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과 조선의 선택
등록 : 2002-08-21 00:00 수정 :
“(출마하지 않으면) 역사의 벌을 받을 것”이라는 말까지 하는 것을 보니, 정몽준 의원은 대통령 선거에 나갈 뜻을 굳힌 것 같습니다. 최근 그와 같이 지리산에 다녀온 한 인사는 9월 초까지는 공식화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번 대선은 지지율 면에서 이회창·노무현·정몽준 3자 구도가 예상됩니다. 물론 정국이 요동을 치기 때문에 세 사람이 막판까지 갈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출마를 하면 정 의원은 집중적인 견제와 검증을 받을 것입니다. 4선의원이지만 지지율이 정치 성적보다는 월드컵의 성공에 더 바탕하고 있고, 재벌 2세로 대기업을 소유하고 있어 사회경제적 배경이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평가가 엇갈릴 수 있습니다. 월드컵의 성공을 정치력으로 연결할 수도 있고 냉정하게 볼 수도 있고, 대기업 소유주라는 것을 재벌문제의 측면에서 볼 수도 있고 자신의 말마따나 최소한 돈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정 의원의 출마가 각 후보들이 온당한 평가를 받고 정책노선 대결을 벌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꼭 10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정 의원의 부친 정주영 후보와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각축을 벌인 적이 생생히 떠올라서 하는 말입니다.
지금 구도는 10년 전과 어떤 점에서 비슷합니다. 선거판의 선수가 실제로는 셋이 아니라 넷이고, 심판을 자처하는 선수 하나가 사실은 다른 한 선수를 위해 필사적으로 뛰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조선일보>입니다. 조선일보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김대중 떨어뜨리기입니다.
영향력이 있는 이 신문은 정주영 후보가 김영삼 후보의 표를 잠식한다고 판단되자, 집중적으로 ‘정주영 때리기’에 나섰습니다. 오죽하면 정주영 후보쪽은 대선 막바지에 조선일보를 규탄하는 4*40m의 초대형 현수막을 내걸고(사진) 불매운동까지 펼쳤겠습니까.
지금 조선일보는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를 작정하고 있습니다. 기자협회의 조사가 보여줍니다. 기자협회가 올 7월22일부터 25일까지 전국의 신문·방송사 기자 400여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를 한 데 따르면, 83.2%(333명)가 언론이 특정후보에게 유리한 보도를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기자들은 그러한 언론사로 단연 조선일보(69.3%)를 꼽았습니다. 다음인 <중앙일보>(4.5%)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치입니다. 유리하게 보도되고 있는 후보는 90% 이상이 이회창 후보를 꼽았습니다.
조선일보는 과거처럼 정 의원을 레버리지로 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 의원이 노무현 후보를 위협하면 정 의원을 띄우고, 이회창 후보의 표를 잠식하면 끌어내릴 것이란 뜻입니다. 이 경우에 정작 각 후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유권자들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아니 춤을 출 것인가? 이번 대선의 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