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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대화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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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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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장철규 기자)
16살 된 딸에게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하자 "저도 어른이에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어요"라고 대든다/직장에서 A와 B 두 사람에게 일을 시켰더니 A가 B하고는 일을 못하겠다며 빼달라고 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직업의 사람들과 원탁에 앉아 쉬울 듯하면서도 녹록지 않은 문제풀이를 해보았습니다. 한국리더십센터의 합숙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은 성공적 삶을 살려면 자기관리·대인관계가 중요하다며 구체적 방법과 보기를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 앞에 사례를 든 '대화의 습관'은 프로그램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습니다.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심지어 꿈속에서도 하는 말인데, 과연 대화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돌아보게 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기업체 임원은 부인과 별 문제는 없지만 '먹자', '자자' 하는 생활 용어(생존필수 용어) 외에는 대화가 없다고 합니다. 군의 한 간부는 자녀와 떨어져 살아온 날이 많은 탓인지 아들이 슬슬 피한다고 합니다. 직장 동료와 도대체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대화의 문제는 듣기의 문제입니다. '대화의 습관'에 따르면 우리는 무시, 듣는 척, 선택적 듣기, 경청의 네 차원 가운데 주로 첫 번째 방식으로 듣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의견을 파악하거나 진단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 경청인데, 우리가 경청한다는 것도 흔히 세 번째, 곧 선택적 듣기가 많다고 합니다.

선택적 듣기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느낌을 자신의 의견이나 경험을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의 틀에서 충고하거나, 탐색하거나, 해석하거나, 판단합니다. 내가 그러한 상황에 놓였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하려고 하지, 그 사람의 생각과 처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네가 무슨 어른이야', '뭐가 어른인데' 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의견이나 경험으로 이해하려는 '자서전적 응답'에서 대화가 맴도는 경우가 태반인 것 같습니다. 이런 방식은 특별히 상대방이 견해를 구하거나 논리적 대화를 할 때는 효과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경청의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경청의 기본은 말하는 사람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듣는 사람은 '당신이 …라고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네가 들은 내용을 정리하면' 하는 식으로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딸에게 '네가 이제 어른이 됐다는 거지?'라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총련을 표지이야기로 다루면서, 공안당국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가 피끓는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까지는 아니더라도 선택적 듣기 또는 듣는 척이라도 한 적 있는가 의문을 던져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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