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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농담과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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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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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승화 기자)
일제시대에 보성고보 재학 중 홀연히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무장투쟁을 한 김학철 선생은 재미있는 경험담을 들려줍니다.

일반적으로 ‘독립운동’ 하면 곧 비장함과 처절함에다 연결하는 경향들이 있는데, 그것은 일면만을 너무 강조하거나 부각한 결과지 실상은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렇지 혈육과 친지들을 다 고국에 남겨두고 단신 외국으로 뛰쳐나와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5년씩, 10년씩 또는 15년, 20년씩 풍찬노숙의 간고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일년 열두달 삼백예순날을 밤낮없이 우국지심에 잠겨만 있다면 사람이 과연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지레 말라죽어버리지.”(<최후의 분대장>, 문학과지성사)

그는 장난기와 농담이 언제나 독립군과 더불어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경우에도 장난기는 우리를 떠나지 않았고, 아무리 위급한 고비에도 재치 있는 농담은 역시 오갔다”고 말합니다.

노전사의 회고에서 묻어나는 여유만은 아닙니다. 자전적인 그의 글을 읽으면 장난기와 농담이 우국충정 못지않은 큰 힘이 됐음을 이내 수긍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평론가 벨린스키는 “유머는 오직 심오하고 발달된 정신을 가진 인간이나 민족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장난기와 농담이 있었기에 독립운동이란 큰일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선을 앞둔 우리 정치판에는 농담이 없습니다. 사생결단의 쌈박질만 있습니다. 이기면 장땡이라는 집권지상주의가 판을 칩니다. ‘누굴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라는 물음은 쏙 들어가버리고, 물어야 할 언론도 묻지 않습니다. 종래에는 “하늘이 두쪽이 나더라도 이겨야 한다”는 괴담이 배회합니다.

이쯤 되면 선거가 스트레스입니다. 독립운동만큼 대단한 일도 아닐진댄 마타도어, 폭로전으로 밤낮 우국지심에 잠기도록 만듭니다. 심오하고 발달된 정신을 가진 인간이 그쪽에 부족하거나 없는 탓인가 봅니다.


이에 비하면 북한응원단은 유쾌한 장난입니다. 200명이 넘는 젊은 여성이 부채춤, 딱딱이응원, 인형춤 등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해 아시아경기대회의 가장 인기 있는 팀이 됐습니다. 부산 앞바다를 출렁거리게 함으로써 경국지색(傾國之色)은 아니더라도 경부지색(傾釜之色)은 족히 된 듯합니다.

고운 여성들을 보낸 것을 두고 혹자는 ‘아름다운 것은 선하다’는 것에 홀려서는 안 된다, 이산가족·탈북자·납북자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다만 북한응원단이 궁극적으로 이런 문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면, 미녀응원단은 한 민족이기에 가능한 유쾌한 장난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설적으로 분단이란 긴장과 비극이 있기에 가능한 농담입니다. 유쾌한 농담의 짝은 파안대소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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