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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권력정치의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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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9-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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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비리 수사진을 갈아치우라고 서슬을 세운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옆동네 문화방송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보도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민영화하자던 방송사를 국정감사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합니다.

한나라당은 말합니다.

“검찰의 흘리기 정보와 김대업의 일방적 주장에 의존해 보도하는 등 방송이 ‘병풍’을 주도하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피의자도 아닌 이정연씨 얼굴을 자료화면이나 어깨걸이는 물론 본문에서 지속적으로 사용으로써 은연중에 범법자 취급하는가 하면, 4주 연속해서 정연씨 이름 앞에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앵커와 기자 모두 반복해서 사용해 이회창 후보 흠집내기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앞으로 이러한 표현은 자제해주기 바란다.”

이에 문화방송은 구체적인 보도내용을 들며 불공정보도를 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반박합니다. 그리고 지난번 대통령 아들 비리 때와 견주면, 병역비리 보도는 국민 관심도보다 오히려 홀대받은 편이라고 합니다.

문화방송 기자들은 무엇보다도 세세손손 군림하는 사주가 있는 언론사와 달리, 지침이나 일방적 지시가 통할 수 없는 보도국의 시스템을 한나라당이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받아칩니다.

한나라당의 논리와 요구는 사실 ‘2002년판 신보도지침’이라고 하기도 뭣할 정도로 투박합니다. 취재와 보도라는 언론사 고유업무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고, 이정연씨에 대해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라는 관심의 본질을 괄호 속에 넣으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거친 행동으로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은, 한나라당의 권력정치가 위험수위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의회권력을 장악한 한나라당은 권력의 감시장치요 민주주의의 기반인 법과 언론을 흔들고 있습니다. 문화방송 관계자의 지적대로 한나라당 스스로가 견제와 비판이 없는 권력정당화됐기 때문입니다.


소설 <동물농장> <1984년>에서 전체주의를 묘사함으로써 권력정치를 경고한 조지 오웰은, 난처한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 곧 권력정치라고 했습니다. 정치적 이해나 조직의 이해 때문에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무엇이든 틀어막고 덮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오웰은 권력정치에 빠진 정치인들은 본질적으로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 “당의 대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정당하다”는 논리 속에서 차별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권력정치 안에서는 법이 없기 때문에 어떤 범죄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무솔리니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인가”라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태풍은 물러갔지만, ‘권력정치의 태풍’이 여의도 상공에 짙게 드리웠습니다. 진로에 따라 폐해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우려되는 태풍의 눈입니다. 예방적 제어가 필요합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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