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저격한 <전화부스>
등록 : 2002-10-16 00:00 수정 :
미국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 저격살인사건의 한편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영화인이 한 사람 있다.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래리 코언이다. 그가 쓴 시나리오로 만들어져 다음달 15일 개봉할 예정이었던 영화 <전화 부스>가 현실의 저격사건과 닮은꼴이라, 조금만 일찍 개봉했더라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판이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영화 <전화 부스>는 홍보회사 임원인 콜린 패럴이 길가의 공중전화를 받았다가 스나이퍼(저격수)인 키퍼 서덜랜드의 저격 목표가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가 현실의 저격사건과 다른 점이라면 키퍼 서덜랜드는 처벌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고른다는 대목이다.
코언은 “영화가 (저격사건보다) 일찍 개봉되지 않아 너무 다행”이라며 “내가 실제 사건의 저격수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격사건의 희생자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일을 바라지 않는다”며 영화 개봉이 늦춰져도 상관이 없다는 뜻을 밝혔다. 코언은 <전화 부스>의 시나리오를 3년 전에 썼다.
영화를 제작한 20세기폭스도 관객들의 거부감을 우려해 개봉 연기를 검토 중이다. 지난해 9·11 동시다발 테러가 터지자 워너브러더스는 테러 소재의 영화 <콜래터럴 데미지>의 개봉을 연기한 바 있다.
한편 코언은 <전화 부스>말고도 이미 1977년에 저격수를 소재로 한 영화를 감독한 적이 있어 눈길을 끈다. <신이 나에게 말했다>(God Told Me To)는 제목처럼, 신이 자신에게 얘기했다고 믿는 미친 사람이 일련의 저격사건을 저지르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지난 7일 메릴랜드 보위에서 발생한 저격사건 현장 주변에서 범인이 쓴 ‘나는 신이다’라는 메모를 연상시킨다.
정재권 기자/ 한겨레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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