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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재벌개혁, 끝나지 않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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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8-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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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으로 빨리 변한다. 외환위기와 함께 등장한 현 정부가 경제위기의 주범 가운데 하나로 재벌을 지목하고, ‘재벌개혁’을 강조할 때만 해도 ‘재벌개혁’은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하는 화두였다. 그러나 재벌개혁은 이제 듣는 사람이 별로 없는 흘러간 옛 노래가 돼버렸다. 그럼에도 장사가 잘 안 되는 낡은 레퍼토리를 아직도 읊조리는 고집 센 사람들이 있다. 한국방송대 김기원 교수가 그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학자치고는 재벌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많았던 사람이다. 우연히 한 재벌그룹의 사사 집필팀에 들어가 1년간 총수와 경영진, 중견 간부들, 공장 노동자들을 깊이 있게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 졸업 뒤에는 잠시 재벌회사에 근무한 적도 있었다. 김 교수는 자신을 “재벌 전문가가 별로 없는 시절, 공부를 하다 재벌전선에 ‘징발’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최근 재벌문제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논문을 묶어 <재벌개혁은 끝났는가>를 펴냈다. 그동안 쓴 논문 8편과 신문·잡기 기고문을 함께 묶은 책이다. 그가 보기에 현 정부의 재벌개혁은 신통치 않았다. 그는 “개혁주체가 솔선수범하지 않았고, 올바른 개혁정신과 비전을 갖추지 못했으며, 타이밍도 놓쳤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소수주주권의 강화 등 개혁성과도 있었지만, 근본적 문제인 총수의 황제경영과 선단문어발경영은 거의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재벌개혁은 이제 ‘진지전’에 들어선 상황이다. 현재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차분히 모색하기에는 오히려 지금이 더 적절하다”고 말했다.

“재벌개혁은 결코 재벌 죽이기나 재벌 혼내기가 아니다. 재벌의 거듭나기를 도와주는 윈-윈(win-win) 게임이다.” ‘재벌’이라는 단어가 역사연구에만 등장할 때까지 ‘재벌개혁’이란 그의 노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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