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운동 벌이는 강남지역 학부모들… 입시교육 광풍 비껴나 ‘다른 교육’ 추구
서울 ‘강남’과 ‘교육’은 꽤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연상어다. 강남구와 서초구에 걸친 ‘강남 8학군’은 수많은 한국 학부모들에게 ‘꿈의 학군’으로 불릴 정도다. 높은 유명대 진학률을 자랑하는 이른바 명문고등학교가 집결해 있을뿐더러, 대치동을 중심으로 포진한 사설학원가는 국내 최고의 족집게 실력을 자랑한다. ‘교육=입시’라고 믿는 대다수 학부모들에게 강남에서라면 유명대 진학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건 굳건한 믿음이다.
반면 ‘강남’과 ‘시민운동’ 사이의 상관관계를 가늠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서초구와 강남구를 통틀어 지역 내 알려진 시민운동단체는 한 손의 손가락만으로도 충분히 꼽고 남을 정도다. 강북과 강남의 아파트값 차이만큼이나 그 거리는 멀어보인다. 요약하자면 강남≒교육≠운동쯤이 될 것이다.
3년 전 창립해 150여명 참여
사정이 이쯤 되면 강남에서 교육운동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해한 난제처럼 보인다. 8학군에 진입한 이들은 대개 기존 입시교육의 기득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들에게 교육운동은 어렵사리 취득한 기득권에 대한 위협일 뿐이다. 반대로 8학군에 진입하지 못한 이들이라면 강남 주민들의 교육운동은 자기들 더 잘되자고 벌이는 집단행동 아닐까 의혹의 눈길을 치켜뜨기 십상이다. 강남의 교육운동은 양쪽에서 모두 가망 없는 싸움처럼 보인다.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www.edu8.or.kr, 02-523-2659, 이하 모임)은 풀기 어렵고 가망 없어 보이는 과제와 씨름하는 이 지역에서 하나밖에 교육시민운동단체다. “우리 아이들이 바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역 시민이 함께 하는 모임”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김정명신(46) 공동대표는 “1999년 창립해 지금은 15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고 현황을 들려줬다.
지난 8월24일 이 모임이 장대환 당시 총리 지명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발표한 성명서는 모임의 지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장대환 지명자는 당시 두 자녀의 서울 강남 8학군 위장전입 문제로 궁지에 몰린 처지였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맹모삼천지교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모임의 성명은 이와 관련한 질타였다. 모임은 “장 지명자의 위장전입이 저잣거리, 장의사 집을 피해 서당 옆으로 세번 집을 옮겨 맹자를 위대한 학자로 키운 맹모의 교육열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정면 반박했다.
모임은 “그러기로 하면 강남 8학군으로 모여드는 가진 자들의 행렬은 모두 맹모의 교육열로 칭송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강남 아파트에 대한 비정상적인 투기와 집값의 폭등 모두 맹모의 교육열로 칭송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서울은 망국적 입시교육에 휘둘리는 이러한 잘못된 교육열 때문에 강남과 강북으로, 8학군과 비8학군으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분열되었다”고 한 뒤 “명백한 사회병리현상을 맹모의 올곧은 사랑으로 미화시키는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따졌다.
비강남적인 사고를 하는 이들 강남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모임 회원들의 주력은 중·고등 과정의 자녀들을 둔 40대들이다. 변호사·의사 등 전문직도 적지 않다. 어찌 보면 학력경쟁의 승리자이자 학벌사회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강남 8학군의 진입장벽까지 훌쩍 뛰어넘은 사람들이면서도, 강남을 중심으로 몰아치는 현행 입시교육의 광풍을 어느 누구보다 크게 우려한다.
공동구매 등 추진… 지역적 한계 많아
한의사 고은광순(47·서초구 잠원동)씨는 중2인 둘째아들이 반장으로 뽑히면서 말로만 듣던 대의원회에 참여했다. 많은 강남권 학교들은 공식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말고도 반장 부모들이 참여하는 대의원회를 두었다. 고은씨는 “알고 보니 반장 엄마들이 치맛바람의 주범이었다. 10만원씩 걷어 교사 회식비로 쓰고, 아이들에게 선행학습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학원 누가 족집게인가 하는 정보도 이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되고 있더라”고 강남 교육현장의 요지경 속을 들여다본 경험을 털어놓았다.
조영래(48·강남구 일원동·무역업)씨는 창원에서 살다 10여년 전에 아이들 교육을 생각해 서울로 올라온 경우다. 처음 경기 구리시에 살다 96년 강남으로 옮겼다. 그는 “막상 강남에서 살다 보니 강남 사람들이 모두 학벌사회·입시교육의 피해자임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대기업 임원인 한 친구는 500만∼600만원씩 과외비에 쏟아부으며 전속기사까지 딸려 아이들을 닦달한다. ‘기계적으로 포인트를 높이지 않으면 좋은 대학 보내기 어렵다’는 게 그 친구의 항변이다. 그런 불안과 편집증에 사로잡혀 살아야 하다니 얼마나 불행한가”라고 그는 되물었다.
그러나 모임의 진지한 문제제기는 자주 지역적 한계에 부닥치곤 한다. 모임은 창립 이래 △학부모, 교사, 학생, 시민의 바른 교육관 정립 △서초·강남구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여론수렴 및 정책 건의 △학생과 학부모 고충 상담 △학교운영위원회 활성화 등의 과제를 추진해왔다. 교복 공동구매를 통해 교복비 부담을 크게 낮췄고, 지역주민을 위한 과학캠프를 정례화해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앞으론 학교급식 개선과 학생 인권 등 학교 내 환경 개선 등의 문제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밤 10시로 규정된 학원 법정 운영시간 감시 등 사교육 열풍과 관련한 사업진행에선 번번이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지난해 1월부터 두달간 서초·강남지역 학원의 심야영업 실태를 직접 모니터해 새벽까지 학생들을 입시굴레에 묶어두는 현실을 지적했지만, 기대만큼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김정명신 모임 대표는 “갈수록 깊어가는 학벌사회의 교육불평등 문제를 적극적으로 짚어가겠지만 입시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선 외면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당연히 회원들은 주위로부터 “왜 좋은 대학 잘 갈 아이들을 뒷받침 안 하고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는 타박을 들어본 경험이 몇번씩 있다.
교육 불평등 해결 방안 적극 지지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진 않는다. 김정 대표는 “지금 교육구조에선 너나없이 어릴 때부터 비인간적 입시경쟁에 내몰릴 뿐이다. 강남 주민들도 얄팍한 기득권에 만족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사기극의 희생자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장 눈앞의 사교육 광풍에 휩쓸리다가도 ‘그게 정말 아이를 위하는 거느냐’는 진지한 물음엔 ‘내가 왜 그러나 몰라, 미쳤지’ 하고 대답하는 이들 또한 많다. 우리는 그런 성찰의 계기와 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모임은 8학군 주민 상당수가 반대하는 서울대 지역할당제도 교육 불평등 해결을 위한 한 방책이라며 적극적인 시행을 촉구했다. 고교등급제는 절대로 시행해선 안 된다고 못박은 바 있다. 모임이 꾸는 꿈은 일반적인 8학군의 꿈과는 빛깔이 달라 보였다. 그 꿈은 8학군만의 이기심이 아닌 가르침의 공공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직은 높은 외로움과 무관심의 벽을 넘어 모임은 한발 한발 그 꿈★을 향해 내디딜 모양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사진/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 김정명신 공동대표. (박승화 기자)

사진/ 사교육 광풍의 희생자는 누구인가.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 150여명의 회원들은 8학군 바꾸기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 강남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사교육 광풍에서 벗아나기 힘들다. 대치동의 학원생들이 학원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사진/ 시민모임 회원들은 현장을 누비며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입시 학원 심야영업 실태를 직접 모니터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