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피해 2세의 고통
등록 : 2002-08-08 00:00 수정 :
원폭피해 2세 김형율(왼쪽)씨가 아버지와 함게 후유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씨는 폐기능의 절반 가까이를 잃었고, 체중이 38kg밖에 나가지 않는다.
올해 33살인 김형율(부산)씨는 체중이 38kg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미 폐기능의 절반 가까이를 잃은 그는 말을 할 때마다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름시름 앓았지만 병의 이름도 원인도 몰랐다. 그러다가 7년 전에야 선천성 면역결핍증의 일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이 방사능 피폭에 따른 후유증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사 소견을 듣고서야 김씨 가족은 사태의 전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씨 어머니는 6살 때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19살 때 몸에 이상을 느끼기는 했지만,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눈에 보이는 원폭 피해 후유증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원폭피해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심한 피부병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와 함께 태어난 쌍둥이 동생이 태어난 지 2년6개월 만에 죽은 것도 어쩌면 김씨와 같은 원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들 원폭피해 2세 문제는 그동안 거의 논의대상이 되지 못했다. 일본에서도 1970년대부터 후유증이 보고됐으나, 그동안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왔다. 올해 들어서야 원폭피해 2세들에 대한 5년간의 영향조사에 나섰다. 우리나라에서도 김씨 외에는 드러내놓고 후유증을 호소한 사례조차 없었다.
김씨는 “우리나라에서도 2세가 후유증을 겪는 사례가 있을 것으로 보고 백방으로 찾았지만 방해만 받았다. 원폭피해 1세들도 자식들에게 후유증이 있다고 해도 앞날에 지장이 있을까봐 숨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 도서관에서 어렵게 찾아낸, 지난 9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를 보여주었다. 1900여명의 원폭피해 1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세들 가운데 2천명 이상에게 후유증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피폭된 뒤 살아남은 한국인 가운데 귀국한 사람은 2만3천명으로 기록돼 있다. 그렇다면 후유증을 겪는 2세들은 그보다 많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김형율씨 사례는 원폭피해 2세 문제가 이제 겨우 베일 밖으로 삐져나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