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서울호텔 룸메이드 아줌마들이 전국여성노조 문을 두드린 사연
특급 호텔을 지키는 이들은 우아한 복장에 세련된 매너의 호텔리어들만이 아니다. 반들반들 윤기 나는 객실과 공용 공간은 룸메이드들의 손으로 가꿔진다.
자존심 빼앗은 일방적 명퇴강요
“미소 짓는 얼굴 르네상스 마음”.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서울호텔 직원 출입구에 붙어 있는 슬로건이다. 10월1일 저녁 6시, 검은색 복장을 한 일군의 여성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하루 일과를 마친 룸메이드 아줌마들이다. 검은 옷을 입은 건 항의의 표시다. 아줌마들은 요즘 몹시 화가 나 있다. 88년 호텔이 문을 열 때 입사해 꼭두새벽부터 걸레를 손가락에 끼고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길 15년째. 일이 고되도 호텔을 호텔이게 하는 역할에 자부심을 지니고 살았으나, 지난해 말부터 자부심은커녕 자존심마저 빼앗겼다.
정경희(가명)씨가 집을 나서는 시각은 새벽 5시 반. 공식적인 출근 시간은 9시지만 두 시간은 일찍 일을 시작해야 퇴근시간 전까지 객실 13개를 치울 수 있다. 객실문을 열자, 한숨부터 나온다. 침대보는 신발로 밟고 다녔는지 더럽힌 채 바닥에 떨어져 있고, 욕실 앞 카펫은 흥건하게 젖어 있다. 그래도 며칠 전의 한 객실처럼 술병과 토사물로 난장판이 돼 있지는 않다. 방을 치우는 동안 다른 객실을 치우라는 연락이 온다. 종종걸음치며 하루 일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물먹은 솜 같다. 욕실 청소 때 튄 세제를 제대로 닦아내지 못해서인지 종아리와 팔꿈치도 따끔거린다. 지난해 12월 호텔쪽은 경영이 어려워 인건비를 줄여야 하니 55살 이상은 명예퇴직을 하라고 권고했다. 모든 부서에 해당하는 사항이라고 했지만 객실관리·공용공간관리·기물관리 일을 맡은 여성 노동자들만 집중공략을 당했다. 권고가 아닌 반강제였다. 손님의 요청으로 급하게 방을 치울 때도 “빨리 내려와 사인을 하라”는 들볶임을 당했다. 룸메이드들 가운데 한 사람이 관리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도 명예퇴직 대상자인데 왜 사인을 안 합니까?”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나는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당신네들과 비교를 하느냐.” 아무리 허드렛일 취급을 해도… 상당수의 룸메이드들이 버티자, 호텔쪽은 3개과는 아웃소싱을 할 테니 경력과 나이를 떠나 무조건 용역회사로 옮기라고 공표했다. 용역회사로 옮기는 명퇴자들에게는 2년간 같은 대접을 해준다고도 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진행된 개별 면담에서는 “호텔업계에서 용역화는 대세다. 지금 안 나가면 명퇴금도 못 챙긴다”는 말을 반복했다. 명퇴금은 16개월치 기본급으로 결정났다. 호텔과 호텔노조 사이의 일방적 결정이었다. 알고 보니 용역회사를 차린 이는 호텔에서 룸메이드들을 관리하던 부장이었다. 사정은 불보듯 뻔했다. 정규직이던 신분은 하루아침에 임시직으로 내몰렸고, 명퇴를 한 부장은 용역회사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똑같은 대접을 해준다는 말과 달리 기본급을 제외한 각종 수당과 800%에 이르는 상여금은 사라졌다. 호텔쪽 설명은 2년치 상여금을 명퇴금으로 미리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호텔과 호텔노조는 경영이 어렵다는 말과 달리 올해 정규직원들은 월급을 11만원가량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 참다 못한 룸메이드 아줌마들은 지난 8월 전국여성노조(02-362-5305) 문을 두드렸다. 전국여성노조 르네상스서울호텔 이옥순(49) 분회장은 “아무것도 몰라 앉아서 당한 게 억울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권리는 우리가 찾겠다”고 말했다. 첫발은 용역회사와의 단체교섭. 그러나 5차례 진행되는 동안 용역회사쪽은 “우리는 2년간 호텔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는 답변만 내놓고, 호텔쪽은 “당신들은 용역회사 소속이니 우리가 처우를 바꿔줄 수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교섭이 이어지자 9월 말부터 호텔쪽은 체크리스트라는 낯선 관리방침을 내놓았다. 일을 마치고 나면 주임들이 일일이 점검한 뒤 체크된 사항에 대해 인정하는 사인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1년 뒤면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이들에게 이보다 큰 심리적 압박은 없다. “아무리 허드렛일 취급을 해도 우리가 하루만 일손 놓으면 호텔은 안 돌아간다. 늦었지만 용감한 노조로 만들고 싶다.” 룸메이드 이아무개씨의 다짐이다. 벼랑 끝에 몰린 룸메이드 아줌마들의 바람은 하나다. 일터에서 계속 “미소 짓는 얼굴로 손님들을 만나는 것”이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사진/ 한자리에 모인 르네상스서울호텔 룸메이드 아줌마들. 그들이 없으면 호텔은 돌아가지 않는다. (김종수 기자)
정경희(가명)씨가 집을 나서는 시각은 새벽 5시 반. 공식적인 출근 시간은 9시지만 두 시간은 일찍 일을 시작해야 퇴근시간 전까지 객실 13개를 치울 수 있다. 객실문을 열자, 한숨부터 나온다. 침대보는 신발로 밟고 다녔는지 더럽힌 채 바닥에 떨어져 있고, 욕실 앞 카펫은 흥건하게 젖어 있다. 그래도 며칠 전의 한 객실처럼 술병과 토사물로 난장판이 돼 있지는 않다. 방을 치우는 동안 다른 객실을 치우라는 연락이 온다. 종종걸음치며 하루 일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물먹은 솜 같다. 욕실 청소 때 튄 세제를 제대로 닦아내지 못해서인지 종아리와 팔꿈치도 따끔거린다. 지난해 12월 호텔쪽은 경영이 어려워 인건비를 줄여야 하니 55살 이상은 명예퇴직을 하라고 권고했다. 모든 부서에 해당하는 사항이라고 했지만 객실관리·공용공간관리·기물관리 일을 맡은 여성 노동자들만 집중공략을 당했다. 권고가 아닌 반강제였다. 손님의 요청으로 급하게 방을 치울 때도 “빨리 내려와 사인을 하라”는 들볶임을 당했다. 룸메이드들 가운데 한 사람이 관리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도 명예퇴직 대상자인데 왜 사인을 안 합니까?”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나는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당신네들과 비교를 하느냐.” 아무리 허드렛일 취급을 해도… 상당수의 룸메이드들이 버티자, 호텔쪽은 3개과는 아웃소싱을 할 테니 경력과 나이를 떠나 무조건 용역회사로 옮기라고 공표했다. 용역회사로 옮기는 명퇴자들에게는 2년간 같은 대접을 해준다고도 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진행된 개별 면담에서는 “호텔업계에서 용역화는 대세다. 지금 안 나가면 명퇴금도 못 챙긴다”는 말을 반복했다. 명퇴금은 16개월치 기본급으로 결정났다. 호텔과 호텔노조 사이의 일방적 결정이었다. 알고 보니 용역회사를 차린 이는 호텔에서 룸메이드들을 관리하던 부장이었다. 사정은 불보듯 뻔했다. 정규직이던 신분은 하루아침에 임시직으로 내몰렸고, 명퇴를 한 부장은 용역회사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똑같은 대접을 해준다는 말과 달리 기본급을 제외한 각종 수당과 800%에 이르는 상여금은 사라졌다. 호텔쪽 설명은 2년치 상여금을 명퇴금으로 미리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호텔과 호텔노조는 경영이 어렵다는 말과 달리 올해 정규직원들은 월급을 11만원가량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 참다 못한 룸메이드 아줌마들은 지난 8월 전국여성노조(02-362-5305) 문을 두드렸다. 전국여성노조 르네상스서울호텔 이옥순(49) 분회장은 “아무것도 몰라 앉아서 당한 게 억울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권리는 우리가 찾겠다”고 말했다. 첫발은 용역회사와의 단체교섭. 그러나 5차례 진행되는 동안 용역회사쪽은 “우리는 2년간 호텔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는 답변만 내놓고, 호텔쪽은 “당신들은 용역회사 소속이니 우리가 처우를 바꿔줄 수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교섭이 이어지자 9월 말부터 호텔쪽은 체크리스트라는 낯선 관리방침을 내놓았다. 일을 마치고 나면 주임들이 일일이 점검한 뒤 체크된 사항에 대해 인정하는 사인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1년 뒤면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이들에게 이보다 큰 심리적 압박은 없다. “아무리 허드렛일 취급을 해도 우리가 하루만 일손 놓으면 호텔은 안 돌아간다. 늦었지만 용감한 노조로 만들고 싶다.” 룸메이드 이아무개씨의 다짐이다. 벼랑 끝에 몰린 룸메이드 아줌마들의 바람은 하나다. 일터에서 계속 “미소 짓는 얼굴로 손님들을 만나는 것”이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