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 글로리아가 왔다
등록 : 2002-10-02 00:00 수정 :
70대를 앞두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여전히 아름다움과 열정을 과시하는 미국 현대 여성운동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68)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기자협회 초청으로 9월27일 입국한 그는 제주 서귀포 칼호텔에서 강연회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50cm 정도 높이의 연단에 오른 그는 “연단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어쩐지 위계질서나 가부장제를 상기시킨다”는 말로 ‘여성운동과 언론’을 주제로 한 강연을 시작했다.
미국 최초의 여성주의 잡지 <미즈> 창간자인 그는 자신이 치른 언론과의 싸움을 열거한 뒤, “기자이면서 여성주의자이면 두 눈을 뜨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 눈만 뜨고 있는 것”이라며 성평등한 시각에서 기사를 작성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이날 한국에서 벌어진 최근 논란에 대해 논평을 하기도 했다. 여성운동이 부르주아 운동으로 비판받는 현실에 대해 그는 “미 공화당은 ‘중산층 백인당’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러나 여성운동은 어느 운동보다 스펙트럼이 넓음에도 항상 그런 비판을 받아왔다”고 꼬집었다. 또 여성계 일부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두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인물인지 여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엘리자베스 돌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국 기지촌 안의 국제인신매매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그는 “한국 정부가 외국인 여성에게 예술·흥행 분야 취업비자를 인터뷰도 하지 않고 너무 쉽게 내주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열정의 비결’을 묻는 참석자들의 질문에 대해 “어떤 것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어떤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한 뒤, “가장 가난한 자들과 가장 약한 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생각해보고 기사를 쓸 것”을 강조했다.
미 플레이보이 클럽의 바니걸로 잠입해 클럽 여성들의 성희롱을 폭로하는 기사로 이름을 떨친 그는 60년대 흑인 시민권보장, 베트남전 반대, 빈민구호 활동 등을 이끌며 대표적인 소수자 인권운동가로 자리매김했다. 여성의 기혼 여부를 따지지 말고 ‘미즈’라는 호칭을 쓰자고 제안해 이를 대중적 용어로 만들었고, 결혼제도의 불평등성을 역설하다 지난 2000년 66살의 나이로 연하의 남성과 결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글·사진 김아리 기자/ 한겨레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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