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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치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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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8-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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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꼴을 왜 그냥 보고만 있는가. 지금의 세태는 정치인들이 특이한 체질을 가진 집단으로 존속하도록 방치할뿐더러, 그들이 활개를 치는 구조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사진/ 설혜심ㅣ연세대 강사·서양사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왔다. 텔레비전 뉴스 초반부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얼굴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 정치인들의 얼굴이 서로 비슷해져간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짚어보자면 그들의 얼굴은 일반 직장인의 얼굴에 비교해볼 때 절대다수가 구릿빛이고, 예외 없이 이상한 기름기가 흐르며,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입술이 시옷(ㅅ) 자 모양이다. 물론 극소수의 예외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상큼하던 이미지를 가졌던 사람도 얼마 되지 않아 모두 비슷한 얼굴이 된다.


사회의 흐름에 역행하는 집단

구릿빛 피부에 대해서는 그들이 골프를 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많다. 하지만 얼굴에 독특한 기름기가 흐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국회의사당 구내식당의 식단이 특이한 것일까. 그것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같은 식당밥을 먹는 국회 사무직원들의 얼굴에는 그 특이한 기름기가 별로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인들이 구내식당보다는 다른 식당들을 배회하며 이상한 음식만을 골라먹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일까. 정치인들은 참으로 특이한 체질을 가진 집단이다.


우선 우리나라 정치인은 오래 산다. 미국 대통령의 평균수명을 산출해보니 일반인보다 훨씬 짧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직업집단별로 평균수명을 산출해보니 정치인은 최장수 집단인 종교인 바로 다음에 위치하는 장수집단으로 나타났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에는 정년퇴직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아무리 능력이 없어도 정치인은 죽을 때까지 퇴출당하지 않는다. 끝까지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들을 장수하게 만드는 비결인 모양이다.

또한 정치인은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사회의 흐름에 역행하는 집단이다. ‘개인’이 더욱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아직도 ‘파당’이 더 중요하고, 첨단 전문인이 각광받는 시대에도 정치전문가란 몇십년 전 정치판의 생리를 가장 잘 알고, 써먹는 사람이다. 그래서 상큼하고 진보적인 이미지를 선호하는 지금에도 정치인은 칙칙한 양복에,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포마드가 유행하던 시대의 그 번들거리는 얼굴을 고수한다.

국회 청문회를 보면 논의되는 사안들도 답답하지만, 청문회를 끌고 나가는 의원들의 모습도 한심스럽다. 전혀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서로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님” 하고 부르는 모습도 낯간지럽고, 보좌관이 써준 짧은 연설문의 내용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모습에 과연 저 사람들에게 국사를 맡겨도 되는가 하는 걱정스러움이 앞선다.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며 질문을 퍼부어대는 의원을 보면 왜 저 사람은 다른 중요한 사안들을 논의할 때는 침묵을 지켰을까, 혹은 지금 부르짖는 원칙과 도덕성을 왜 동료들이나 스스로에게 들이댄 적은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이것도 그들이 특이한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새 천년이 시작될 즈음 실시한 향후 직업인의 전망에 대한 한 연구는 정치인이 정말로 특이한 집단이라는 또 다른 근거를 제시해준다. 정치인은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인이면서도 동시에 새 천년에 가장 수입이 많을 직업인으로 당당하게 꼽혔다. 그런데 이 조사는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흔히 ‘정치무관심’, ‘부패불감증’ 혹은 ‘정치혐오’라고 표현되는 현상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이런 인정은 무관심이나 혐오와 같은 개인적 차원의 감정을 넘어선, 대중적 차원의 ‘방조’일 수도 있다.

대중적 차원의 ‘방조’

인터넷 유머 가운데 국회의원과 개의 공통점을 나열한 것이 있다. ‘밥만 주면 아무나 주인이다’나 ‘족보가 있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다’와 같은 내용들이다. 그 가운데 압권은 ‘어떻게 짖어도 개소리다’라는 부분이다.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정치인 혐오증을 최소한 알고는 있을 국회의원들은 먼저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더불어 우리 국민들 역시 생각해야 한다. 그런 꼴을 왜 그냥 보고만 있는가에 대하여 말이다. 지금의 세태는 정치인들이 특이한 체질을 가진 집단으로 존속하도록 방치할뿐더러, 그 특이한 집단이 버젓이 활개를 치는 구조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최악의 물난리로 많은 국민이 시름에 잠긴 지금, 수재의연금 모금방송마다 정치인들이 다투어 ‘번들거리는 얼굴’을 내민다. 국민들은 그들에게서 천재지변의 가혹함이나 사후약방문 격으로 향후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그동안 무엇을 잘못해왔고, 혹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어떤 재난을 막지 못했는가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국회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국민은 그들을 포기하기보다는 정말로 엄중하게 추궁하고, 비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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