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실패의 사례는 아랑곳없이 우리나라 정부는, ‘이왕 뽑은 칼, 남의 사돈이야 가거나 말거나’, 망산업의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오로지 칼을 쥔 자들의 오만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영국에 유학하던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현장조사를 위해 무시로 런던을 들락거려야만 한 필자가 겪은 애로 가운데 하나는 런던에서 약속시간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기차가 제시간에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런던에서 되돌아올 때도 도착역에 와서야 집사람에게 마중나오라고 전화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게다가 1시간20분 걸리는 거리의 요금은 왕복 6만원 정도.
지난해 지방으로 강의를 나간 필자는 역시 기차를 이용했다. 오후 2시20분에 시작하는 강의시간에 맞춰 탄 기차는 한번도 어김없이 두 시간을 달려 오후 2시4분이면 어김없이 역 구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요금은 왕복 9600원(무궁화호).
철도 사고국의 오명 영국에서 철도가 운송과 선로 부문으로 나뉘어 민영화된 것은 1996년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시간과 요금, 그리고 서비스 질에 대한 시민의 불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철도 모국이라는 영광은 철도 사고국이라는 오명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인명 사고만 하더라도 1999년, 런던 근교의 패딩턴에서 열차 충돌로 31명이 사망한 것을 비롯해 다섯건이나 일어났다. 급기야 민영화 6년 만인 지난해 10월, 토니 블레어 총리는 “철도의 민영화는 실패했다”고 선언하고야 말았다. 민영화에 우호적인 <이코노미스트>조차 레일트랙(Railtrack: 선로시설 담당회사)이 아니라 ‘실패한 트랙’(Failtrack)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오죽하면 민영화 당시 정권을 담당한 보수당조차 국민에게 사과를 했을까. 민영화 문제는 철도에 그치지 않았다. 1990년 세계 최초로 민영화의 물꼬를 트며 각국에 민영화의 모범답안을 제시한 전력 역시 골칫거리임에는 다를 바가 없었다. 영국은 최근 소비전력의 5분의 1을 생산하는 영국 에너지(British Energy)에 대해 620만파운드(약 12조원)에 이르는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음으로써 민영화 신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에너지 빈곤인구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가계소득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소비하는 인구를 가리키는 에너지 빈곤인구가 전체 가계의 16%(400만 가구)에 이를 뿐 아니라 지난 2000년에는 에너지 빈곤으로 얼어죽은 사람의 수만도 3만명이 넘는다는 영국 정부의 통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다. 이러한 민영화 실패의 사례는 아랑곳없이 우리나라 정부는, ‘이왕 뽑은 칼, 남의 사돈이야 가거나 말거나’, 망(network)산업의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남동발전의 매각이 내년 1월을 목표로 급물살을 타는가 하면, 정부는 국회에 계류 중인 철도와 가스공사의 민영화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러한 추진력에는 지난 봄 민영화를 반대해 연대파업을 일으킨 철도·가스 및 발전노조의 파업이나 이로 인해 촉발된 사회적 갈등도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국정지표는 온 데 간 데 없고, 오로지 칼을 쥔 자들의 오만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관련 노동조합들은 지난 2월의 연대파업에 이어 제2차 연대파업을 선언하려 한다. 모두 제 갈 길을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만이 넘쳐날 뿐이다. 뒷날 대통령의 사과를 막는 길 두말할 나위 없이 망산업을 구조개편할 때는 각 산업의 자연독점적 성격, 실질경쟁의 가능 여부, 시장의 규모와 수요의 증가 속도, 그리고 국부의 유출 여부 등 산업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 더욱 중요하게는 그것이 필수 공익서비스인 만큼 국민의 생활에 미치는 효과와 이해 당사자의 반발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민영화는 설혹 그것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사전적으로 사회적인 합의를 구하는 동시에 충분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민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한 강력한 경영개혁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민영화의 실패를 ‘민영화된 기업의 실패’로 치부하기에는 그것이 국민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실패하면 결국은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뭉칫돈으로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것이 망산업의 특징이기도 하다. 망산업의 민영화는 최근 레일트랙이 공적 소유의 비영리법인인 네트워크 레일(Network Rail)로 넘어가고, 영국 전기에 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된 것을 교훈삼아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하는 동시에 사회적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소유지배체제를 연구한 다음 이뤄져도 늦지 않다. 그것만이 민영화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민영화는 실패했다’는 뒷날 대통령의 선언을 막는 길이다.

사진/ 박태주ㅣ산업연구원 연구위원·노사관계학.
철도 사고국의 오명 영국에서 철도가 운송과 선로 부문으로 나뉘어 민영화된 것은 1996년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시간과 요금, 그리고 서비스 질에 대한 시민의 불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철도 모국이라는 영광은 철도 사고국이라는 오명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인명 사고만 하더라도 1999년, 런던 근교의 패딩턴에서 열차 충돌로 31명이 사망한 것을 비롯해 다섯건이나 일어났다. 급기야 민영화 6년 만인 지난해 10월, 토니 블레어 총리는 “철도의 민영화는 실패했다”고 선언하고야 말았다. 민영화에 우호적인 <이코노미스트>조차 레일트랙(Railtrack: 선로시설 담당회사)이 아니라 ‘실패한 트랙’(Failtrack)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오죽하면 민영화 당시 정권을 담당한 보수당조차 국민에게 사과를 했을까. 민영화 문제는 철도에 그치지 않았다. 1990년 세계 최초로 민영화의 물꼬를 트며 각국에 민영화의 모범답안을 제시한 전력 역시 골칫거리임에는 다를 바가 없었다. 영국은 최근 소비전력의 5분의 1을 생산하는 영국 에너지(British Energy)에 대해 620만파운드(약 12조원)에 이르는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음으로써 민영화 신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에너지 빈곤인구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가계소득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소비하는 인구를 가리키는 에너지 빈곤인구가 전체 가계의 16%(400만 가구)에 이를 뿐 아니라 지난 2000년에는 에너지 빈곤으로 얼어죽은 사람의 수만도 3만명이 넘는다는 영국 정부의 통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다. 이러한 민영화 실패의 사례는 아랑곳없이 우리나라 정부는, ‘이왕 뽑은 칼, 남의 사돈이야 가거나 말거나’, 망(network)산업의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남동발전의 매각이 내년 1월을 목표로 급물살을 타는가 하면, 정부는 국회에 계류 중인 철도와 가스공사의 민영화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러한 추진력에는 지난 봄 민영화를 반대해 연대파업을 일으킨 철도·가스 및 발전노조의 파업이나 이로 인해 촉발된 사회적 갈등도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국정지표는 온 데 간 데 없고, 오로지 칼을 쥔 자들의 오만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관련 노동조합들은 지난 2월의 연대파업에 이어 제2차 연대파업을 선언하려 한다. 모두 제 갈 길을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만이 넘쳐날 뿐이다. 뒷날 대통령의 사과를 막는 길 두말할 나위 없이 망산업을 구조개편할 때는 각 산업의 자연독점적 성격, 실질경쟁의 가능 여부, 시장의 규모와 수요의 증가 속도, 그리고 국부의 유출 여부 등 산업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 더욱 중요하게는 그것이 필수 공익서비스인 만큼 국민의 생활에 미치는 효과와 이해 당사자의 반발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민영화는 설혹 그것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사전적으로 사회적인 합의를 구하는 동시에 충분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민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한 강력한 경영개혁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민영화의 실패를 ‘민영화된 기업의 실패’로 치부하기에는 그것이 국민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실패하면 결국은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뭉칫돈으로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것이 망산업의 특징이기도 하다. 망산업의 민영화는 최근 레일트랙이 공적 소유의 비영리법인인 네트워크 레일(Network Rail)로 넘어가고, 영국 전기에 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된 것을 교훈삼아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하는 동시에 사회적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소유지배체제를 연구한 다음 이뤄져도 늦지 않다. 그것만이 민영화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민영화는 실패했다’는 뒷날 대통령의 선언을 막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