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바캉스를 악몽으로 바꿀 임신의 덫… ‘책임지는 성’을 가르쳐주자
방학이다. 사각교실을 벗어나 산으로 바다로, 10대들이 꾸는 바캉스의 꿈은 푸르고 싱그럽다. 그러나 어디에도 복병은 있는 법. 때로 그 꿈의 결말부는 시커먼 악몽으로 바뀔 수 있다. 가장 위태로운 지점은 역시 성(性)과 관련돼 있다. 몸은 자랄 만큼 자랐다. 인터넷 세상, 부푼 호기심을 달구는 유혹은 곳곳에서 출몰한다. 조여들던 어른들의 통제마저 느슨한 시점, 일상을 벗어난 공간에서 꽁꽁 묶여 있던 성에 대한 호기심과 충동은 마구 날개를 펴기 쉽다.
무섭고 잠 안 오는 일
문제는 무지와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성을 동경할 뿐, 많은 청소년들에게 성은 아직 미지의 세계다. 성관계의 겉모습엔 익숙해져 있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까지 깨닫진 못한 상황이다. 그리고 때론 충동이 이성을 압도한다. 알고 준비된 성이 아닐 때 그 결과는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값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요즘 시험도 다가오는데 너무 불안해서 공부가 안 돼요. 지난달 생리 끝난 날짜는 모르겠고, 시작한 날이 10일인데 18일날 성관계를 맺었거든요. 아직까지 생리가 없어요. 제가 너무 생각없이 경솔했나 봐요. 남자친구랑 둘이 놀러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 조금만 조심할 걸…. 설마 임신은 아니겠지요….”(여고 1년생) “전 고1 여학생이예요. 8월3일 남자친구와 여행을 갔어요. 놀러가서 그만 관계를 몇번 가졌어요. 10일이 생리일인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안 나오지 뭐예요. 오늘 검사약을 사서 검사를 해봤어요. 근데 양성이 나왔어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아요. 거의 2주 정도 되는데 뱃속 아가한테는 너무 미안하고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이겠지만, 낙태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고, 부모님은 제가 이럴 거란 걸 상상도 못할 거예요. 전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생활도 충실한 편이거든요. 저와 제 남자친구 둘이서 아기를 지울 수 있을까요?” “이번 여름에 놀러갔다가 ‘윤락가’(매매춘 거리)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에 친구와 같이 들어가니 누나가 물수건 같은 걸로 닦아주더군요. 성병에 걸릴까 두려운 맘에 할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성관계를 맺다 그만 안에다 사정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고 나니 너무 허무하고 무서운 맘이 들었습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거라 괜찮을 것 같은데, 정말 괜찮을까요. 처음 하는 데도 성병에 걸리나요. 정말 무섭고 잠도 오지 않습니다.”(고2 남학생) 지난해 여름방학 직후 사단법인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 부설 내일청소년상담소 사이트(www.youth-n.com/)에 올라온 청소년들의 성상담 사례 가운데 일부다. 모두 방학 동안 또래들끼리 어울려 놀러갔다가 준비되지 않은 성관계를 맺은 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불안해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성관련 상담사례는 방학 기간과 직후에 부쩍 늘어난다. 청소년 성상담, 방학 전후로 폭증
지난해 내일여성센터에 들어온 전화·면접 상담통계를 보면, 임신과 낙태에 관한 상담건수는 방학기간인 7,8월과 1,2월에 가장 많았다. 특히 성폭행 후유증과 관련해선 여름방학 전후인 8∼10월 상담건수(59건)가 전체(84건)의 7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일여성센터 이현숙 팀장은 “청소년들뿐 아니라 사회 전체 성문화가 개방적으로 변해가지만, 행동만 적극적일 뿐 그를 위한 준비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통제가 약한 방학 중엔 분위기에 휩쓸려 의도하지 않은 성관계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YMCA 청소년상담실은 지난해 8월7∼11일에 서해안 대천해수욕장에서 여름휴가를 온 청소년들을 상대로 현장 성상담을 실시했다. 상담에 참여한 청소년 47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가정과 학교의 통제를 벗어나 성적 기회를 추구하기 시작한 우리 청소년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이들 가운데 대천해수욕장에 부모와 같이 온 경우는 불과 23명(4.7%)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는 모두 친구나 선후배 등 또래들과 어울려 찾은 경우였다. 특히 17∼19살 414명 가운데 부모가 함께 온 청소년은 6명(1.4%)뿐이었다.
여름 피서지 방문 목적을 보면 ‘친구들과의 여행’을 꼽은 청소년이 184명(37.6%)으로 가장 많았지만, ‘이성친구와의 여행’과 ‘헌팅’을 꼽은 응답도 각각 17건(3.5%)과 56건(11.4%)에 이르렀다. 헌팅을 꼽은 사례 수는 남자(14.5%)가 여자(4.6%)보다 높았다. 원치 않는 성관계를 요구당하거나 돈을 받고 성관계를 요구당한 경험은 각각 16건(3.3%)과 10건(2.6%)이었다.
또 분위기에 휩쓸려 이성과 성관계를 한 경험을 묻는 문항에는 41명(8.4%)이 ‘있다’를 선택했다. 같은 물음을 서울 거리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있다’는 응답이 4.4%에 지나지 않았다. 바캉스 분위기가 청소년들의 성관계 기회를 순식간에 두배로 끌어올린 셈이다. ‘강제로 성관계를 하고 싶은 충동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대답은 무려 14.7%(72명)에 이르렀다. 대천해수욕장의 현장상담을 이끈 서울YMCA 청소년상담실 약물상담실장 김은정씨는 “청소년들의 성의식은 이미 상당히 개방된 만큼 기회와 분위기만 만들어지면 언제고 쉽게 점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방학 중 청소년들만의 바캉스 또한 성적 측면과의 관련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무지의 책임은 어른들에 있다
성을 향한 청소년들의 뜨겁지만 맹목적인 열정을 적절히 안내할 사회적 지침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중학교 3학년인 이정아(16·가명)양은 지난해 친구 2명과 함께 대천해수욕장을 찾았다. 부모 허락 없이 차비만을 가지고 대천으로 놀러간 것이다. 이양 일행은 술이나 밥을 사준다는 어른들이나 또래 남자들을 만나 어울리다 집단 성관계를 맺기도 했다. 한번은 17명의 남자와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임신 시약으로 테스트한 결과 이양과 친구 1명은 임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양은 학교에서 체계적인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피임의 의미와 방법 또한 구체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다. “성교육 시간이 있지만 비디오를 틀어주는 것이 전부”라고 이양은 말했다.
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은 지난해 여름방학 때 동급생 남자친구와 첫 성관계를 가졌다. 이후 그는 날마다 1알씩 피임약을 먹었다. 얼마 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원래 피임약은 성관계 뒤에 먹는 것 아니냐”며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에 상담을 해왔다. 김은주 상담사는 “피임약은 성관계 한달 전부터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가 있고, 성관계 때는 반드시 콘돔을 하는 등 제대로 된 피임법만 알고 실천했어도 최악의 결과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당연히 무지의 책임을 청소년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제대로 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지 못한 사회와 학교의 탓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김 상담사는 “학교에서 직접 피임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칠 경우 청소년들의 성관계를 조장하려는 것이냐는 질책을 받기 때문에 많은 교사들이 필요성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미 상당수 10대들의 성의식은 그런 정도를 훨씬 뛰어넘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 성교육이 의례적인 수준에 그친 가운데 청소년들은 주로 인터넷이나 또래 등에게서 성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얻는다.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 이현숙 팀장은 “그러나 그런 정보는 주로 남성적 가치관에 의해 왜곡돼 있게 마련이며,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안전한 성관계를 위한 피임법 등을 제공하진 못한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부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아래서 청소년들은 껄끄러운 피임보다는 차라리 불안전한 성관계를 택하기 쉽다. 안전한 섹스를 위한 준비 자체가 어른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10대들의 성관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피임에 대한 준비 자체를 꺼리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한 남자 고교생은 “콘돔이 필요하다는 걸 알긴 하지만 약국은 꼭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아 들어갈 수 없고, 차라리 질외사정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질외사정은 안전한 피임법이 될 수 없다. 남성이 흥분하면 사정하기 전에 요도를 청소해주는 쿠퍼씨선에서 분비액이 나온다. 이 분비액 안에는 이미 100만 마리가량의 정자가 들어 있기 때문에 임신 가능성은 엄연히 있다.
성관계에 대한 이중적 의식
남녀 청소년끼리도 성관계에 대한 이중적 의식을 털어내지 못한다. 내심 원하면서도 그런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고교 2년 남학생은 “피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콘돔을 준비할 경우 자칫 미리 성관계를 맺으려고 준비해온 걸로 볼까봐 안 한다”고 말했다. 한 여자 고교생은 “여자가 피임 얘기하면 ‘까진’ 여자로 볼 텐데 어떻게 준비하느냐”고 말했다.
남녀 간 성관계를 바라보는 적극성의 차이도 피임의 실패를 낳는 한 요인이다. 내일여성센터 이현숙 팀장은 “남성들은 즉각적이고 시각적이며 충동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 여성들은 친밀감을 느낀다고 해서 꼭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성관계를 향한 적극성은 남성들이 훨씬 강하며, 여성들은 그런 남성들과의 친밀함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남성들은 성관계를 구체적으로 기대하면서도 “콘돔을 착용하면 성감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피임을 준비하지 않는다. 반면 여성들은 성관계까지 나아가리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을 위한 최선의 성교육은 성관계의 의미를 본인 스스로 명확히 이해하고, 서로의 합의 아래 성적 의사결정을 도출하도록 지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심사숙고 끝에 성관계를 결정했다면 콘돔 사용법이나 여성 피임법 등 안전한 섹스를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은주 상담사는 “청소년일지라도 자신의 숙고 끝에 나온 결정이라면 그를 위한 준비를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이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현숙 팀장은 “부모들의 대화와 지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0대 자녀들의 성관계를 터부시할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성관계의 의미를 자각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세를 갖추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한 성관계를 위한 준비 또한 미뤄선 안 될 과제다. 이현숙 팀장은 “방학 때 자기들끼리 놀러가겠다는 10대들을 더 이상 부모들이 붙잡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정말 실제적인 준비법까지 알려줄 필요가 있다. 청소년 스스로의 책임을 강조하는 의미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콘돔을 건네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사진/ 호기심과 충동이 날개를 다는 바캉스 휴양지. 혼자 떠나는 청소년들을 위한 부모들의 대화와 지도가 중요하다. (김종수 기자)
“요즘 시험도 다가오는데 너무 불안해서 공부가 안 돼요. 지난달 생리 끝난 날짜는 모르겠고, 시작한 날이 10일인데 18일날 성관계를 맺었거든요. 아직까지 생리가 없어요. 제가 너무 생각없이 경솔했나 봐요. 남자친구랑 둘이 놀러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 조금만 조심할 걸…. 설마 임신은 아니겠지요….”(여고 1년생) “전 고1 여학생이예요. 8월3일 남자친구와 여행을 갔어요. 놀러가서 그만 관계를 몇번 가졌어요. 10일이 생리일인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안 나오지 뭐예요. 오늘 검사약을 사서 검사를 해봤어요. 근데 양성이 나왔어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아요. 거의 2주 정도 되는데 뱃속 아가한테는 너무 미안하고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이겠지만, 낙태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고, 부모님은 제가 이럴 거란 걸 상상도 못할 거예요. 전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생활도 충실한 편이거든요. 저와 제 남자친구 둘이서 아기를 지울 수 있을까요?” “이번 여름에 놀러갔다가 ‘윤락가’(매매춘 거리)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에 친구와 같이 들어가니 누나가 물수건 같은 걸로 닦아주더군요. 성병에 걸릴까 두려운 맘에 할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성관계를 맺다 그만 안에다 사정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고 나니 너무 허무하고 무서운 맘이 들었습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거라 괜찮을 것 같은데, 정말 괜찮을까요. 처음 하는 데도 성병에 걸리나요. 정말 무섭고 잠도 오지 않습니다.”(고2 남학생) 지난해 여름방학 직후 사단법인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 부설 내일청소년상담소 사이트(www.youth-n.com/)에 올라온 청소년들의 성상담 사례 가운데 일부다. 모두 방학 동안 또래들끼리 어울려 놀러갔다가 준비되지 않은 성관계를 맺은 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불안해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성관련 상담사례는 방학 기간과 직후에 부쩍 늘어난다. 청소년 성상담, 방학 전후로 폭증

사진/ 성관계 때는 반드시 콘돔을 하는 등 제대로 된 피임법만 알고 실천해도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다. 청소년 성교육 자료로 전시된 피임도구들. (한겨레21)

사진/ 청소년 성문화센터 성교육 전시관을 둘러보는 청소년들. 이곳에선 남녀 성기의 생물학적 기능에서부터 구체적 피임방법까지 함께 교육한다. (한겨레 서정민 기자)









