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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비인간적 착취, 고용허가제로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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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9-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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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확대재생산되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 그들에게도 노동3권을

(사진/“우리도 인간이다. 우리에게도 자유를.”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쇠사슬을 목에 두르고절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몸도 안 좋고 해서 돌아가겠다고 하는 마당인데 한번만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9월20일, 경기도 성남시 한 교회 지하사무실에 차려진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만난 김해성(41) 목사는 전화선 저쪽에 있는 사람에게 연신 도와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쪽’은 성남지방노동사무소 근로감독관이다. 김 목사에게 도움을 청한 중국 노동자 백동옥(53)씨는 근로감독관으로부터 나올 대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숫자로만 봤을 땐 소수자가 아닌데…


한국 남자와 결혼한 딸의 초청으로 2년 전 중국 흑룡강성에서 한국에 온 그는 짧은 방문비자 기간이 끝난 뒤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불법체류자로 남은 것이다. 서울 근교의 영세 중소기업들을 전전하며 일하던 그는 지난 1년여 경기도 광주의 한 가구공장에서 일을 해왔다. 하지만 얼마 전 자신이 심장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됐고, 서둘러 중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동안 일한 몫을 달라고 사장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가구공장 사장은 밀린 임금 300여만원을 여태껏 주지 않고 있다. 백씨는 “가구공장이 불에 타버리는 바람에 돈이 없다면서 계속 안 주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공장에 가봤는데 불에 탄 흔적도 없고 멀쩡하게 그대로 있었어요”라며 안타깝게 긴 한숨만 내쉬었다.

“법적인 문제(불법체류자)를 떠나 근로감독관께서 한번 노동사무소로 백씨를 불러 이야기를 들어보고 꼭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도와달라고 거듭 부탁하는 김 목사의 말이 몇 차례 더 나온 뒤에야 저쪽에서 대답이 왔다. “그럼 일단 다음달 오전에 노동관서로 나와보라”는 것이었다.

백씨 같은 외국인노동자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또 하나의 소수자’다. 어찌보면, 숫자로만 놓고 봤을 때 이들은 소수자를 넘어서고 있기도 하다. 지난 7월 말 현재 국내 외국인력은 25만9천여명으로 국내 전체 임금노동자의 2% 가까이 차지한다. 그럼에도 이들 중 불법체류자 16만6천여명(64.1%)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소수자임에 틀림없다. 밀린 임금을 받거나 산업재해 보상을 요구해도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사업주의 협박 때문에 강제추방이 두려워 신고조차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불법체류중인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임금체불이나 구타, 성폭행 등 인권침해 문제는 산업연수생 제도가 실시된 지난 94년 이후 끊이지 않고 확대재생산돼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8월 현행 산업연수생제도를 없애는 대신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외국인근로자 고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될 이 법안은 외국인노동자에게 국내 노동자와 같은 ‘근로자’ 자격을 부여해 취업을 보장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고용허가를 받은 외국인노동자는 국내 노동자와 같은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임금채권보장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물론 노동3권도 함께 보장받는 등 외국인노동자 인권보호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되는 조처다.

중소기업중앙회, 고용허가제 강력 반대

고용허가 기간은 1년으로 하되 2회까지 연장이 가능토록 해, 외국인근로자는 최장 3년간 국내에서 합법적인 취업이 가능해진다. 노동부는 “국내 근로자들이 안가는 3D업종을 중심으로 허용할 것”이라며 “외국인력을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중소기업들이 지금처럼 불법취업자를 쓸 이유가 없어지는 만큼 인권침해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외국인 고용허가 규모는 국내 취업자의 1% 안팎에서 매년 결정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노동부 또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될 ‘외국인근로자 고용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고용허가제에 도입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즉각 반발하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중소기업의 고용비용 부담을 늘려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이라는 게 기협중앙회의 주장이다. 지난 97년에 있었던 외국인 고용허가제 논란이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당시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유린을 막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려던 정부는 중소기업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2년은 연수생신분으로 지낸 뒤 남은 1년은 취업을 허용하는 연수취업제로 방향을 수정해 올해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산업연수현장을 이탈한 뒤 불법체류자로 남아 취업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의 인권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정부가 고용허가제 도입을 재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외국산업연수업체협의회는 “외국인 고용허가제에 따라 현행 외국 산업연수생들을 정식 노동자로 전환할 경우 임금인상 효과가 40%에 달해 전체적으로 1조3천억원의 추가비용이 필요하다”며 “안 그래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체들이 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강력 반대하고 있다. 기협중앙회는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연수생 1인당 월 평균비용이 무려 48만8천원이나 늘어 영세업체의 무더기 도산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외국인노동자들이 국내노동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면 중소기업은 기본급 외에 연월차수당과 상여금, 퇴직금 등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부는 현재 산업연수생에게 주고 있는 숙식비를 주지 않아도 되는 점을 감안하면 연월차수당이나 퇴직금 등을 추가지급하더라도 실제로 업체의 부담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노동부 고용정책과는 “언어능력 등이 떨어지는 데서 오는 생산성 차이에 따라 국내 근로자와 임금 차등을 둘 수 있을 것이다. 또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 그동안 줘온 연수관리비나 식대 그리고 출국할 때 줬던 교통비를 안 줘도 된다”며 비용부담 증가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취업자 양산하게 하는 송출비리

(사진/“아무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성남시 외국인노동자의 집 지하창고에서 한국에서 숨진 중국 조선족 동포의 영정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김해성 목사)
중국, 인도네시아 등 14개 국가에서 온 산업연수생은 1만여개 중소업체에 8만여명으로, 이 중 5만여명은 아직 산업연수생으로 있고 나머지 3만여명은 연수현장을 이탈해 불법취업하고 있다. 이들의 월급수준은 평균 64만9천원으로 이는 국내 초임근로자 월급(94만9천원)의 70%정도다.

현행 산업기술연수생제도는 사실 3D업종 인력난 해소를 위해 편법으로 도입된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외국인노동자가 연수생으로 들어오면 2∼3일 교육시킨 뒤 곧바로 ‘근로자’로 취업시켜 쓰고 있다. 실제로는 노동자인데도 ‘연수생’으로 위장해 쓰다보니 불법체류자를 낳아 결국 인권문제를 불러온 것이다. 노동부는 “외국인노동자의 경우 합법적인 산업연수생이든 불법취업자든 3D업종의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일하면서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에 도움을 주고 있으면서도 일한 만큼의 대가나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로 바꾸는 것을 더이상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고용허가제에 찬성하는 중소기업들도 적지 않다. 한 중소기업체 사장은 “외국인 근로자를 쓰는 것은 저임금 요인도 있지만 국내에서 근로자들을 아예 구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불법체류자를 쓰면 처벌을 받는데 이럴 바에는 차라리 합법화해주는 게 낫다”고 털어놨다.

불법취업자 양산의 원인은 송출비리가 큰 몫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임금이 자국 임금에 비해 10배 이상 높다보니 외국인노동자들은 앞다퉈 국내에 들어오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수백만원의 커미션을 송출 브로커에게 주고 있다. 김해성 목사는 “국내에서 산업연수생으로 받는 최저임금으로는 송출대가로 줬던 웃돈을 도저히 벌충해 갚을 수가 없다”며 “결국 연수업체를 이탈, 불법체류자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는 이런 송출비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외국인노동자를 근로자로 보장하되 ‘근로자가 되기까지’ 즉, 어떻게 들어오고 어느 분야에 취업할 것인지는 엄격히 규제하게 된다. 하지만 기협중앙회 이성희 홍보실장은 “인권문제는 정상적으로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송출 브로커에게 준 만큼을 만회해 돌아가려고 연수현장을 이탈한 데서 스스로 약점을 갖게 된 것”이라고 인권침해 문제를 외국인노동자들의 탓으로 돌렸다.

5평 남짓 되는 ‘외국인노동자의 집’ 사무실은 서류봉투들로 온통 가득 차 있었다. 임금체불, 산재, 폭행 등으로 분류된 각종 봉투에는 타이인 잠롱의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올해 30대 후반인 잠롱은 2년 전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영세공장에서 일하다 한쪽 눈을 잃었다. 쉬는 일요일에 사장의 요구로 사장집 터에 난 풀을 제초기로 깎아주다 그만 튄 돌에 맞아 실명한 것이다. 불법체류자라는 점 때문에 신고도 못하고 있다가 참다못해 근로복지공단에 진정서를 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불법체류자라는 낙인 때문에 한푼도 보상 받지 못한 채 타이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다.

임금체불 사장 앞에서 싹싹 빌다

6개월 전 60대 중국동포 김희택씨는 임금을 체불한 사장 앞에서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빌어야 했다. 안양의 한 농작물 재배 비닐하우스에 한달 40만원씩 받기로 하고 고용됐던 김씨는 불법체류자라는 점을 악용해 임금 지급을 미루던 비닐하우스 업주를 안양지방노동사무소에 고발했다. 하지만 노동사무소에서 만난 업주는 대뜸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경찰에 김씨를 신고했고 김씨는 무릎을 꿇고 ‘없던 일’로 해달라며 업주에게 애원하다시피 매달려야 했다. 김해성 목사는 “눈물을 뿌리던 김씨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며 “붙잡혀 출입국관리소로 넘겨지면 강제출국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불법체류자에게는 돈을 안 줘도 된다는 생각이 악덕업주들 사이에 퍼져 있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외국인노동자의 집’ 사무실 옆에 딸린 허름한 외국인 숙소를 보여주던 김 목사가 힘없는 표정의 ‘이국 소수자’들을 보며 말했다. “한국이 인권탄압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고용허가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우리 중소기업도 임금착취로 버티겠다는 발상을 이제 버려야 할 때입니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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