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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부유세와 보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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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9-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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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윤운식 기자)
주5일제 전면실시, 주한미군 철수, 주택·의료·교육 단계적 무상공급….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가 밝힌 대선 공약입니다. 민노당의 정책은 진보적이어서 기성 정당의 공약과 뚜렷이 대비됩니다.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부유세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입니다. 부유세는 말 그대로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리는 제도입니다. 재산이 일정액 이상인 사람에게 세금을 물려, 빈부격차를 줄이고 사회복지를 확충하는 것입니다. 이 제도는 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 등 유럽 복지국가들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권 후보는 토지나 예금, 주식, 골프회원권 등을 합쳐 10억원이 넘는 재산이 있는 사람에게 부유세를 물리자고 합니다. 납세자료 등을 근거로 따져볼 때 현재 과세대상은 대략 2만명에서 5만명 사이로, 재산이 많을수록 세율을 높이는 누진제를 적용하면 11조원을 걷을 수 있다고 합니다.

부유세의 기술적인 문제, 곧 비상장주식이나 골동품 같은 재산가액의 평가가 어렵지 않느냐는 지적에는, 그것은 부유세뿐 아니라 모든 세금이 마찬가지라고 설명합니다. 또 부유세를 물리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지 않겠느냐는 물음에는, 해외로 가져갈 때의 세금을 부유세보다 더 물리면 된다고 합니다.

물론 부유세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문제가 아니라, 중대한 세목의 신설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사회적 합의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절대다수의 공감을 얻어 합의를 한다 해도 국회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이런 얘기에 동조하는 서민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외환위기 이후 빈부격차가 급속히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도시가구 소득의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격차가 지난 96년 3.3배였으나, 지난해에는 5.4배로 두배 가까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4∼8%의 권 후보 지지층은 부유세를 반긴다고 봐야겠지요.


서울 강남을 비롯한 수도권의 집값이 마구 오르자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뒷북치듯 내놓은 대책에 재산세 항목이 빠져 많은 비판이 나옵니다. 핵심을 건드리지 않아 당국이 여전히 합법적 투기를 보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입니다. 게다가 보유세인 재산세를 현실에 맞게 부과하라는 요구에 정책결정자들이 ‘조세저항’을 들먹여 그야말로 저항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원칙을 지키라는데 엉뚱한 방어논리를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조세저항은 보유세가 아니라 부유세가 논란이 될 때 입에 올릴 수 있는 말입니다.

어쩌면 민심은 보유세 강화 정도가 아니라 부유세 신설에 가 있다고 해도, 결코 틀린 진단은 아닐 것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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