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정치인들의 주장에는 반드시 속내가 있다. 그들은 속내를 숨기고 가면의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그들은 내심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식한 너희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겠지”라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와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서슬 시퍼렇게 나섬에 따라 세계가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 뒤숭숭하다. 이런 상황에서 추석 명절을 맞았으니, 차례를 지내는 약소국가의 자손들 기분도 유쾌하지 못하지만, 조상님들도 민족의 앞날을 생각할 때 선뜻 제사상을 받기 민망스러울 것만 같다. 그래도 우리는 미국을 우방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공포에 떨지는 않는다. 그러나 북녘땅의 동포들은 처지가 다를 것이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속으로는 꽤나 겁먹고 있을 것이다. 북녘의 형제들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고 싶다.
이라크 침공의 이면
그런데, 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려 하는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테러를 지원한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라크가 보유한 대량의 살상무기를 좌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의혹만 가지고 남의 나라를 침공할 수 있는 것일까? 또 최대의 살상무기인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가 많은데, 그게 전쟁을 벌일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때문에 부시 대통령의 말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해설에 귀기울이게 된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까닭은 석유 송유관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또는 군수산업체의 돈벌이를 위해서라는 등의 원인분석이 난무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마도 미국 대통령의 공식적 발언 뒤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음모와 거대조직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는 모양이다.
정치학자 파이너(S. E. Finer)는, 겉으로는 민주주의로 위장하지만 실제로는 꽉 짜인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사회를 ‘가면 민주주의’(Fac(*꼬랑지 달린 불어의 c)ade Democracy)로 불렀다. 혹시 미국도 ‘가면 민주주의’의 사회는 아닌가? 한번 철저히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를 통치한다는 말인데, 대통령이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말을 한다면 그때는 이미 ‘국민의 뜻’이 아닌 ‘특정 세력의 뜻’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상태다. 이때의 민주주의는 늑대의 얼굴을 가리기 위한 가면일 뿐이다. 정치인들의 논리가 수학방정식보다 어렵고 웬만한 사람들은 쉽게 진의에 접근할 수도 없다면, 우리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추악한 실상을 캘 필요가 있다. 미국 대통령의 말만큼이나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정몽준 의원의 말이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이유가 애매모호하다. ‘국민통합’을 주장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재벌 2세로서 정 의원이 기업환경을 개선하겠다든지 사회보장 예산을 삭감해 경제발전에 투자하겠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과거 정치권에서 국민통합을 기치로 양심적인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버리면서까지 ‘국민통합추진위원회’를 결성해서 분투했을 때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이 느닷없이 국민통합을 들고나오니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정 의원의 주장만큼이나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이 민주당 정치개혁특위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면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국회와 사법부에 권한을 분산시켜야 할 텐데, 개헌안에서는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자고 한다. 또 원내 소수당인 민주당의 개헌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전무함에도 무슨 의도에서 내놓았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구구한 해석이 잇따른다. 정치인의 가면, 언론의 가면 도저히 그 자체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정치인들의 주장에는 반드시 속내가 있다. 그들은 속내를 숨기고 가면의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그들은 내심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식한 너희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겠지”라고.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것은 비단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한국 언론이야말로 그 선두주자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매우 민주적인 것처럼 보인다. 모든 사안에 대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몇몇 전문가를 내세워 국민에게 대세에 따를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국민이 주인으로서 진정으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어놓는다.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에서 국가 정책과 관련해서 어떤 공론도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집값·땅값 상승으로 공돈을 버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집 없는 서민은 해마다 수백만원, 심지어 수천만원씩 전셋값을 올려야만 한다. 그래도 전에는 줄기차게 공약이라도 발표했는데, 지금의 후보들에게는 그것조차 없다. 언론이 경마 저널리즘에 빠져 여론조사만을 되풀이하고, 정치권이 끝없는 도덕성 공방 속에서 이전투구를 일삼는 동안, 민주정권이 두번이나 들어섰음에도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구조는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한국의 언론들은 여론조사만 일삼으려는지.

사진/ 김대영ㅣ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위원.(김종수 기자)
정치학자 파이너(S. E. Finer)는, 겉으로는 민주주의로 위장하지만 실제로는 꽉 짜인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사회를 ‘가면 민주주의’(Fac(*꼬랑지 달린 불어의 c)ade Democracy)로 불렀다. 혹시 미국도 ‘가면 민주주의’의 사회는 아닌가? 한번 철저히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를 통치한다는 말인데, 대통령이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말을 한다면 그때는 이미 ‘국민의 뜻’이 아닌 ‘특정 세력의 뜻’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상태다. 이때의 민주주의는 늑대의 얼굴을 가리기 위한 가면일 뿐이다. 정치인들의 논리가 수학방정식보다 어렵고 웬만한 사람들은 쉽게 진의에 접근할 수도 없다면, 우리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추악한 실상을 캘 필요가 있다. 미국 대통령의 말만큼이나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정몽준 의원의 말이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이유가 애매모호하다. ‘국민통합’을 주장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재벌 2세로서 정 의원이 기업환경을 개선하겠다든지 사회보장 예산을 삭감해 경제발전에 투자하겠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과거 정치권에서 국민통합을 기치로 양심적인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버리면서까지 ‘국민통합추진위원회’를 결성해서 분투했을 때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이 느닷없이 국민통합을 들고나오니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정 의원의 주장만큼이나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이 민주당 정치개혁특위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면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국회와 사법부에 권한을 분산시켜야 할 텐데, 개헌안에서는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자고 한다. 또 원내 소수당인 민주당의 개헌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전무함에도 무슨 의도에서 내놓았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구구한 해석이 잇따른다. 정치인의 가면, 언론의 가면 도저히 그 자체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정치인들의 주장에는 반드시 속내가 있다. 그들은 속내를 숨기고 가면의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그들은 내심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식한 너희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겠지”라고.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것은 비단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한국 언론이야말로 그 선두주자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매우 민주적인 것처럼 보인다. 모든 사안에 대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몇몇 전문가를 내세워 국민에게 대세에 따를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국민이 주인으로서 진정으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어놓는다.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에서 국가 정책과 관련해서 어떤 공론도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집값·땅값 상승으로 공돈을 버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집 없는 서민은 해마다 수백만원, 심지어 수천만원씩 전셋값을 올려야만 한다. 그래도 전에는 줄기차게 공약이라도 발표했는데, 지금의 후보들에게는 그것조차 없다. 언론이 경마 저널리즘에 빠져 여론조사만을 되풀이하고, 정치권이 끝없는 도덕성 공방 속에서 이전투구를 일삼는 동안, 민주정권이 두번이나 들어섰음에도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구조는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한국의 언론들은 여론조사만 일삼으려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