서 상영될 수 있을까요” “날카로운 정치성이나 역동성이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죠. 집회뿐 아니라 모든 가정에서 상영되면 좋겠어요. 단편영화는 봐주기만 해도 고마운 일이에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겨울비처럼 관객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줄 단편영화 <빗방울 전주곡>. 개봉 박두! 기대하시라!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사진/ (김종수 기자)
웬만한 전문가라도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후배가 하나 있다. “최근에 볼 만한 공연은 뭐니”라거나 “서울 어느 구석쯤에 맛좋은 음식집이 있니”라는 물음에 그 후배보다 완벽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 후배가 며칠 전 “‘휴먼 포엠’에 소개할 만한 정말 좋은 사람을 하나 소개하겠다”고 전화를 했는데, 설명을 듣다 보니 ‘좋은 사람’이란 지난 초여름 내게 어렵사리 도움을 청하는 전자우편을 보낸 ‘얼치기 사회물을 만드는 단편영화 감독’이 아닌가. 후유, 이래서 사람이 죄 짓고는 못 사는 법이다. 비가 내리는 토요일 저녁, 최헌규(30) 감독을 흑석동 중앙대학교 교정에서 만났다. 나는 최 감독이 지난 여름 내게 보낸 전자우편을 ‘씹어버린’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첫인사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최 감독이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3학년 때였다. “처음에는 좀 오만하게 생각했어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등을 보며 ‘영화를 이렇게 쉽게 만들 수도 있구나’ 싶었지요. 취미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4학년 여름방학 때 뜻하지 않게 ‘목돈’이 생겼을 때 그 돈으로 덜컥 한겨레문화센터의 단편영화 제작과정에 등록을 했다. “망설임 없이 ‘한겨레문화센터’를 선택한 까닭은 그 이름이 주는 정직한 느낌 때문이었어요. ‘최소한 사기치지는 않겠다’는 기본적 신뢰가 있잖아요.”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어울린 사람들과 주고받은 정보에 힘입어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아카데미’ 연출과정에 입학했다. 최 감독은 그 목돈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신의 계시’였다”고 말했지만, 내가 보건대 최 감독에게는 또 다른 ‘신의 계시’가 닥쳤으니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