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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코끼리 검색대로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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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8-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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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정용 기자)
밥을 축내는 흰 코끼리에 사람들은 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코끼리를 냉장고에 한번 넣어보자는 난센스 퀴즈가 나오면서 코끼리는 단번에 주목을 받습니다. 덩치 큰 코끼리를 어떻게 냉장고에 넣을 것인가?

흰 코끼리처럼 몸집과 쓸모가 너무 비례하지 않아 우리가 실사구시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가끔 혼란을 주는 자리가 국무총리입니다. 총리를 18명이나 모셨다는 어느 인사는 “법적으로 상당한 권능을 부여받고 있음에도 대통령의 바람막이나 정치적 희생양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국무총리제를 유지하기 위해 그 많은 예산과 인원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증언합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듯한 총리 자리가 8월 한달 뜨거운 관심을 모았습니다. 인사청문회 덕분입니다. ‘코끼리 검색대로 보내기’입니다. 앞서 문제의 간명한 답은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문을 닫는다”는 것이지만, 이번 일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첫 번째 코끼리는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과일 칼과 권총 때문입니다. 어쩌면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몸에 뭐가 붙어 있는 줄 몰랐다고 강변해 걸렸습니다. 두 번째는 도검과 장총을 차고 있습니다. 이 무기들은 오래돼 몸의 일부가 된 것들입니다. 수류탄도 있는 듯합니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두 번째의 심리상태입니다. 처음은 누구나 어렵고 당혹스럽습니다. 손톱깎이도 안 되는지, 권총 정도는 괜찮은지 짐작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이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상식으로는 첫 번째를 지켜본 두 번째는 검색대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멋있게)고사하는 것이 옳습니다. 첫 번째의 기준으로 도저히 통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믿고 검색대 앞에 선다고 했을까? 국가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거나, 저 높은 곳을 향한 욕구가 너무 컸거나 어쨌든 좋습니다. 문제는 앞선 코끼리가 비틀거리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걸어나온 속내입니다.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추를 해봅니다. 동업자인 언론, 특히 사주클럽 언론에서 살살 다뤄줄 것으로 여긴 듯합니다. 비토권을 쥔 정당의 보스 동생과의 친분도 믿은 듯합니다. 또 정치적 부담 등을 감안할 때 두번 부저를 울리지는 않을 것이란 정치적인 계산을 한 것 같습니다.

곧 검색대의 부저가 꺼지거나 검색기능이 약화되는 상황을 상정한 듯합니다. 놀라운 비상식이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특권의식입니다.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과 논란보다도, 검색대 통과를 자신한 베팅이 고개를 젓게 합니다.

어쨌거나 의전총리·대독총리는 청문회총리로 존폐의 기로를 딛고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사청문회 제도의 성과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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