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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하늘 길잡이로 대를 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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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9-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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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관제사는 여자도 적성만 맞으면 남자보다 더 뛰어나게 할 수 있는 직업이다. 넌 차분하고 대담하니까 꼭 성공할거다.” 24년간 항공교통 관제사로 일하며 김포공항 관제탑장 등을 지낸 뒤 현재는 항공기술훈련원 교수직을 맡고 있는 구연우(53)씨가 장녀 은정(25)씨에게 이런 격려를 시작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애초에는 딸에게까지 관제사 일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24시간 대기근무인데다,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눈도 좋아야 하고, 체력도 있어야 한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항공기를 교통정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말렸다. 그러나 구은정씨의 각오는 대단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 직장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늘의 교통경찰’인 관제사가 되는 건 꽤 오랜 꿈이었죠.”

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단국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공항공단 소속 항공기술훈련원 관제사 양성과정을 수료했다. 공무원 8급 신분인 관제사는 원래 한국항공대 출신 혹은 군 관제 실무 경험 9개월 이상자만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으나, 올해부터 항공기술훈련원 교육 이수자도 자격증 취득 기회가 주어졌다. 구연우씨의 말을 빌리면 “제가 원하고, 제 엄마가 부추겨서” 시작한 딸의 직업잇기는 이 때문에 성과를 보게 되었다. 관제사 자격증명시험에 이어 지난달 건설교통부 관제사 임용시험에 구은정씨가 연달아 합격한 것이다. 관제사는 지금까지 여성비율이 10%에 그칠 정도로 여성진출이 활발하지 못한 직업이었으나, 지난해 10월부터 여성이 신규임용자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여성들의 참여도가 높은 직종이 되었다.

이제는 딸의 선택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구연우씨는 그러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잊지 않는다.

“한 공항에 발령받으면 주변 지리나 환경에 익숙해지기까지 2∼3년은 걸리는데 걱정입니다. 그게 지나야 한 사람 몫의 관제사가 된다고 할 수 있죠. 특히 관제사는 관제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배들로부터 겸손하게 배우라고 가르칩니다.”

구은정씨는 10월2일에 정식 발령을 받는다. 어느 공항으로 가든지, 같은 하늘을 관제해온 아버지의 가르침을 그는 잊지 않을 것이다.

이민아 기자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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