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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누구 좋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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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9-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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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씨는 소송을 치르며 ‘건강해야 한다’는 오기가 발동해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땡볕 아래 몸을 밀착시킨 양떼에게 아이가 물었다. “너희들은 덥지도 않니?” 양떼가 대답했다. “누구 좋으라고?”

사진/ 홍세화ㅣ<한겨레> 기획위원. (한겨레 강창광 기자)

일부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을 ‘홍위병’, ‘친북세력’이라고 규정한 소설가 이문열씨가 명예훼손 소송 제1라운드에서 승리한 뒤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일부 시민단체 등이 펼치는 다양한 안티운동은 저급한 방식의 ‘대중주의’를 반영하는 것”이고, “안티운동이란 네거티브 문화”이며, “대중주의와 반엘리트주의가 만연한 시대에는… 긍정적 평가보다는 무조건적인 폄훼가 인기를 끈다”라고…. 그에 따르면, ‘홍위병’, ‘친북세력’ 규정은 ‘저급한 방식의 대중주의를 반영한 것’이 아니고 ‘네거티브 문화’의 산물도 아니다. 다만 엘리트주의를 반영한 것이다.

반공시대 엘리트주의자의 안티문화

그에게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랫동안 나라의 국시가 돼온 ‘반공’ 이데올로기가 일반 대중들뿐 아니라 스스로 엘리트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에게도 철저히 내면화되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반공’이 자체로 ‘안티운동’임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홍위병’, ‘친북세력’ 규정이- ‘빨갱이’보다 얼마나 ‘엘리트주의자’다운 표현인가- 반공주의 ‘네거티브 문화’의 산물임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반공주의가 사회 구성원들을 사상적 반신불수로 만들어 ‘저급한 방식의 대중주의’가 판치게 한 점도 깨닫지 못한다.


이씨는 이번 소송을 치르며 ‘건강해야 한다’는 오기가 발동해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담배 생각이 날 때면 ‘내 건강 해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라는 생각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어느 여름날 뜨거운 땡볕 아래 서로 몸과 몸을 밀착시킨 양떼에게 답답한 아이가 물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덥지도 않니, 왜 그렇게 붙어 있니?” 양떼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구 좋으라고?” 어느 프랑스 사회학자에 의하면, 현대의 기호문화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그것을 가름하는 가장 괄목한 차이는 담배뿐이라는데, 담배를 끊기 위해 양들의 ‘누구 좋으라고?’보다 적대적인 ‘안티문화’를 끌어와야 하는 반공시대 엘리트주의자가 안쓰럽지 않은가.

나와 다른 남을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타성은 반공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제와 분단시대를 거치면서, 특히 군사통치의 탄압 아래서 우리 자신도 나와 남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관계로만 설정하는 타성을 갖게 되었다. 홍위병·친북세력 규정처럼 남을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데도 아주 익숙하다. 예컨대 ‘개량주의자’라는 낙인은 운동권에서 퇴출을 요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판적 지지’는 본디의 긍정적 의미를 상실하고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 지 오래다.

그런데 남에게는 ‘개량주의자’니 ‘비판적 지지’니 아주 쉽고 간단히 규정하면서 자신을 규정하는 데는 아주 소홀하다. 남을 쉽고 간단하게 규정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은 규정하지 않는다. 자신을 규정하지 않거나 못하면서 남을 쉽게 규정하는 모순적인 태도는 어디서 온 것일까? 아마도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풀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라

우리는 주어진 것 가운데서 선택했을 뿐 주관적으로 답을 찾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남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또 사지선다형 문제는 사물과 현상을 하나의 틀 속에 가둔다. 사물과 현상을 정한 틀 속에 가두는 타성이 사람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함부로 규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사람을 일컬어 ‘소우주’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규정하지 않으면서 남을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타성은 ‘참여하지 않으면서 비판·평가를 즐기는 타성’과 만난다. 스스로 정당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정치현상을 비난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젊은 층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들의 탈정치를 비판하며 탈정치에 속한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정당 가입은 본디 ‘비판적 지지’ 형태를 띠는 것인데(정당의 정강정책을 100% 동의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를 백안시한다고 할 때 탈정치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최근 절필을 선언한 시사평론가 유시민씨 등이 노무현 중심의 개혁신당 가입을 호소했다. 민주노동당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개혁신당에 많은 참여가 있기를 기대하는 까닭은 앞으로 나와 다른 남과의 관계를 ‘부정관계’로만 설정하지 않고 서로 상대방을 용인하는 ‘경쟁관계’ 설정을 바라기 때문이다. 공익을 목표로 둔 선의의 경쟁자끼리 서로 용인하고 북돋워야 한다. ‘누구 좋으라고?’ 하고 묻는 양의 어리석음을 피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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