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신해혁명으로 중국에 공화정이 들어섰을 때, 처음 도입된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진 향신들 일부는 고향을 떠나거나 심지어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선거의 불가피한 속성인 당락을 체면이나 영욕의 문제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국의 선거를 ‘체면선거’로 규정한다면, 현재 한국의 선거에는 어떤 수식어가 적절할까요? 두말할 것 없이 ‘돈선거’입니다. 100년 전 체면선거보다 더 처지는 선거문화입니다.
돈으로 표를 사고, 조직을 동원해 표를 모으고, 선거비용 마련을 위해 편법·탈법을 서슴지 않습니다. 법정 선거비용은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난 지방선거 때도 기초단체장의 법정 선거비용은 1억원 정도였지만 동그라미 하나는 쉽게 더 붙었다고 합니다.
올 들어 치렀거나 치를 각종 선거, 곧 6·13 지방선거와 8·8 국회의원 재보선선거, 그리고 올해 말 대통령선거는 정확히 표현하면 각각 6·13 지방 ‘돈선거’, 8·8 국회의원 ‘돈선거’, 12월 대통령 ‘돈선거’입니다.
돈선거는 부패의 뿌리입니다. 선거자금을 마련하고 선거에 들인 본전을 뽑기 위해 검은돈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당내 선거에서도 돈은 결정적 변수입니다.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의 고해성사가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돈선거는 선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면 되는, 게임의 룰이 없는 게임으로 만듭니다. 얼굴이 뻔뻔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판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윈회(선관위)가 내놓은 선거개혁안은 그래서 의미가 큽니다. 선관위의 선거법 개정의견은 돈이 드는 거리유세를 없애고, 미디어를 통한 선거운동을 확대하며, 비용을 국가가 대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 대신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꼼꼼히 밝히고, 중앙당을 축소하며 지구당을 폐지하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100만원 이상 기부자는 인적사항을 제출하고, 10만원 이상 지출은 신용카드로 하라는 것까지 규정하고 있습니다.
획기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진작 상식이 됐어야 할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반기는 듯하면서도 가시 많은 생선 뒤적거리듯 손익을 따지며 트집을 잡습니다. 하지만 당 운영과 선거에 막대한 돈을 들이고 눈가림 회계를 하는 관행을 더 이상 끌고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후원금제도는 사기꾼의 돈이라도 받고 영수증만 끊어주면 합법이 되는 현실입니다.
8·8 재보선을 앞두고 한쪽에서는 ‘부패정권심판론’을, 한쪽에서는 ‘부패원조론’을 내세우며 삿대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치권은 자금출처 확인과 추적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딴소리하지 않고 선거개혁에 앞장서겠다는 후보 있으면 찍겠습니다.
특히 대선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선거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불법·탈법이 저질러져 권력부패의 원죄 구실을 해왔습니다. 대선도 선거개혁안을 100% 수용하겠다고 선언하는 후보를 찍겠습니다. 돈선거를 끝장내고 공정한 경기의 규칙을 만드는 과제가 지금 대선후보들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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