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 귀의하겠다”며 갑작스레 사표를 던진 김기영 서울지방경찰청 차장
내가 말한 모든 법(吾說一切法)
그거 다 군더더기(都是早騈拇)
오늘 일을 묻는가(若問今日事)
달이 일천강에 비치리(月印於千江)
판사 자리를 집어던지고 출가해 조계종 제1대 종정 자리에 오른 효봉 스님의 열반송이다. 1888년 평안남도 양덕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스물여섯에 법관이 됐다. 판사생활 10년 만에 처음으로 사형선고를 내린 뒤, 몇날 몇밤을 뜬눈으로 지새며 고뇌한 끝에 “이 세상은 내가 살 곳이 아니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서른여덟에 신계사 보운암 석두스님으로부터 사미계(십계)를 받고 늦깎이로 출가했다. 깨닫기 전에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밖으로 나오지 않으리라는 맹세를 하고 토굴에 들어갔는데, 1년 반 만에 토굴벽이 무너졌다. 필사의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은 것이었다. 1966년 법랍 41살 때 앉은 채 입적했다. 천호동 텍사스촌 싹쓸이하기도
지난 10월2일 “불가에 귀의하겠다”며 갑작스레 사표를 던진 김기영(55)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치안감)이 세인들의 눈과 귀를 끌고 있다. “정치를 하려고 하나?”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나?” 주변에선 그의 사퇴를 두고, 가만히 있어도 청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왜 그랬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가 이른바 ‘잘 나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김 차장은 경남 김해 출신으로 현재 경찰 서열 5위다. 간부후보 23기로 경찰에 몸 담은 뒤 서울 강동경찰서장, 서울청 형사과장, 기동단장, 경비부장 등을 거쳐 지난해 말 치안감으로 승진했다. 강동서장으로 재직할 땐 유명한 천호동 텍사스촌을 ‘싹쓸이’해 성가를 얻는 등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던 중이었다.
김 차장은 사표 제출과 함께 서울 내자동 서울경찰청사를 떠나 잠적한 뒤 외부와의 모든 연락을 끊었다. “평상시 가끔 ‘이제 다 그만두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심각하게 안 받아들였어요. 농담으로 들었죠. 50대를 넘어 갱년기도 오고 하니까, 몇해 더 일을 하나, 지금 그만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나 비슷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부인 곽정선(51)씨는 그의 출가를 강력히 만류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남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강한 사람이에요”라며 김 차장의 굳은 결심을 전했다
김 차장은 대단한 원칙주의자고,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게 주변의 평이다. 경찰 동기인 서울경찰청의 한 고위간부는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곧은 사람이고, 업무처리를 칼 같이 명확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그를 기억했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
김 차장은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구에 사는 누님과 암자를 짓고 부처님을 모시거나 대학 동창생이 있는 절에 들어갈 생각이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왔다. 아버지가 승려였다. 군에서 제대한 뒤 아버지의 절을 이어받으려고 삭발 수도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절을 남에게 넘기고 속세로 내려오고 말았다. 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서야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일까? 그가 얻으려는 깨달음은 어떤 것일까? 효봉 스님의 오도송(불도의 진리를 깨닫고 지은 시)으로나마 짐작해볼 따름이다.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海底燕巢鹿抱卵)
타는 불 속 거미집에 고기가 차를 달이네(火中蛛室魚煎茶)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랴(此家消息誰能識)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白雲西飛月東走)
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
판사 자리를 집어던지고 출가해 조계종 제1대 종정 자리에 오른 효봉 스님의 열반송이다. 1888년 평안남도 양덕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스물여섯에 법관이 됐다. 판사생활 10년 만에 처음으로 사형선고를 내린 뒤, 몇날 몇밤을 뜬눈으로 지새며 고뇌한 끝에 “이 세상은 내가 살 곳이 아니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서른여덟에 신계사 보운암 석두스님으로부터 사미계(십계)를 받고 늦깎이로 출가했다. 깨닫기 전에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밖으로 나오지 않으리라는 맹세를 하고 토굴에 들어갔는데, 1년 반 만에 토굴벽이 무너졌다. 필사의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은 것이었다. 1966년 법랍 41살 때 앉은 채 입적했다. 천호동 텍사스촌 싹쓸이하기도

사진/ 사표를 쓰고 잠적한 김기영 서울지방경찰청 차장. 동국대 불교학과 출신에 아버지도 승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