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을 공격하는 ‘콜의 오른팔’
등록 : 2000-09-27 00:00 수정 :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말은 독일정치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듯하다.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오른팔로 기민련 총재를 지낸 볼프강 쇼이블레가 최근 콜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책을 펴냈다.
<생의 한창 때>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 쇼이블레는 콜 전 총리를 당의 비자금 스캔들 와중에 다른 사람들을 무책임하게 비난하고 정치적 타격을 입히는 ‘음흉하고 유해한 괴물’이라고 혹평했다. 쇼이블레는 콜을 만나 비자금 제공자의 이름을 밝혀 스캔들을 해결하라고 요구했지만 콜은 이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총재직에서 쫓아내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했다. 쇼이블레가 콜에게 얼마나 이를 갈고 있는지는 콜의 최대 업적인 독일 통일 기념식이 열리는 이틀 뒤인 10월5일 이 책을 시판할 예정인 데서도 드러난다.
콜은 총리 재직시 군수업체 티센으로부터 200만마르크(10억4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올 1월 기민련 명예총재직에서 내쫓기다시피 물러나고 검찰의 수사를 받는 수모를 당했다. 쇼이블레 역시 티센의 무기중개상 카를 하인츠 슈라이버로부터 10만마르크(5200만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을 시인해 올 2월 기민련 총재직을 내놓아야 했다. 그러나 쇼이블레는 이 사건 이전만 하더라도 콜이 가장 신임하는 ‘오른팔’이었다.
쇼이블레가 정치인으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4년 당시 콜 총리에 의해 총리실 장관으로 발탁되면서부터다. 그는 콜의 신임을 듬뿍 받았으며 89년 내무장관으로 영전해 독일 통일조약을 매듭짓는 등 통일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콜 전 총리는 98년 총선패배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자 그가 25년간이나 이끌었던 기민련의 총재직을 쇼이블레에게 넘겼다. 쇼이블레가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콜의 후견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쇼이블레는 콜과 기민련과의 관계를 끊어 당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했다. 쇼이블레는 콜에게 비자금 제공자의 이름을 밝히라고 압박하면서 결국 그를 기민련 명예총재직에서 내몰았고 둘은 견원지간이 되고 말았다.
김태경 기자/ 한겨레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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