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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오, 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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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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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간신문 기사가 내 유전자 속에서 잠자고 있던 대륙에 대한 향수를 깨워 일으킨 모양이다. 그러니까, 걸어서 또는 기차를 타고 또는 자동차를 몰고 국경을 넘어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이지? 그것도 우리 당대에.

사진/ 조선희ㅣ소설가. (김종수 기자)

체 게바라는 의대생 시절 친구와 둘이서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 대륙을 누빈다. 아르헨티나를 떠난 그들은 국경을 넘어 칠레에도 가고 페루에도 가고 볼리비아에도 간다. 페루에서는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고 칠레에서는 무도회에 초대받기도 하며 콜롬비아에서는 축구선수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거의 매일 저녁 동네 사람들의 초대를 받는데 주인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 밤늦게까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느라 늘 수면부족에 시달릴 정도다. 남미에선 국경이 별로 의미 없어 보인다. 언어도 같고(브라질을 빼고는) 혈통도 비슷한데다 문화도 비슷해서 모두들 축구를 좋아하고 탱고를 춘다. 식민지배의 역사도 공유하고 있다. 남미를 아예 한나라로 통째로 묶어버리려 했던 시몬 볼리바르 시대 사람들의 생각도 알 만하다.

섬나라에 갇혀 지낸 세월

그런 맥락에서 보면, 게바라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페루 여자와 결혼하고 멕시코에서 혁명운동을 하고 쿠바 정부의 각료가 되고 볼리비아에서 죽은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그런 대륙에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일까 생각해볼 때가 있다. 방학 때 국경을 넘어 오토바이 여행을 하고, 연휴 때 가족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이웃 나라에 다녀온다면. 개인 차원에선 정서적 스펙트럼이 확 넓어질 것 같고, 사회 전체도 훨씬 너그럽고 탄력 있어질 것 같다.

우리는 사실상 섬나라에 살고 있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 해안에 돌출한 반도에서 그나마 끄트머리 반토막이 우리나라다. 북쪽으로는 휴전선을 이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하고 살벌한 국경이다. 이 국경지대의 너비와 살벌함에 비하면 베를린 장벽이란, 조심해서 타넘지 않으면 다칠 수 있는 제법 높은 담벼락일 뿐이다.

사람들이 흔히 일본인에 대해 ‘섬나라 근성’ 어쩌구 할 때 나는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기분이다. 좁은 땅에 갇혀 있으니 소견이 좁고 이기적이고 공격적이라는 게 우리가 섬나라 민족성으로 간주하고 싶어하는 특징이라면, 그게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 모른다. 50년은 세대가 한두번쯤 물갈이하는 시간이고, 섬나라 근성으로 거듭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나 같은 전후세대는 처음부터 섬에서 태어났고 섬에서 살아왔다. 87년인가에 외국여행이 자유화되었으니 우리는 일종의 쇄국정책으로 봉쇄된 섬에서 성장기를 보낸 셈이다.

나는 김산 같은 식민시대 지식인들이 압록강을 건너가 중국 공산당과 함께 대장정을 한 이야기나 <격정시대>를 쓴 소설가 김학철 같은 이가 황포군관학교를 다니고 팔로군에 들어가 태항산에서 항일투쟁을 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꼈던 기억이 있다. 중국인민해방군의 일원으로서 일본 제국주의 군대와 싸우고 중국 국민당 군대와 싸워서 중국 인민의 해방을 돕는 게 조선의 해방을 가져오는 길이라고 믿은 것이 옳았는지 어떤지 여부를 떠나, 일단 그들의 초국적(超國的) 행동반경이 감탄을 자아냈다. 그들이 모두 체 게바라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우리 할아버지 세대 위쪽의 공기였는지 모른다. 섬나라에 태어나서 자란 우리 세대가 어떤 엑조티시즘의 감상마저 가지고 바라보는 그것이, 우리의 유전자가 희미하게 기억하는 우리 정서의 과거형인지도 모른다.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원효나 의상·혜초·원광·자장 같은 신라시대 고승들 얘기를 보면 중국을 거쳐 멀리는 인도 서역까지 한 바퀴 돌아오는 게 수행코스였다. 그야말로 걸어서 아시아 한 바퀴다. 이들은 간혹 중국땅에 머무는 동안 크게 명성을 떨쳐 왕의 극진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에겐 대륙에 대한 향수가 있는지 모른다. 그건 변방의 작은 나라에 앉아서 중원을 바라보고 중원을 사모하던 근대 이전 지식인의 정신분열에 뿌리가 닿아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중국 내의 수많은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로 편입되지 않고 한국이라는 국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사대교린이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의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부터 문화적 자력이 맹위를 떨쳐오는 포스트 식민시대의 세계에서야 그런 역사적 자의식이라는 것도 시효 지난 얘기다.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를 잇기 위해 비무장지대에서 발파작업을 했다는 조간신문 기사가 아마도 내 유전자 속에서 잠자고 있던 대륙에 대한 향수를 깨워 일으킨 모양이다. 나는 아침 준비를 하다 말고 공연히 부스스 기지개를 켰다. 그러니까, 걸어서 또는 기차를 타고 또는 자동차를 몰고 국경을 넘어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이지? 그것도 우리 당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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